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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가 묻는 말
김미조 지음, 김은혜 그림 / 톡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피노키오가 아니는 무엇이겠어요? 난 피노키오예요.
카를로 콜로디가 창출한 피노키오는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좋아하며 놀기를 좋아하는 나무인형이다. 소위 제도권에 대해서는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다. 남을 무조건 신뢰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작정을 하고 결심을 해도 유혹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넘어간다. 잘못과 반성을 되풀이하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뫼비우스의 띠같다. 간절히 사람이 되고 싶어했지만 파란요정과 한 약속을 번번히 어겨 사람이 되지 못한다. 피노키오는 아이들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부모와 제도에 순응하는 반면 피노키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히 따르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일상의 탈출구가 되고 카타르시스의 원행이 되기도 하여 열광하는 피노키오를 부모들은 적극 권하고 있다. 피노키오가 가지고 있는 교훈적 요소가 피노키오가 저지르는 나쁜 일이나 잘못을 상계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서를 확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일탈로 어른들은 훈계서로 받아들이는 피노키오가 다양하게 읽히고 있고 이에 동참하는 즐거움은 참 크다. 철학자 양운덕의 저서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를 통해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노키오를 미성숙한 어린이로 이해하고 성숙한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김미조 작가의 『피노키오가 묻는 말』은 피노키오와 동행하면서 미숙한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미조작가는 정체성을 찾는 이 치열하고 외롭고 때로는 부정하고 싶은 자신을 모습을 직면해야하는 불편함을 매우 담백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피노키오가 묻는 말』은 피노키오의 주요 사건을 따라가며 객관화된 피노키오가 아닌 개인적인 피노키오를 끌어내고 있다. 이야기를 풍요로게 해주는 김은혜 작가의 그림 또한 피노키오를 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도와준다. 모든 연령층이 읽고 피노키오와 함께 자신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시간을 주는 책이다.
나무토막이었던 피노키오는 다리를 갖기 원했다. 제페토는 다리뿐만아니라 머리와 몸, 팔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피노키오라는 이름도 주었다. 명명되는 것은 상대에게 인지되는 순간이고 개별화 되는 순간이다. 김춘수의 꽃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제페토에게 피노키오는 소중한시간임을 알 수 있다.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피노키오에게는 제페토는 없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아무런 미련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간다.
가요, 난 세상 속으로 가요
세상 속으로 간 피노키오는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형극장을 탈출한 아이와 거래를 한다. 어떨결에 인형극장의 마리로네트 인형들을 탈출시키기로 하고 그 대가로 눈물을 받는다. 그 아이는 피노키오가 자신과 다르며 인형들을 탈출 시킬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피노키오는 자신과 그 아이가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그 인형들을 탈출 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작가는 피노키오에게 의심하는 능력 즉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형극장에 간 피노키오는 줄에 매달린 인형들을 탈출시켜려고 무대에 뛰어들지만 인형들은 그만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인형 조정사는 화가나 피노키오에게 달려들지만 피노키오는 세상을 알만큼 살지 못했으니 살려달라고 한다. 인형조정사는 겉만 보고 판단한 대가가 죽음이라고 윽박지른다. 세상에는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으며 저마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며,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하며 자신이 왜 피노키오를 살려야 하는지 설득하라고 한다. 피노키오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제페토를 입에 꺼내지만 그 순간 아버지에 대한 뭉클한 감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아울러 인형과 인형 조정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피노키오에게 금화를 주어 아버지에게 갈 것을 권한다.
모든 인형들이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피노키오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지적하는 것은 미성숙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 어른들에게 가하는 일침이기도 하다.
금화를 가지고 계속 여행하는 피노키오, 그를 가만히 둘 세상이 아니다. 도둑이 접근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 피노키오는 금화를 입속에 감추어 위기를 모면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나무에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피노키오는 죽기 싫었다. 아니 죽는 것보다 나무토막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싫었다. 그때 파란빛의 요정이 피노키오에게 말한다.
아이야, 두려워하지 마. 넌 계속 너였단다. 나무였을때도, 나무토막이었을 때도, 그러니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앞으로도 너는 너로 있을 거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넌 계속 너였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넌 너였다는 파란빛 요정의 말은 피노키오가 자신이 누군지를 들여다 보게 한다.
요정의 도움으로 살아난 피노키오는 금화를 지키기위해 요정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벌로 코가 길어진다. 피노키오는 요정에게 코가 길어지는 가혹한 벌을 받는 다고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당차게 말한다. 거짓말이 나쁘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먼저 안다고 한다. 요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코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판단과 별로 피노키오는 상처를 받는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먼저 살피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을 파란빛의 요정에서 볼 수 있다.
피노키오는 요정의 도움으로 나무에서 내려오지만 결국 여우와 고양이의 꾐에 빠져 금화 다섯 개를 모두 빼앗긴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소유한 것들을 잃고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슬픔에 빠진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힘들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세상에서 가장 착한 새를 만나 세상이 힘든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비둘기의 도움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날아간다.
아버지가 있다는 바다에 도착하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마부의 꾐에 넘어가 장난감 나라로 가 당나귀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고래 뱃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다시 요정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보내는 피노키오는 평화롭지만 활기가 없다. 그런 그에게 꿈에서 파란 요정은 두 개의 문을 보여준다. 요정의 심부름꾼 달팽이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파란빛이 나오는 문 뒤에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고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문에서는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파란 문에서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피노키오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지느러미를 달고 바닷속을 헤엄치고 싶어한다. 요정은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피노키오는 문을 열지 않는다. 파란 요정을 파란문을 열라고 하지만 피노키오는 망설인다. 코가 길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피노키오는 외친다.
아니, 아니요.
다 거짓말이에요.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럼 누가 할 수 있냐는 반문에 네 자신이지라고 한다.
네 자신이지
피노키오는 인형극장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말을 한다. ‘난 할 수 없어요 난 인형이예요.’ 요정은 인형은 꿈을 꿀수 없다고, 그런데 넌 꿈을 꾸고 있으니 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두 문앞에서 계속 갈등하는 피노키오에게 요정은 다시 묻는다.
넌 정말 나무 인형이니?
난 피노키오예요.
피노키오가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난 피노키오예요
그렇게 답하자 피노키오는 기분이 좋아졌고 심장이 뛰었고 몸에서 열이났고 목이 말랐다. 잠에서 깨어난 피노키오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거울 속에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소년은 침대 옆에서 아버지의 쪽지를 발견한다. 1주일간 잠만 잔 피노키오를 살리기 위해 나무 수액을 찾아 돌아오겠다는 편질을 읽고 피노키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를 쫓아 달려간다.
한 인간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통과제의로 요약될 수 있는 이런 것들은 어떤 아이에게는 크게 어떤 아이에게는 작게 다가오기도 한다. 크든 작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숙한 인간으로서 어른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피노키오도 그 과정을 혹독하게 겪었지만 그는 건강하게 이를 극복했다. 자신을 지켜주고 응원하는 아버지와 파란요정이 있었고 내가 누군인지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과도기에 있는 아이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와 파란요정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말아야 하고, 어른은 피노키오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와 파란요정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다. 피노키오가 자신은 나무인형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피노키오라고 말한 것처럼.
피노키오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그를 염려할 이유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