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는 "죽음에서 본 4·19"란 글에서 "일전에 수유리4-19 묘지에 갔다가 새삼스레 느낀 일" 이라며 이렇게 썼다. "그 185개의 묘 중 어찌 단 하나의 어른의 묘도 없이 한결같이 모두 젊은 학생들의 묘뿐인가 하는 것이다. 즉 학생들은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그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수나 교사는 왜 단 한 명도 죽은 자가 없었는가? 그때 죽은 학생들의 수효만큼 어른들 - 소위 지도자, 교수, 정치인 - 도죽을 수가 있었던들 오늘날의 이 나라 형편이 이렇게까지야 될 것인가하는 느낌이 들 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을 포함하여 이 나라의 어른들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후안무치의 철면피들인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장준하는 "피를 마시며 밖에 자라지 못하는 자유라는 나무가 아직도 이 땅에서는 충분히 자랄 만큼 피가 흘려지지못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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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의 증거가 된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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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깔아뭉갠다고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형태로 곪아터질 것이다. 강함과 슬픔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있다. 우리는 슬픔을 다룰 만큼 강해져야 하고, 궁극에 가서 슬픔은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강함을 드러내준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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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바르게 살면 그 대가로 고통 받지 않고 살수 있을까.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만다.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할 권리를 조용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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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비밀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을 바꿔놓지 못한다. 다이아몬드의 모든 면이 진짜지만 각각 다른 형상을 보이는 것처럼, 그들의 다른 면 때문에 사랑한 이에 대해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부정하지 말라. 당신이 알았던 것은 모두 진짜였다. 당신이 발견한 것도 진짜일 것이다. 그 비밀이 부정적인 것이면 당신처럼 그도 단지 인간일 뿐이었음을 깨닫도록 최선을 다하라. 필요하다면 그 비밀을 잊어버리고 그렇지 않으면 몰랐던 사실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라. 죽음은 사생활에 침입해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기회를 빼앗아가 버린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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