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에 둘러싸인 여자, 세상 밖으로 여자를 나오게 만든 남자 그리고 이들에게 남겨진 아이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동화이다.고귀하고 아름다운 공주와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남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냈던 천일야화 모두 너무나도 익숙하다. 소설은 아주 오래된 옛 동화들을 차용하고, 변주하면서 20세기 고단했던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삶을 신비롭고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난폭한 역사 앞에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들의 삶은, 어쩌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이상 새로울 게 하나 없는 이들의 부박한 삶은 소박한 삶을 바라는 믿음의 결정체로 보인다. 어쩌면 이들에게 동화는 현실의 잊게 만드는 환각제가 아니라 소박한 진실을 바라는 굳은 믿음 같은 것이 아닐런지..그렇기에 동화는 철지난, 퇴색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간절함 염원으로 이루어진 여전히 새로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