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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숲을 보다 - 리처드 포티의 생태 관찰 기록
리처드 포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4월
평점 :
숲은 어제 보았던 그 풍경 그대로인 적이 없다.
세계적인 삼엽충 전문가 그러니 화석을 연구하는 리차드 포티가 그림다이크라는 자신의 숲을 소유하면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별별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준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다이크 숲과 관련된 아주 작은 이야기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얼핏 생각하기에 잡다하겠다 싶겠지만 학자라 그런가 전문성이라는 무게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숲의 생성연대 쫓으면서 숲에 얽힌 인간의 역사도 하나하나 들쳐내고 있다. 철기시대 이전에 그림다이크 숲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설을 흥미있게 진술하면서 이 땅에 로마인이 들어오면서 이 땅에 문화가 싹트고 건축물이 생기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하는 과정을 수다가 아니라 인문, 역사적 식견을 가지고 들려주고 있으니 작가가 고생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숲에 있는 생물들에게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세세할지 상상할 수 있겠다.
이 책을 받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연상하며 카슨의 문학적 감수성과 표현력을 덩달아 기대했다. 그것과는 좀 달랐지만 리처드 포티 역시 ‘그림다이크’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이곳을 애정을 가지고 관찰했기에 그의 생각과 느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포티가 소유한 그림다이크숲은 약 5천평 정도가 된다. 숲의 규모로 보면 그리 큰 것 같지 않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척 섬세하면서도 스펙타클하다. 숲이 빚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포티가 자기 숲에 대한 애정을 가지지 않았으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지 모른다. 꽃을 좋아하고 숲은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있는 숲의 비밀들이 백화점 진열대 상품처럼 펼쳐진다. 견물생심처럼 포티가 전하는 그림다이크 숲의 잉글리시블부벨바다에 대한 동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이 수종인 너도밤나무를 당장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다. 작가도 말하고 있지만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호랑가시나무도 보고 싶어진다. 아울러 어릴적 깨금나무라고 불렀던 개암나무의 열매도 먹어보고 싶어진다.
개암나무 한 그루가 먹여살리는 무척추 동물이 250종이나 된다고 한다. 너도밤나무 한 그루는 500종의 무척추 동물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만큼 그림다이크 숲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자연의 균형을 이루며 생존한다. 모기의 한 종류인 각다귀를 관찰하면서 저자는 지구상의 모든 종은 자기만의 일대기와 살아남기 위한 생존도구, 그리고 흥미로운 비밀을 가진다고 서술하고 있다. 숲을 관찰하고 숲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바로 그들만의 생존도구와 비밀을 알아내는 흥미로운 일임이 분명하고 이 야기를 전해듣는 독자에게도 그 비밀을 알아내는 작업에 겁 없이 동참하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림다이크 숲이 농지로 개간될뻔한 위기를 몇차례 겪지만 숲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그러니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아 살아남았고 이 숲은 여러 수종으로 천이하거나 목재를 필요로하는 주인들에 의해 가꾸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숲이 단순히 관상용으로 또는 정서적 필요에만 국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산업과 생활에 활용한 영국인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다. 주목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 등 각 목재가 건축과 수레바퀴 술통 등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전해주고 있다.
그림다이크 숲에서 생산되는 산미나리, 야생 체리, 꾀꼬리 버섯 등을 재료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어 숲을 그저 호기심으로만 보지 않게 한다. 작가가 송로버섯을 우연찮게 발견한 대목에서는 산이 주는 귀한 약재나 버섯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준다.
작가의 말처럼 숲은 생물종다양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그리 탐탁하지 않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정교한 협업, 아니면 신성한 계획에서 숲은 이루어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숲은 각 생물이 적응한 대로 복잡하게 엮어낸 한 폭이 직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으면 어제 보아던 숲이 오늘에 내일에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보다 더 많이 숲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게 될 것이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도감이 넉넉하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두고두고 읽고 싶은,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