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문의 기적 일공일삼 67
강정연 지음, 김정은 그림 / 비룡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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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기적이다


                    

                                    분홍문의 기적, 강정연, 비룡소



띠지에 적힌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어쩌면 기적 같은 이야기

그렇다. 강정연 작가의 분홍문의 기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전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말을 경구로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다. 살면서 이 말이 진리라는 것을 겪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일상이 어쩌면 기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산다. 그리고 아주 가끔 미디어가 전하는 사건사고를 통해 이 경구를 꺼내어 자신의 삶에 감사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대개의 경우 망각수를 마신 사람처럼 새까맣게 잊는다. 내 일이 아니니 그럴밖에.

 

분홍문의 기적은 내게 닥친 일이 아니어서 평범한 일상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간절한 삶이 되는지 마음판에 새기게 한다.

 

분홍문의 기적표지 그림은 따뜻하면서도 살짝 열린 분홍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게 하는 힘이 있다. 기실 이 문은 일부러 열어 놓았을 것이다. 엿보고 싶은 충동이 격하게 생긴다. 평범한 집 내부에 날개달린 사람이 날고 있으니..... 그 나머지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면

세상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중략

 

여기 무척 화가 난 두 남자가 있다.

이들에게 아무도 믿지 못할,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는 문장으로 다음 장을 재촉한다.

 

그리고 분홍 문에는 누가 살까?‘로 첫 장을 시작한다. 분홍에 대한 고정적인 느낌이 있다. 부드럽다. 행복하다. 온화하다. 여성스럽다. 사랑스럽다. .

독자들은 분홍 문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살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더욱이 분홍 문에 걸려있는 집 모양 나무판에 행복한 우리 집이라고 쓰여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작가도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듯 처음에는 분홍 문 안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과장되게 그리다가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며 분홍 문 안에 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형편없는 두 남자를 소개한다. 두 남자의 일상은 보기 부담스럽다. 외면하고 싶다. 집안은 더럽고 엉망진창이다. 아들 박향기는 향기라는 이름대신 냄새라는 딴이름을 얻은 지 오래고, 아버지 박진정은 밤낮으로 술에 쪄들어 제 가게임에도 나 몰라라해 상가에서 민폐 1호가 되었다.

 

산뜻하고 따뜻한 분홍 문, 더욱이 행복한 우리집이라는 가호가 붙은 이 집에서 어떻게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모두 피하고 싶은 분홍 문 식구들이 되었을까. 그 사연을 알고 기가 막힌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극적이어서 어이가 없다. 그러나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박향기, 박진정 두 부자에게 일어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없이 행복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빠는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신문을 보고 아들은 제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엄마는 즐거운 마음으로 부엌에서가족을 위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엄마는 된장찌개의 화룡점정 두부가 없어 두부를 사러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3분이면 다녀오는 거리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상황 아닌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던 엄마가 죽었다니....., 그러니 박향기, 박진정 두 부자 어떻게 일상을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그래도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아버지인데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 살면 안되지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박진정, 박향기 두 부자의 생활을 비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삶이 옳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의 죽음에 잠식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 죽음이 준비되지 않았고 왜 하필 내게 일어난 일인지 원망스럽고 현실을 부정하고 죽음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는 것은 알지만 각자에게는 주어진 삶이 있다.

 

그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가?

그들을 치유할 방법은 정말 없는가?

박진정, 박향기 남겨진 분홍 문 안의 남자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는가?

 

이 책의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반짝반짝 빛나는 맑고 투명한 유리잔이지만, . . 1초 뒤에도 유리잔이 여전히 빛나고 있을지, 수천 개의 유리 조각으로 깨져 있을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은 아니 절대 오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일이 누구에게나 분홍 문 사람들처럼 올 수 있기에 결과가 아닌 분홍 문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찾는 과정에 주목해야한다.

 

초록 문 사람들처럼 죽은 사람이 천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72시간 살아 돌아온 지나씨의 등장은 데우스엑스마키나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유효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이 이야기의 주제가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이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다. 지나씨의 등장은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며 행복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영원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충실한 것이 영원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일지도 모른다. 1초. 뒤 유리잔의 운명을 알 수 없기에.....


 

우리에겐 선물처럼 주어진
세 번의 저녁, 세 번의 아침, 세 번의 점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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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푸른도서관 76
김선경 지음 / 푸른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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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을 단숨에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시라는 것이 본디 시어와 시어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 연과 연 사에 쉼표를 잔뜩 넣어가며 읽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제대로 읽는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김선경 청소년 시집 뱅뱅을 난 단숨에 읽어버렸다. 시 한 편 한 편에 쉼표를 마침표를 넣을 수가 없었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야기를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심취했는지 아니면 시의 운율이 탁월해서인지 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이 반항적이어서인지 어느새 난 래퍼가 되어 뱅뱅에 담긴 시를 랩으로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대단히 훌륭한 래퍼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시집 뱅뱅청소년 심리를 시로 쓴 보고서라고 하면 예술의 최고 경지인 시를 보고서라고 표현했다고 비난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뱅뱅은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하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어 옆에 있는 친구를 자녀를 나를 다독거려 줄 수 있는 탁월한 심리치료서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교과서에서 난해한 시를 대하는 청소년들이 뱅뱅을 읽는다면 시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말 친근한 문학 장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를 만만히 보는 친구도 생길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다. 이 시집을 읽는 청소년들이라면 자신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뱅뱅에는 기성사회의 잣대로 청소년들을 재단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시들이 다수가 있다. “단수도 그 하나다.

 

단수

이상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콸콸 흘러나왔는데

 

중학교 입학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도 희망도

아무리 쥐어짜도

아무리 돌려봐도

 

내 안에서

단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열여섯, 내 꿈 탱크가

단수다, 단수!


 

 

 

청소년들이 꿈을 잃은 것은 그들 탓은 아니다. 오로지 사회적 성공 즉 부의 축적을 인생의 정답으로 만들어 놓고 그리고 몰고 가고 있는 기성사회의 탓이다. 그들이 만든 문제가 아니기에 콸콸 꿈이 쏟아지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이나 고달프고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꿈은 앞으로도 단수 상태에 놓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꿈이 단수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 “단수를 읽으며 나 역시 내 꿈이 단수조치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똥통 속”, “운동장 조회”, “그럼 여긴 어디지?” 세 편의 시는 경쟁체제하에서 공부를 못하는 청소년들을 모두 하나로 규정한다. 그들은 똥통이거나 쓰레기다.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프루크수스테스가 되어 철저하게 기성사회의 잣대로 청소년들을 재단하고 그 틀에 끼워 넣는다.


이처럼 "뱅뱅"이 어두운 청소년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모든 시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우정과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이성과 외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다루고 있다. 특히 다의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재치와 풍자 위트를 십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 시집이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사이다”, “다독”, “깃발이 청량감을 준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도록 강요받는 아이들은

뱅뱅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제자리를 도는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어 어지러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반딧불이고치는 참으로 다독이는 시다. 미래를 열어 놓는 시이고 그들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시다. 너와 내 목에 걸린 12시간의 올가미로 인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유시간에 대한 갈망을 스스로 음미하도록 힘을 주는 시인의 다독이다.


 

 

반딧불이

 

누군가 불을 밝혀 주지 않으면

촛불은 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누군가 불을 밝혀 주지 않으면

등불은 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그러니,

반딧불이 되어라.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제힘으로

어둠을 헤치며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모두가 뱅뱅을 그것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학교 도서관에 꼭 비치가 되어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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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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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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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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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로 부터 자연과 인간을 구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철저한 고민과 집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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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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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음악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여기서 나왔네요. 지인들에게 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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