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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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노르웨이의 가을날,

서른 아홉의 엄마는 ‘나이 마흔이 되기전에 해야 하는 100가지 목록’이 들어있는 여성잡지를 닳도록 읽고 있다.

엄마는 어이없는 그 목록들을 우스갯거리로 여기는 척 했으나 기실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하면서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옆의 나 테레제는 올해 14살.

테레제는 자기도 한번 목록을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마흔이 아니라 죽기 전에, 혹은 세상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하는 아주 아주 중요한 일들로만.

그 목록 중에는 남자 친구를 사귄다. 라는 것도 있는데 그건 아마도 이미 얀을 염두에 둔 발상일 것이고 부모의 이혼 소식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 목록들은 고스란히 빛바랜 일기장에 끼워져 있게 될 지도 몰랐다.

테레제는 세상이 내일, 당장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밤, 비가 내리고 어제와 같았고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 믿었던 그 날 밤.

엄마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이혼 소식은 테레제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이제 앞으로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도 더 이상 기쁘지 않고 흥겨운 리듬 또한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황량한 마음이 되어 버린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무엇이 필요하고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은데 대화 상대가 없다.

온 우주에 테레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얀은 가을에 전학을 온 목사님의 아들로 테레제는 전부터 그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었다.

지금은 엄마 아빠의 이혼에 대해 얀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건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주제를 세상의 종말로 잡고 얀에게 과제를 도와 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렇게 해서 테레제는 자신의 목록을 완성하는 것에 얀을 개입시키고 어느 주말에 함께 로마로 떠난다. 보호자로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언니 이레느를 동반하고.

부모님은 자신들의 문제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다른 이를 돌아 볼 여유가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로마에 가서 테레제는 자신의 목록 중 여러 개를 실천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테레제를 보고 계시다는 증표를 달라고 했던 11번째 목록에 대한 답도 얻었다.

불과 몇 분 전에 테레제의 머리가 닿아있던 바닷가 모래사장 그 자리에 벼락이 떨어져 생긴 번개 화석이 그것이다.

테레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외면하더라도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만은 자신을 사랑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잡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영원한 화석으로 굳어진 천분의 일초, 섬전암.

흘러가 버리는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순간인들 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언젠가는 죽게 될테니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또 용기를 내야한다는 마르틴 할아버지의 충고대로 테레제는 얀에게 입을 맞춘다.

그렇게 진심을 표현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눈을 돌려 보면 주변에 이렇게 시작하는 카피가 많이 있다.

죽기 전에, 세상이 끝나기 전에 라는 말은 절박함과 함께 이제껏 없던 용기도 부여해 주고 곧 실천으로 옮기기를 종용한다.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삶을 살던 테레제에게 부모의 이혼은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내려앉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도무지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느낀 사춘기 소녀는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잠재우기 위해 미지의 곳으로 일탈을 꿈꾸고 내적으로 부쩍 성숙해져 자신의 운명에 당당히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 전이나 후나 사실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단지 테레제의 보는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런 테레제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만약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나도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14 살짜리 소녀와 내 나이에서의 욕구나 결핍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오늘을 계기로 올 해가 가기 전 편지를 써야하는 사람들 목록을 만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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