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를 산맥이나 대하大河에 빗댄 소설과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긴 강과 높은 산맥은 둘 다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산은 수많은 생명을 아우르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한편으로 굳건함과 웅장함을 함유하여 역사의 올곧음을 잘 표현한다. 그에 비해 강은 도도히 흐르면서 천변하고 만화하는 모습을 띠어 역사의 역동성을 잘 드러낸다.

소설 금강16세기 당시 조선 사회의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얽히어 일어나는 사건과 변화를 강물의 흐름처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소설의 구도를 매우 다층적으로 배치하여 책을 읽는 내내 각 인물들의 상생과 대립이 유연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역사의 서사적 진행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청각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특징이 돋보인다. 소설 내내 주인공들은 소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정서의 특징인 을 소리로 잘 드러낸다. 철학자 들뢰즈는 색채와 음을 통해,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를 구분함으로써 현실성이 지배하는 보이는세계와 잠재성이 지배하는 들리는세계를 구분하는데, 이러한 대조는 소설 금강에서도 유의미하게 적용해볼 수 있다.

역사를 저마다의 사건과 삶들이 뒤섞이는 복합개념으로 본다면 역사는 분명 보이는 세계라기보다는 들리는 세계의 영역이다. 다양한 색채들은 자기 고유의 영역을 지녀야 하고 그 영역을 넘어서면 서로 섞여 용해되어버린다. 그에 비해 소리의 세계는 탈영토화가 일어나도 각자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오케스트라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며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대조되는 듯하다.

또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주제,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들리는 세계가 지닌 잠재성과 연관된다. 금강의 여주인공들, 연향에서 영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품고 그것을 갈구한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모든 것을 안아주면서 백성을 이상 세계로 인도해주는 존재,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이름 그대로 세상의 소리는 보는존재이다. 이 세상의 소리는 현실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소리는 억눌린 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소리이다. 부당하고 불공정하며,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의 소리이다. 이 역동적인 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잠재적인 힘이 된다.

소설 금강은 분명 대하소설의 명맥을 잇는 대작이자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글쓴이의 부족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의문점과 불편함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스승 충암과 비교되는 남원의 언행이다. 충암 선생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여민동락의 대동 사회를 제시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인 동계와 향약을 제안하는 동시에 연향으로 하여금 경제적 토대도 마련하게 한다. 무엇보다 충암은 당대의 유자儒子이자 지식인으로서 진솔한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보여준다. 다음 글을 보자.

대동세상은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 정암이 말하는 군자들의 나라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이들도 서로 군자의 도를 말하며 죽이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분명 그들은 진정한 군자는 아니었다... 남을 죽이고 얻은 권력으로 어찌 덕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권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과 덕을 가장한 군림의 방편이었다. 이는 자기를 채우고자 하는 위선이고 속임수였다. 섬김이 아니었다.”

이런 충암을 이어받은 남원이 하는 말을 보자. 3권에 나오는 글이다.

정 방법이 없으면 백주라도 칼을 써야 하네. 넓은 마당이 아니라 대궐 앞 성문에서라도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게 사는 방법이야.”

충암의 일생의 사명을 이어받은 남원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둘째로, 소설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희미해지고, 수동적이 되어가는 여주인공들이다. 2부의 미금조차 1부의 연향을 컨트롤C, 컨트롤V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는데, 부용, 수련은 그 미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한정과 아현각 등 동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연향이 가장 적극적으로 돋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는 하지만 5명의 여주인공들이 보이는 똑같은 모습은 3부가 지나갈 무렵부터 새로운 여주인공에 대한 기대를 거두게 만든다.

끝으로, 씁쓸하게 마지막 권의 책장을 덮게 만든 소금거래와 관련된 것이다. 수련의 상단은 여진인들과의 소금 거래를 통해 전란의 징조를 미리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 상단과 허균은 전쟁을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는다. 단지 소금거래를 통해 동계의 안위를 보장받게 된다는 결말을 암시할 뿐이다. 더불어 살고자 하는 대동사회를 꿈꾸며, 백성이 주인되는 세상, 인간이 우선이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우의 세상을 꿈꾸었다는 그들이, 이미 한 차례 왜란의 끔찍한 참상을 겪었던 사람들이 마치 호란을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정말 석연치 않았다.

 

소설 금강은 분명 일독을 추천할 만큼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모처럼의 대하소설이지만, 글쓴이에게 있어서는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완독의 의무감으로 인해 책장을 덮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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