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친구 '민정'씨에게서 선물로 받은 김형경 작가의 '사람 풍경'을 읽고...

이 책의 여러가닥중 유독 읽으면서 내 가슴을 파고드는것은 '애착'이었다.
결혼 후 집에 있다가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된것이 하나가 3살 무렵인것 같다.
우리 일의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는것이 아니라 일의 강도에 따라, 스케쥴에 맞추어 때로는 새벽까지도 회사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피곤한 몸을 간신히 잠자리에 누이면 어느새 하나는 내 머릿속에 코를 박는다.
마치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면서도 엄마의 냄새를 알아 보는것 처럼 저쪽에서 자던 아이가 내쪽으로 뒹굴어 오는것이다.
그것까지면 그래도 참겠는데 뒤이어 내 머리카락을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자기 손에 꼭 쥐어 잡는 행동도 한다.
늘 땀이 촉촉하게 배어 나오던 하나의 손에 내 머리카락을 잡히면 참다참다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안 당해 본 사람은 뭘 그걸 가지구~.하겠지만 내게는 단 1시간만이라도 편히 잠을 자는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던 때였기에 그런 하나의 행동을 십분 이해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자다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었다.
내 귀에는 하나가  손가락을 빠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손바닥의 땀때문에 잡혀 있는 머리카락이 엉기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머릿카락속에까지 들어와 있는 하나의 얼굴때문에 제대로 고개도 돌리질 못 한다.
피곤한 가운데 그 삼중고를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어 악몽을 꾸듯 소리를 질렀지만 그소리에 잠깐 멈칫하기만 할뿐 오히려 남편이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아마 남편의 그 때 상황을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그렇게 소릴 질러 대진 못 했으리라.
남편은 항상 말했었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내가 잘 벌면 자기가 집에 있어서 하나도 그럴 일이 없을텐데...' 
내가 지르는 비명이 모르긴해도 자책감으로 인한 남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것이다.



하나는 독립적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늘 곁에는 나 아니면 아빠가,아니면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엄마보다 훨씬 살갑게 대해 주고 보살폈기에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 그것이 잘못이었던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모든 인간에게 최초의 의존 대상은 엄마이고 아기에게 엄마는 생존의 전부를 의미하는것인데 난 너무 일찍 하나를 독립적으로 키운다며 분리시킨것이다.
그래서 하나는 엄마를 대신할 다른 무엇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것이 내 머리카락 혹은 내가 밤새 베고 자던 베개가 되었나 보다.
상혁이가 태어난 것은 하나가 일곱살 때였다.
그 해 12월엔 유난히 눈이 많이 와서 나는 상혁이를 업고 그야말로 하얗게 날밤을 새곤 했었다.
거실에서 서성대면서도 하나에게는 일찍 자라며 들여 보내곤 방의 불을 껐다.
하나가 어둠속에 혼자 있는것을 두려워해서 문을 열어 두었었는데 어쩌다 하나방 어두운 침대위의 똘망똘망한 두 눈과 마주치게 되는 상황도 생겼다.
말을 붙이면 잠을 안자고 두 녀석이 나를 귀찮게 할까 봐 애써 외면하곤 했었다.
어느 날인가는 그 눈빛이 너무 애절해서 말을 건네 보았다.
하나는 어둠속에 누워서 상혁이를 등에 업은 내 모습을 멀리로 보고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엄마가 나도 저렇게 잠도 못 주무시고 키우셨겠구나.하고 생각하니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나는 그 말을 그저 기특하다고만 여겼었는데,,,
사실은 그것이 더 위험한 경우로 하나는 자신의 어려움과 맞서는 대신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며
억압된 엄마에의 의존성이 반대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하나는 내 등에 동생대신 업혀서 잠들고 싶었을게다.
그래서 저 사진이 마음에 자꾸 밟히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옆의 짜장으로 범벅된 상혁이의 사진도 하나 입장에서는 상당한 쇼크다.
하나는 먹는것으로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는데,
젖을 빨때에도 처음과 나중엔 꼭 짜증을 내곤 했던 아기였었다.
배가 고픈듯 하여 젖을 물려 주면 빨기 보다는 꿍얼꿍얼대며 금방 울것 같았다.
그리고 좀 지나면 빨기를 쉬어 가면서 또 다시 꿍얼꿍얼..금방이라고 울음을 터뜨릴 태세가 되고 결국엔 울다가 빨다가 울다가 자곤 했다.
처음엔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차차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배 고픈만큼 젖이 푸짐하게 나와 주질 않아서 불만이었고,나중에는 조금씩 느긋하게 젖을 빨며 잠들고 싶건만 계속 솟아 나오는 젖이 너무 많아 졸면서 삼키기에 너무 벅찼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하나와 나는 서로에게 부대끼는 시간을 가지며 나는 나대로 피곤해 하고 하나는 하나대로 역시 충족되지 못한 본능을 분노로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동생이 태어나면 큰 아이가 동생을 따라하며 어려진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누구나 그러하듯이 하나도 그런 것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초등학생이 동생의 보행기에 앉아 동생의 우윳병을 빠는 행동이 썩 유쾌하진 않았었다.
동생이 생기기전에도 하나를 혼자 자게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였는데 동생이 생기고 난 후로부터 올 여름까지만 해도 우리는 늘 4식구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하나는 엄마를 빼앗아가는 동생을 질투한 것이다.
늘 아팠었고,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입원했을 때에만 24시간 나를 매달리게 해서 온전히 엄마를 소유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아픈 배에 대고 있으라고 핫백을 주었는데 하나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핫백보다는 내 손으로 쓰다듬어 주길 원했다.
상혁이가 아빠랑 면회를 오면 아직 어린 상혁이가 안되어서 업어주면 영낙없이 하나의 통증은 더 심해지곤 했다.
원인을 알수 없어서 치료약도 없다는 '알러지성 자반증'이라는 병명은 온 몸의 모세 혈관이 터지는 병이라니 아마도 그간 억누르고 참았던 하나의 울화가 터져 버린것인지도 모른다.
그 무렵 하나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며 답답하다고 했었다.

질투심은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이라고 한다.
하나를 놓고 볼 때 내게는 그것이 용납되지 않았었다.
'아빠 엄마는 상혁이와 너를 다 똑같이 사랑한다.
이 말 한마디로 왜 충족이 안 되는지,어떻게 지금까지도 애착,분노,질투 이런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지,왜 이성적으로 생각을 못 하는지,그런 네가 너무 힘들다.' 라고 했었다.
이 책에서 보니까 질투심을 극복하는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의 노력이라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완전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어떤 감정이나 행위도 무시되지 않고 받아 들여진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질투심이 극복되어 진다고 한다.
하나를 온전히 받아 들이지 않고 내 멋대로 애를 저 꼭대기에 세워 놓고는 혼자서도 잘 한다며 손뼉을 치고 있었던 나는 하나를 잔인하게 사육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제법 머리가 굵어졌음에도 여전히 동생과 함께 누가 엄마에게 뽀뽀를 몇번이나 하는지 그것에 울고 웃는 하나를 한번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보자.
하나는 또 그러겠지.
'엄마는 맨날 미안하다고 하면서 안 달라져.'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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