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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척도, 현대인의 르네상스 산책.

 

인간의 척도는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라는 르네상스의 걸출한 천재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쓰인 추리 소설이며, 작가 마르코 말발디는 시종일관 위트 넘치는 표현과 해설, 그리고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이어 나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소 산만하다. 바리의 공작이자 밀라노의 군주인 루디비코 일 모로의 의회실에서, 체칠리아 갈레라니와 분홍색 옷을 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집을 거쳐 프랑스의 샤를 8세의 침실로 이어졌다가 다시 밀라노로 돌아온다. 마치 영화의 짧은 컷들처럼 많은 장소에서 짧은 이야기가 두서없이 펼쳐지고 있으며, 생소한 이름들의 나열로 인해 서두에 나오는 등장인물 설명란을 다시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추리소설답게 이러한 짧은 이야기들은 탐정의 역할을 맡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하나로 조직되어 결국 선명하게 원인과 결과가 파헤쳐지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 지 무려 92페이지가 되었을 때 문제의 사건,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점에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는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어떠한 요소도 없이 책 분량의 1/4을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작가의 유머러스한 해석이 간간히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기는 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현대인이 가상현실 체험 기구를 착용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간접 체험하는 가운데 마르코 말발디라는 친절하고 위트있는 해설사가 그 장면들을 르네상스식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은 추리 소설이라는 점이다. 설록 홈즈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오만과 편견을 보고 나온 기분이랄까...

 

이제 살인사건이 레오나로도 다 빈치에게 맡겨짐으로써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전개도 조금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앞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척도, 이 책은 격변하는 시대적 상황과 각 나라 정치인들의 치열한 계산과 음모가 난무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루드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샤를 8세와 루이 12(루이 드 발루아 오를레앙 공작) 등등의 다채롭고 화려한 등장인물이라는, 충분히 대작이 될 수 있는 구성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재료들을 잘 버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소설의 전개가 좀 더 극적이고, 사건의 개연성이 좀 더 확립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한 가지, 책의 장점에 대해 덧붙이자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당시의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암굴의 성모등을 찾아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일개 용병대장에서 밀라노의 공작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인 루드비코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나중에 루이 12세가 되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야망가 루이 드 발루아, 그리고 그들과 엮어 이탈리아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교황 알렉산데레 6세와 유명한 야심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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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평소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애청하고 있었고 해당 프로그램 시청 중에도 많은 고증 오류와 단순하면서도 성급한 결론 그리고 교양 및 입문서 수준의 깊이에 많은 아쉬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199회에 달하는 장기 프로젝트에서 이 정도 수준의 전쟁사 프로그램은 일찍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런 단점보다는 방대한 전쟁사에 대해 주제별로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는 장점이 훨씬 돋보였다. 또 하나 비전공 분야에 대해서 비록 아쉬움이 있었지만 리더의 조건이나 역사적 문제 인식과 관련한 임용한 교수의 분석과 통찰에 대해 깊이 감탄했던 것도 적지 않은 분량의 동영상 콘텐츠를 모두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1.고대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반가웠다. 우선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고증 오류가 많은 부분 바로잡혔을 것이라 기대되었고, TV 프로그램 시청 중에도 이세환 기자의 무기고가 방송 분량 상의 이유로, 기타 다른 이유로 가장 많이 편집되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주는 소장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매력적인 소재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 무기 이야기의 조금 더 깊이 있는 분석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머리말과 차례를 보는 순간 이 책은 글쓴이의 기대와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먼저 311페이지 분량의 한권의 책으로 11개의 거대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챕터도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다 분석하기에 모자랄 내용인데 이것을 하나의 챕터에 다루고 있으니 교양서 내지 입문서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차라리 앞서 언급했듯이 무기에 대한 이야기에만 집중했었다면 이 책의 구성과 분량이 납득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리말에 나오는 저자의 무기는 결국 전쟁에 쓰이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전쟁의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가 반드시 들어갈 필요가 느껴졌다.”라는 말과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얘기했던 역사 이야기를 필자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넣어주면이라는 말처럼 이 책은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내용을 요약해서 책으로 재출간한 수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고증 오류와 결론의 단순화란 단점을 그대로 범하고 있는 부분도 매우 거슬렸다. 챕터1의 그리스를 페르시아에 비해 문명의 수준이 팍팍 떨어지는 별 볼 일 없는 변방의 깡촌으로 묘사하거나 그리스 철학자들을 대중선동, 정치음모, 권모술수에 능한 양아치 집단에 비유한다던지 도편추방제를 단순하게 평등한 바보들을양산하는 정치 시스템으로 단편적으로 보는 부분은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단순 비교 분석하는 데는 편리할지 모르나 역사를 다루는 사람의 전문적 시각이 아닐 것이다.

   챕터2의 살라미스 해전은 그나마 당시 해전에서의 전선戰船 비교나 해전 전술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하지만 끝부분의 테미스토클레스의 도편 추방에 있어서 다시금 원인의 단순화가 일어난다. 저자에 따르면 테미스토클레스는 당시 그리스 정치가들의 탐욕, 무능, 시기심 등에 의해 도편 추방된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탁월한 혜안과 군사적 재능,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테미스토클레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는 명예욕과 금전욕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저자는 테미스토클레스를 그리스의 이순신으로 만들어 찬양하고 그를 탄핵한 정적들은 몹쓸 정치인들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 소설의 흥미진진한 구도이지 역사는 아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동맹 부담금을 강취하는 언행과 본인 스스로의 성격적 단점에 의해 도편 추방되었고 그의 정적은 무려 정의로움과 가난함의 대명사였던 아리스티데스였다.

   그 외의 다른 챕터는 글쓴이가 평가할 능력이 부족하여 달리 언급할 것이 없었지만 챕터72차 포에니 전쟁 부분은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고증 오류 부분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인다. 알프스를 넘었을 때 보병 9만이 2만으로 줄었다든지, 카르타고 본국에서 한니발이 로마 전역을 휩쓴 15년 동안 밀 한 톨 지원해주지 않았다든지 방송 당시에도 수많은 비판을 받았는데도 버젓이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글쓴이 혼자만의 기대라는 기준을 버린다면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고대편은 쉽게 접하기 힘든 역사라는 분야를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 입문서의 역할은 톡톡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이 뒤에 나오는 작품이라면 전작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계속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은 글쓴이만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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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역사를 산맥이나 대하大河에 빗댄 소설과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긴 강과 높은 산맥은 둘 다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산은 수많은 생명을 아우르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한편으로 굳건함과 웅장함을 함유하여 역사의 올곧음을 잘 표현한다. 그에 비해 강은 도도히 흐르면서 천변하고 만화하는 모습을 띠어 역사의 역동성을 잘 드러낸다.

소설 금강16세기 당시 조선 사회의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얽히어 일어나는 사건과 변화를 강물의 흐름처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소설의 구도를 매우 다층적으로 배치하여 책을 읽는 내내 각 인물들의 상생과 대립이 유연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역사의 서사적 진행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청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특징이 돋보인다. 소설 내내 주인공들은 소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정서의 특징인 을 소리로 잘 드러낸다. 철학자 들뢰즈는 색채와 음을 통해,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를 구분함으로써 현실성이 지배하는 보이는세계와 잠재성이 지배하는 들리는세계를 구분하는데, 이러한 대조는 소설 금강에서도 유의미하게 적용해볼 수 있다.

역사를 저마다의 사건과 삶들이 뒤섞이는 복합개념으로 본다면 역사는 분명 보이는 세계라기보다는 들리는 세계의 영역이다. 다양한 색채들은 자기 고유의 영역을 지녀야 하고 그 영역을 넘어서면 서로 섞여 용해되어버린다. 그에 비해 소리의 세계는 탈영토화가 일어나도 각자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오케스트라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며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대조되는 듯하다.

또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주제,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들리는 세계가 지닌 잠재성과 연관된다. 금강의 여주인공들, 연향에서 영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품고 그것을 갈구한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모든 것을 안아주면서 백성을 이상 세계로 인도해주는 존재,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이름 그대로 세상의 소리는 보는존재이다. 이 세상의 소리는 현실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소리는 억눌린 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소리이다. 부당하고 불공정하며,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의 소리이다. 이 역동적인 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잠재적인 힘이 된다.

소설 금강은 분명 대하소설의 명맥을 잇는 대작이자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글쓴이의 부족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의문점과 불편함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스승 충암과 비교되는 남원의 언행이다. 충암 선생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여민동락의 대동 사회를 제시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인 동계와 향약을 제안하는 동시에 연향으로 하여금 경제적 토대도 마련하게 한다. 무엇보다 충암은 당대의 유자儒子이자 지식인으로서 진솔한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다. 다음 글을 보자.

대동세상은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정암이 말하는 군자들의 나라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이들도 서로 군자의 도를 말하며 죽이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분명 그들은 진정한 군자는 아니었다... 남을 죽이고 얻은 권력으로 어찌 덕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권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과 덕을 가장한 군림의 방편이었다. 이는 자기를 채우고자 하는 위선이고 속임수였다. 섬김이 아니었다.”

이런 충암을 이어받은 남원이 하는 말을 보자. 3권에 나오는 글이다.

정 방법이 없으면 백주라도 칼을 써야 하네. 넓은 마당이 아니라 대궐 앞 성문에서라도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게 사는 방법이야.”

충암의 일생의 사명을 이어받은 남원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둘째로, 소설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희미해지고, 수동적이 되어가는 여주인공들이다. 2부의 미금조차 1부의 연향을 컨트롤C, 컨트롤V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는데, 부용, 수련은 그 미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한정과 아현각 등 동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연향이 가장 적극적으로 돋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는 하지만 5명의 여주인공들이 보이는 똑같은 모습은 3부가 지나갈 무렵부터 새로운 여주인공에 대한 기대를 거두게 만든다.

끝으로, 씁쓸하게 마지막 권의 책장을 덮게 만든 소금거래와 관련된 것이다. 수련의 상단은 여진인들과의 소금 거래를 통해 전란의 징조를 미리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 상단과 허균은 전쟁을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는다. 단지 소금거래를 통해 동계의 안위를 보장받게 된다는 결말을 암시할 뿐이다. 더불어 살고자 하는 대동사회를 꿈꾸며,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인간이 우선이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우의 세상을 꿈꾸었다는 그들이, 이미 한 차례 왜란의 끔찍한 참상을 겪었던 사람들이 마치 호란을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정말 석연치 않았다.

 

소설 금강은 분명 일독을 추천할 만큼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모처럼의 대하소설이지만, 글쓴이에게 있어서는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완독의 의무감으로 인해 책장을 덮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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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 사람의 마음이 세상 사물이나 풍속과 감응하여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대상에는 올바른 것과 사악한 것이 있으니, 시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 우리는 시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여, 올바른 시는 모범으로 삼고 사악한 시는 자신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조선 사림士林이 그토록 존숭했던 주희朱熹의 글이다. 여기에 시 대신 그림이란 단어를 대신하여 넣어보자. 시가 언어로 표현된 것이고, 그림이 붓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차이 외에 특별히 고칠 것이 없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으며 국가의 제도에서 민간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이라는 토대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 조선회화실록은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왕조실록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회화작품을 연결하여 조선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특히 그림에 투영된 사회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평소 회화사에 무지한 글쓴이로서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500년 조선왕조사를 400페이지에 못 미치는 분량으로 그 함의를 담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몇 가지 정독을 방해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먼저 회화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다. 역사를, 결과를 아는 사람의 눈으로 어진을 분석하는 과정이 무리하게 확대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몇몇 그림은 실록의 역사적 배경과 억지로 연관시켜 놓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둘째로 조선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새로 세우고, 변화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끝내 쇠망하는 일련의 역사를 역대 왕들과 신하들의 관계 즉, 정치에만 너무 국한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록에 근거했기 때문에 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역사의 어떤 국면에서 임금과 신하의 역량과 노력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어조가 느껴져 불편했다.

   셋째,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굳이 책의 끝에 그림을 따로 배치했어야 했는가 싶다. 읽는 내내 삽화를 참고하기 위해 책을 뒤적여야 하는 편치 않은 경험을 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분들에게는 조선회화실록에 대해 꼭 일독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조선이라는 사회가 비록 비참하게 스러져갔지만 그래도 500년 왕조의 명맥을 이었던 나라이고, 성리학이 단점도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요소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조선이란 나라를 조금은 더 호의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 또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500, 그 세월 동안 정말 인간 망종이었던 왕이 단 하나에 불과했다면 그 사회는 그래도 정상적이고 건전한 국가체제와 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또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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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와 불의 만남, 요리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이 무엇이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에서,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서, 우리는 또한 인간이 다른 동식물과 현저하게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식재료와 불의 조율을 통해 문화,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식물이나 육류를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인위를 더해, 즉 자연을 가공함으로써 먹을 것을 장만하였고 단순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합적인 예술로써 음식을 준비하고 그것을 나누어먹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서문에 모든 식탁은 역사로 통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요리가 인간의 역사, 그 자체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는 중국을 만든 음식, 역사를 바꾼 음식이란 관점에서 중국사를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도이며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음식 이야기로 역사를, 또는 중국을 설명하고자 한다.

 

 

음식을 통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

 

책의 내용 중에 데이비드 이스턴 시카코 대학 교수의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란 표현이 있다. 저자는 이를 고대의 중국에서 재상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관장하며 제사 이후에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일이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알고 있는데 바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마구스magus’가 맡은 역할이다. 마구스는 아후라 마즈다 신의 현현인 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또한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한다.

즉 고대 중국의 재상과 조로아스터의 사제 마구스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배분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특히 음식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사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종자와 음식, 조리법의 동서 교류, 그리고 중국 문화

 

책에서는 중국의 음식 문화를 바꾼 밀의 수입과 각종 야채와 구황작물의 종자 수입에 관한 이야기부터 그로부터 발생한 중국의 문화사적 변화도 언급하고 있다. 치즈를 대신한 두부, 동서 교류가 만들어낸 소주, 정화함대의 후추무역, 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인 고구마 등 다양한 식품과 관련된 일화들이 중국 음식과 역사에 대한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중국이 실제 역사적으로 얼마나 서역과 많은 문화적 교류를 했는지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중화라는 허세의 민낯도 잘 보여준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는 주제에서부터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요리하는 인간이라는 인간의 특성을 역사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었으며 요리와 음식을 통한 교류와 소통, 나눔의 사회적 가치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이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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