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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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원천은 공동체다. 문화는 공동체를 창출하는상징적 가치들을 매개한다. 문화가 더 많이 상품으로수록, 문화는 자신의 원천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문화의 전면적 상업화와 상품화에 따른 귀결은 공동체의 파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커뮤니티를community‘는 상품의 형태를 띤 공동체다. 그 커뮤니티의종착점은 상품으로서의 공동체다. - P32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스마트하다. 스마트한권력은 명령과 금지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그 권력은우리를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존하고 갈망하게만든다. 우리의 의지를 꺾는 대신에, 스마트한 권력은 우리의 욕구를 이용한다. 그 권력은 우리의 마음에 들고자한다. 그 권력은 억압적이지 않고 허용적이다. - P43

미셸 푸코는 철학을 일종의 급진 저널리즘이라고칭하고 스스로를 저널리스트로 간주합니다. 철학자들은가차 없이 "오늘"을 다뤄야 한다고 그는 말하죠. 이 측면에서 저는 푸코를 추종합니다. 저는 오늘을 사유로 파악하려 애써요. 그리고 바로 이 사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 P163

한병철 리추얼은 삶을 구조화하고 안정화하는 시간-건축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리추얼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감염병 대유행은 리추얼의 종말을 앞당기는 중이고요.
노동도 리추얼의 면모를 지녔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일터로 출근하죠.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노동이 이루어져요. 그러나 홈오피스에서는 이런 노동의 리추얼적계기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루가 리듬과 구조를 상실 - P179

하죠. 그래서 우리는 왠지 피로하고 우울해져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항상 같은 시간에 찾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어린 왕자의 방문이 리추얼이 되게 하려는 거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리추얼이 뭔지 설명해요. 공간 안에 거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안에는 리추얼이 있어요. 리추얼들은 시간을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요. 리추얼들은 시간을정리하고 정돈하죠. 그 결과로 시간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고요. 오늘날 시간은 확고한 짜임새가 없어요. 시간은 집이 아니라 불안정한 흐름이에요. 리추얼들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삶의 철저한 유동화는 상실을 동반해요. 리추얼은 그저 자유를 제한하기만 하지 않아요. 리추얼은 삶을 구조화하고 안정화합니다. 리추얼은 공동체를 창출하는 가치들과 상징적 질서들을 몸에 정박해요. 리추얼에서 우리는 공동체를, 공동체의 가까움을 몸으로 체험합니다. 반면에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신체화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감염병 대유행까지 덮쳤어요. 이 대유행은 신체적 공동체 경험의 상실을 심화합니다. ‘우리가 혼자서 삶에 닻을 내릴 수는 없냐‘고 물으셨죠? 오늘날 우리는 모든 리추얼을 겉치레로, 형식적인 것으로, - P180

컨대 진정성 없는 것으로 보면서 배척합니다. 자아를 중심에 놓은 진정성 문화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은 다름 아니라 신자유주의예요. 진정성 문화는 리추얼화된 상호작용 형식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합니다. 오직 자발적인 느낌의 동요만, 바꿔 말해 주관적 상태만 진정성이 있다는식이죠. 형식화된 행동은 진정성이 없다거나 겉치레라는이유로 제거됩니다. 예컨대 공손함이 그래요. 나르시시즘적 진정성 숭배는 사회의 야만화를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제 책에서 저는 진정성 숭배에 맞서 아름다운형식들의 윤리를 옹호합니다. 공손한 형식들은 한낱 겉치레가 아니에요. 프랑스 철학자 알랭은 공손한 몸짓들이 우리의 생각에 미치는 힘이 강력하다고 말해요. 상냥함, 호의적임, 기쁨을 몸짓으로 흉내 내고 거기에 필요한허리 굽히기 같은 동작을 하면 나쁜 기분을 개선하는 데도움이 될뿐더러 복통을 완화하는 데도 유익하다는군요.
내면적인 것을 고수하는 쪽보다 외면적인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고 절망하는대신에 그냥 미사에 가서 기도와 노래를 비롯한 리추얼을 함께하라고, 즉 흉내 내라고 파스칼은 말했어요. 그러면 바로 그 흉내 내기를 통해서 믿음이 돌아온다면서요.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을 바꾸고 새로운 상태를 창출합 - P181

니다. 바로 이것이 리추얼의 힘이에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의식은 더는 사물들에 정박해 있지 않습니다. 외적인 것으로서의 사물은 의식을 아주 효과적으로 안정화할수 있어요. 반면에 정보로 의식을 안정화하기는 아주 어려워요. 왜냐하면 정보는 덧없고 현재성을 띠는 기간이아주 짧거든요.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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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에 관하여 - 먼 곳의 자유
자크 랑시에르 지음, 유재홍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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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고, 기약할 수 없으며, 그 끝이 미완으로 끝나더라도
끊임없이 자유를 그려내려는 시도
- 그것이 문학이 시대에 맞서는 방식
(체호프에 바치는 랑시에르만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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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사건 Ereignis인 척한다. 정보는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 Reiz der Uberraschung을 먹고 산다. 그러나흥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금세 새로운 흥분을 향한 욕구가 생긴다. 우리는 흥분을, 놀람을 목적으로 실재를 지각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정보 사냥꾼으로서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들을, 곧 평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 혹은 통상적인 것들을 못 보게 된다. 자극성이 없지만 우리를 존재에 정박하는 것들을. - P9

사물은 인간의 삶에 연속성을 제공하는 한에서 삶을안정화한다. 그 연속성은 "같은 의자와 같은 탁자가 매일변화하는 사람 앞에 같게 머무르는 친숙함을 띠고 놓여
"3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사물들은 삶의 안식처들이다.
정보 곁에 하염없이 머물기는 불가능하다. 정보가 현재성Aktualität을 띠는 기간은 아주 짧다. 정보는 놀람을 먹고 산다. 정보의 덧없음이 벌써 삶을 불안정화한다. 오늘날 정보는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요구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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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폭력만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타자의 추방은 아주 다른 파괴 과정을, 즉 자기파괴를 작동시킨다.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은 자기파괴적인 특징을나타낸다. - P8

오늘날에는 지각 자체도 "빈지 워칭 Binge Watching, 즉혼수상태에 이르도록 뚫어지게 보기의 형태를 취한다. 이는 어떠한 시간 제한도 없이 비디오와 영화를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의 취향에 아주 잘 맞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드는 영화와 시리즈 들이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제공된다. 소비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같은 것을 섭취하고소비가축처럼 살이 찐다. 혼수상태에 이르도록 뚫어지게 보기는 오늘날의 지각 방식 전반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 - P8

동일자는 언제나 타자와 쌍을 이루어등장한다. 이에 반해 같은 것에는 이것을 제한하고 이것에형태를 부여해줄 변증법적인 상대방이 없다. 그래서 같은것은 형태 없는 덩어리로 창궐한다. 동일자는 타자에 대한차이 덕분에 형태와 내적 밀도, 내면성을 지닌다. 이에 반해 같은 것은 형태가 없다. 같은 것에는 변증법적인 긴장이 없기 때문에 서로 무관심한 병존, 서로 구별되지 않는창궐하는 덩어리가 생겨난다. "차이를 생각할 때만 동일자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P9

신자유주의는 자신을 자유로 내세우지만, 이 자유는 광고다. 세계적인 것은 오늘날 보편적 가치들까지 잠식하고 있다. 그 결과 자유 자체가 착취당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현한다는 망상에 빠져 자발적으로스스로를 착취한다. 자유의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착취가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비열한 기본 논리다. - P29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환대가 "너무나 풍요로운 영
"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영혼은 모든 단독적인 것들을 자신 안에 머물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생성 중인것, 떠도는 것, 추구하는 것, 덧없는 것을 나는 여기서 환영한다! 이제 환대는 나의 유일한 친교관계다."20 환대는화해를 약속한다. - P32

결국 우리는 언제나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선의와 인내심과 공평함과 온유함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이 보상은 낯선 것이 천천히 자신의 베일을 벗고, 새롭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진다이것이 우리의 환대에 대한 그의 감사다."21 아름다움의 정치는 환대의 정치다. 이방인에 대한 적대성은 증오이며 추하다. 이 적대성은 보편적 이성의 결여를, 사회가 여전히 화해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한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는 바로 이 사회의 환대, 나아가 친절함이다. 화해는 친절함을 뜻한다. - P33

오늘날에는 새로운 형태의 소외가 생기고 있다. 그것은더 이상 세계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파괴적인자기소외, 즉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다. 이 자기소외는 다름아닌 자기최적화 및 자기실현과 더불어 생겨난다. 성과주체가 자신을, 예컨대 자신의 몸을 최적화해야 할 기능적 객체로 지각하는 순간, 이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서서히 소외된다. - P62

라지게 하는 것으로부터 이 문을 구해낸다."49 한트케는 시장으로 가서 반체로서의 사물들을 마음속에 그려낸다. 이사물들은 모두 다 무겁고 견고하다. 그것들은 자기 안에서고요히 존재한다. "숲처럼 어둡고 견고한 꿀단지, 칠면조처럼 커다란 스프용 닭, 특이한 노란색의 둥지 스파게티*혹은 왕관 스파게티, ** 때로는 맹수처럼 뾰족한 입을 가진,
때로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대한 민물고기들이 그런 사물들이다.
디지털 질서는 점점 더 세계를 탈물체화한다. 오늘날에는 물체들 사이의 소통이 갈수록 줄어든다. 디지털 질서는 사물들로부터 그 물질적 묵직함과 질량, 고유한 무게, 고유한 삶, 고유한 시간을 빼앗고, 사물들을 언제든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며, 그럼으로써 반체 또한 제거한다. - P67

타자를 너로서 호출하는 것에는 위험이 없지 않다. 우리는 타자의 다름과 낯섦에 자신을 내맡길 각오를 해야 한다. 타자의 "너계기"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다. 그것은
"우리를 잡아채 위험한 극단으로 몰아가고, 검증된 연관을느슨하게 풀고, 만족보다는 의문을 더 많이 남겨놓으며,
안전을 뒤흔들고, 그래서 섬뜩하고, 그래서 불가결하다."96오늘날의 소통은 타자로부터 너-계기를 제거하고, 타자를
"그것ES"으로, 즉 같은 것으로 획일화하려고 한다. - P101

사랑은 언제나 다름을 전제로 한다. 타자의 다름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다름도 사랑의 전제다. 사람의 이원성은자신에 대한 사랑에 필수적이다. "다른 한 사람이 우리와다른, 우리와 대립되는 방식으로 살고 활동하고 느낀다는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 말고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대립하는 것들을 기쁨으로 연결하려면 사랑은이 대립하는 것들을 제거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자기애도 한 사람 속에 있는, 서로 뒤섞을 수 없는 이원성(혹은 다원성)을 전제로 한다."" - P106

이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도 사랑을 "둘의 무대"10"라고부른다. 사랑은 세상을 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창조하고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사랑은 전적으로다른 것이 시작되게 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하나의 무대에서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생산관계가 의도적으로 사육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착취하는 에고는 병적으로 비대해져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다시 타자로부터, 타자에 대한관계로부터 새롭게 보고, 타자에게 윤리적인 우선권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나아가 타자를 경청하고 타자에게 대답하는 책임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레비나스는 "말하기dire"로서의 언어를 다름 아닌 "한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 10‘이라고 보았다. 오늘날에는 타자의 언어로서의저 "가장 근원적인 언어"가 과잉소통의 소음에 파묻히고있다. - P107

경청은 선사하는 것, 주는 것, 선물이다. 경청은 타자가 비로소 말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경청은 타자의 말을수동적으로 좇아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경청은 말하기에 선행한다. 경청은 타자로 하여금 비로소 말을 하게 한다. 나는 타자가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경청한다. 혹은 나는타자가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경청한다. 경청은 타자를말하기로 초대하고, 타자가 그의 다름을 드러내도록 풀어준다. 경청은 타자가 자유롭게 말하는 공명의 공간이다. 그래서 경청은 치유할 수 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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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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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둘러싸인 여자, 세상 밖으로 여자를 나오게 만든 남자 그리고 이들에게 남겨진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동화이다.고귀하고 아름다운 공주와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남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냈던 천일야화 모두 너무나도 익숙하다.
소설은 아주 오래된 옛 동화들을 차용하고, 변주하면서 20세기 고단했던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삶을 신비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난폭한 역사 앞에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들의 삶은, 어쩌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이상 새로울 게 하나 없는 이들의 부박한 삶은 소박한 삶을 바라는 믿음의 결정체로 보인다. 어쩌면 이들에게 동화는 현실의 잊게 만드는 환각제가 아니라 소박한 진실을 바라는 굳은 믿음 같은 것이 아닐런지..
그렇기에 동화는 철지난, 퇴색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간절함 염원으로 이루어진 여전히 새로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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