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사람의 마음이 세상 사물이나 풍속과 감응하여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이 느끼는 대상에는 올바른 것과 사악한 것이 있으니, 시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 우리는 시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여, 올바른 시는 모범으로 삼고 사악한 시는 자신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조선 사림士林이 그토록 존숭했던 주희朱熹의 글이다. 여기에 시 대신 그림이란 단어를 대신하여 넣어보자. 시가 언어로 표현된 것이고, 그림이 붓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차이 외에 특별히 고칠 것이 없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으며 국가의 제도에서 민간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이라는 토대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 조선회화실록은 이러한 시각에서 조선왕조실록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회화작품을 연결하여 조선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특히 그림에 투영된 사회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평소 회화사에 무지한 글쓴이로서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500년 조선왕조사를 400페이지에 못 미치는 분량으로 그 함의를 담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몇 가지 정독을 방해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먼저 회화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다. 역사를, 결과를 아는 사람의 눈으로 어진을 분석하는 과정이 무리하게 확대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몇몇 그림은 실록의 역사적 배경과 억지로 연관시켜 놓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둘째로 조선이라는 하나의 사회가 새로 세우고, 변화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끝내 쇠망하는 일련의 역사를 역대 왕들과 신하들의 관계 즉, 정치에만 너무 국한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록에 근거했기 때문에 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역사의 어떤 국면에서 임금과 신하의 역량과 노력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어조가 느껴져 불편했다.

   셋째,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굳이 책의 끝에 그림을 따로 배치했어야 했는가 싶다. 읽는 내내 삽화를 참고하기 위해 책을 뒤적여야 하는 편치 않은 경험을 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분들에게는 조선회화실록에 대해 꼭 일독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조선이라는 사회가 비록 비참하게 스러져갔지만 그래도 500년 왕조의 명맥을 이었던 나라이고, 성리학이 단점도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요소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조선이란 나라를 조금은 더 호의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 또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500, 그 세월 동안 정말 인간 망종이었던 왕이 단 하나에 불과했다면 그 사회는 그래도 정상적이고 건전한 국가체제와 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또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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