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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생리학 - 3차 수정판
이경준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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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생리학은 수목에 생리 현상을 나타내는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목이 자라는 기본 원리를 규명하고, 수목이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어떻게 적응하여 생장하는가를 연구한다. 산림학도로서 수목생리학은 기본적으로 꼭 알아야 하는 학문 분야이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이경준 전 산림과학부 교수님이 집필하신 <수목생리학>을 완독하였다.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장의 내용을 요약해서 작성하면 분량이 너무 많아지므로 수목의 기초적인 특성과 생장의 원리를 다루는 제 1장 ~ 제 5장의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또한 수목생리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서술하려고 한다.



제 1장 서론에서는 수목의 정의와 특징에 대해 다룬다. 목본식물이란 형성층에 의해 2차 생장을 하여 직경이 증가하는 식물이다. 목본식물은 또한 겨울철에 지상부가 살아 남아 있으며, 단일 수간이다. 수목은 초본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먼저 직경 생장을 하기 때문에 견고한 수간을 가지며 몸체가 크다. 그리고 다년생 식물로서 오랫동안 살아간다. 또 긴 세월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생식생장에 에너지를 많이 투자하지 않는다.



제 2장 수목의 구조에서는 잎, 줄기, 뿌리 등 수목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 다룬다. 피자식물의 잎은 엽신과 엽병으로 이루어져 있고, 엽신은 표피에 둘러싸여 있으며, 표피의 표면에는 각피층이 있어 수분 증발을 억제한다. 양쪽 표피세포의 안쪽을 통틀어 엽육이라 일컫는다. 엽육조직은 표피, 책상조직, 해면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자식물의 엽육조직은 책상조직과 해면조직으로 분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소나무류의 경우 분화되어 있지 않다. 소나무류의 표피조직은 표피세포와 내표피세포로 되어 있고 엽육조직 안쪽에는 치밀한 단일 세포층인 내피가 존재한다. 줄기는 중심부로부터 바깥 방향으로 보았을 때 수, 심재, 변재, 형성층, 사부, 코르크조직, 외수피로 구성된다. 형성층이 2차 생장을 하여 안쪽으로는 목부를 만들고 바깥쪽으로는 사부를 만든다. 뿌리는 형태에 따라 직근, 측근, 장근, 단근, 개척근, 모근 등으로 분류된다. 뿌리에는 수베린을 함유한 카스페리안대가 존재하여 물질을 선택적으로 흡수한다.



제 3장 수목의 생장에서는 수고생장, 직경생장, 뿌리생장을 다룬다. 수고생장은 줄기의 수직적 생장이다. 눈(bud)이 터서 길게 자라면서 줄기가 신장한다. 수고생장은 유한생장과 무한생장으로 나뉘는데, 유한생장은 정아가 줄기의 생장을 조절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무한생장은 측아가 정아 역할을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또한 고정생장과 자유생장으로도 나눌 수 있다. 고정생장은 당년에 자랄 모든 줄기의 원기가 전년도에 형성된 동아 속에 미리 형성된 경우를 의미하며, 자유생장은 1년에 한 차례 이상 원기가 만들어지고 시기에 따라 그 원기가 자라는 경우를 의미한다. 직경생장은 형성층의 활동에 의해 일어나며, 주로 형성층 안쪽에 만들어지는 2차 목부에 의해 이루어진다. 뿌리는 종자 내 배의 유근이 발아하여 직근이 되며 발달하기 시작해 측근을 형성하고, 측근이 다시 갈라지며 세근을 형성한다.



제 4장 햇빛과 광합성에서는 빛이 수목에 미치는 효과와 광합성 기작에 대해 다룬다. 빛은 광합성, 종자의 발아, 잎의 모양과 배열, 줄기의 생장과 굵기, 증산작용 등 수목의 생리적 현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생태학적으로 식물의 분포를 결정하며 공기, 강우, 바람 등 환경요인에도 영향을 끼쳐 수목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합성은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엽록소가 태양에너지를 모아 원동력을 제공하면 공기 중의 CO2와 물을 원료로 하여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 광합성은 광반응과 암반응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광반응은 엽록소가 태양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고, 단백질군이 작용하여 물분자를 분해해 산소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NADP를 환원하여 NADPH를 만들고 ATP를 생산한다. 암반응은 CO2를 이용하여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과정이다.



제 5장 호흡에서는 호흡의 기작에 대해 다룬다. 호흡은 기질을 산화시키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과정이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는 ATP로 변형되어 잠시 저장되었다가 에너지가 필요한 대사과정에 이용된다. 호흡은 해당 과정, Krebs 회로, 전자전달계의 3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호흡을 화학적으로 표현하면 C6H12O6 + 6O2 -> 6CO2 + 6H2O + 686kcal -> ATP 생산이다. 호흡 작용은 살아 있는 원형질을 가진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난다.



수목생리학을 공부하면서 수목의 구조와 기능, 수목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배우게 되어 매우 유익했다. 다른 전공 수업에서는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 어떻게 관리할지, 어떻게 이용할지 등을 배운다면 수목생리학 수업에서는 나무 자체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우게 되어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 수목을 보호하든, 관리하든, 이용하든 수목의 생리학적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학기에 수목생리학 교재를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그러한 수목 생리의 기본 원리를 알게 되어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겉보기에는 별다른 변화도 없어보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한 듯이 보이는 나무도 속을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한 대사 작용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온갖 효소와 단백질이 관여하는 복잡한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때로는 어렵기도 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식물의 놀라운 정교함과 복잡성을 깨닫게 되어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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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학: 어디로 갈 것인가
요 리츤 지음, 윤희원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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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에서는 매년 세계대학의 순위를 발표한다. 매해 발표될 때마다 어느 정도 순위의 변동은 있지만, 항상 최상위 랭킹을 차지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MIT, 하버드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영미권 대학이 그것이다. 2020년 세계대학순위를 보면 TOP 20 랭킹에 미국 대학이 10곳, 영국 대학이 5곳, 싱가포르와 스위스가 각각 2곳, 중국 대학이 1곳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최상위권 대학은 미국과 영국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의 대학은 TOP20, 혹은 TOP50까지 살펴보아도 그 수가 적은 것일까.



사실 대학이라는 기관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설립되었는데,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또한 'university'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대학은 미국의 대학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판도가 크게 뒤바뀌었다. 미국은 고학력 노동력을 확대 공급하기 위해 신속하고 재정 기반이 확실한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상위권 대학의 수준은 유럽 대학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대학에 공공 재정과 민간 재정을 많이 투자하여 유능한 교직원과 학생을 세계 각지에서, 특히 유럽에서 많이 끌어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요 리츤은 세계적으로 순위가 높은 대학은 재정이 더 튼튼하고, 자율성이 더 많고, 최상급 교수들이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유럽의 경우 재정적으로 불충분하고, 자율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탓에 유럽이 갖는 사회, 경제적 경쟁력만큼 유럽의 대학이 충분히 높은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대학들은 유럽이 아닌 자국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해, 세계화된 노동 시장을 아직 교육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고등교육과 연구에서 예산을 삭감해 예산 손실을 줄이려는 전략은 대학의 경쟁력을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먼저 유럽의 대학 전체에 두루 적용되는 '유럽 학칙'을 만들어 유럽 내에서 학생들의 이동을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대학의 관리는 EU 사무국 아래에 독립기관으로 두어 자율적으로 운영되게 한다. 또한 공동 학위제를 신설해 한 나라에서 대학을 다녀도 다른 유럽 국가의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비유럽 학생들을 유럽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대학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물론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면 그 노력과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유럽에 와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대학은 아니더라도, 일부 대학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민간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다만 가난한 학생도 능력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 사업에 적극적으로 재원을 투입하여야 한다. 유럽은 지금까지 민간 재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 결과, 민간 재정이 증가한다고 해서 기회 균등의 정도가 그리 감소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데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로 충분히 지원해주면 큰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등록금 인상이나 기부금과 같은 민간 재원의 확대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잘 몰랐던 유럽의 대학의 역사와 현 상황, 미래 전망까지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 진학 생각이 있는데, 석사는 자대 대학원에서 하고 박사는 해외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 가는 걸 추천하길래, '왜 유럽은 추천을 안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의 대학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잘 몰랐던 필자는 유럽에서도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다들 미국이나 영국만 추천하는지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유럽의 대학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유럽의 경우 등록금이 싸다는 게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저자의 분석을 접하니 등록금이 싸다는 것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등록금이 싼데, 등록금이 아닌 다른 재원으로 충분히 재정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재정이 충분치 않은 경우 등록금을 어느 정도 올려야 교육의 질이 상승하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1970~80년대부터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여러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재정이 부족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민간 재정을 확대해서라도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점은 유럽인들은 대학을 관료적이고, 세금을 갉아먹는 부정적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학을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정도가 유럽이 미국이나 동아시아에 비해 강하다고 한다. 또한 유럽은 반엘리트주의 태도가 뿌리 깊다고 한다. 그래서 은연 중에 다양성을 무시하고 최고의 인재를 폄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면이 있다고 해서 신기했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대학이라는 곳을 떠올리면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유럽은 그렇지는 않은 경우도 많은 듯하다.



또 교수님과 진로 상담을 했을 때 내가 유럽의 대학은 어떠한지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언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웃으며 대답하셨다. 유럽에서 공부하려면 정말 언어의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된다.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모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경우 해당 언어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영어도 유창하게 하기 어려운데 또다른 언어까지 배워야 한다면 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대로 모국어에서 영어로 언어를 전환하는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모국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영어를 기본적인 언어로 사용하고 모국어도 사용 가능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학이 그럴 필요는 없고, 외국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일부 대학에서 영어로의 전환을 추진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확실히 비유럽권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서 유럽으로 가고자 하는 학생 수가 증가할 것이다.



한때 스위스 교환학생을 꿈꾸면서, 파란 하늘 아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느긋하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나에게 유럽의 이미지는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느긋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다. 높은 수준의 대학이 상당수 유럽에 있고, 영어만으로 온전히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필자는 당연히 유럽으로 유학을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럽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의 질, 언어 문제, 다양성과 혁신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저자 요 리츤의 주장대로 유럽의 대학이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적으로 변화해나간다면 분명 다시 힘차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은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고 구체적이다. 조금씩이라도 이러한 변화가 유럽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럽의 고등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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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힘 - 창의력 있는 인재 만들기 프로젝트
강석훈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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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1세기는 창의력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 혁신 등 화려한 키워드로 대표되는 현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능력을 꼽자면 창의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어떻게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의 힘>의 저자 강석훈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조사와 실행을 거쳐 명쾌한 해답을 찾아냈다. 그의 해답을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이 책 <생각의 힘>이다.



강석훈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지내다가 현재는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외과의사 봉달희>, <카인과 아벨> 등 유명 영화, 드라마의 의학 자문으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틈틈이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국내의 모든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가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아보자. 또한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들어보자.



저자는 먼저 창의력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창의력이란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또한 창의력과 창의성의 개념을 구분하는데, 창의력은 창의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개념이고, 창의성은 창의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본성이다. 창의력은 노력과 훈련을 통해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창의성은 저절로 타고나며 길러질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창의력 = 창의성 + a' 라고 표현한다. 창의력은 인간뿐만 아니라 일부 동물들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창의성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a'가 포함된 복합개념이다. 이 'a'를 효과적으로 계발하는 교육이 진정 창의력을 높이는 교육이다.



저자는 한국의 교육이 창의력 있는 인재를 배출해내지 못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식 전달형 수업'과 '지나친 경쟁 풍토' 두 가지를 꼽는다. 지식 전달형 수업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하지 않고, 백과사전처럼 쌓여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을 의미한다. 교육자들이 학생들의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전령사 역할만을 수행하면 이런 일방적인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나친 경쟁 풍토는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과 등급제 평가 방식으로 대변된다. 등급제는 경제 논리와 대학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피 터지는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다.



그는 지식 전달형 교육 대신 '생각을 키우는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수업에서 질문과 답변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생각의 힘을 갉아먹는 기존의 사지선다식 문항에서 'Cover the Option' 형 문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Cover the Option'이란 문제의 선지를 가리고서도 정답을 떠올릴 수 있는 문항을 뜻한다. 사지선다형 문항은 주어진 선지들 중 가장 문제의 기준에 적합한 선지를 고르는 식이라면, 'Cover the Option Rule'을 따르는 문항은 학생들이 문제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떠올린 후 그와 일치하는 선지를 고르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평가 방법을 바꾸면 학생들이 문제를 풀 때 좀 더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지나친 경쟁 풍토가 만연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지상주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학벌에 그렇게 집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가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원래 평가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귀찮고 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평가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 학벌을 보고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을 짐작한다. 예전 기업들은 학벌에 그토록 목을 매었다. 다행히 요즘 기업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변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 기업이고, 그 다음이 학교고, 그 다음이 정부"라고 했다. 이제 기업이 바뀌고 있으니 학교도 학생을 평가하는 데에 충분한 노력과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사지선다형 시험으로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는 현재의 평가 방식에서 지성, 인성, 창의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 방법으로 PBL(Problem Based Learning)의 도입을 주장한다. PBL이란 '문제 기반 교육'으로, 학습자에게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학습과 협력 학습을 통해 종합적인 해결안을 도출하는 학습 방식을 의미한다. PBL의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학생들은 6-8명의 소규모 그룹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룹마다 한 명의 튜터가 배치된다. 튜터가 학생들에게 '사실'과 '문제'로 뒤죽박죽 섞인 '상황'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사실 도출 → 문제 인식 → 가설 세우기 → Learning Issue 도출'의 흐름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PBL의 장점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튜터는 토론이 원칙대로만 진행되게끔 도와주는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학생들 자체적으로도 진행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다. 저자가 수년간 의대 학생들에게 PBL 수업을 적용하면서 그 수업의 효과를 확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이 PBL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 교육, 암기식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어 유익했다. 실제로 초, 중, 고등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대학교를 다니는 지금도 선생님 또는 교수님이 하는 말씀을 정확히 암기해야 점수를 잘 받는 시험을 주로 치르고 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점수를 더 받는 시험도 본 적이 있으나 자주 치르지는 않았다. 확실히 학생의 신분으로서 나는 이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에서 질문과 답변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단순한 암기 테스트식 문제보다 학생의 생각을 묻는 서술형 문항이 더 늘어나야 함에도 동의한다. 개개인의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 방식이 하루빨리 우리나라에 도입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완벽히 동의한다.



그러나 대학 교육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나름대로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중고등학교 성적이 대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평가의 공정성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국민들이,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서술형 위주의 시험에 찬성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수시 선발 비율은 줄어들고 정시 선발 비율은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 평가 방식 자체를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싶다. 또한 최근 여러 입시 비리들이 터지면서, 입시 체제의 불공정성이 도마 위로 오르는 와중에 학생 개인의 생각을 반영하는 서술형 시험을 늘리고, 지성, 인성, 창의성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학생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허울은 좋아도 조작과 사교육 개입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행하기는 위험하다. 평가자의 주관은 최소화하고 객관적이고 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을 때 이와 같은 변화가 도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사교육이 최대한 개입되지 않고 온전히 학생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생각은 설득력이 있고, 저자가 언급한 'Cover the Option Rule', 'PBL' 등은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내용은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해서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뭔가 교육학적으로 깊이 있는 분석이나 통찰력 있는 해결책은 책에 담겨 있지 않은 듯해 그런 부분이 좀 더 보강되었으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는 책이었고,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걸 추천하고 싶다.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걸 추천하고 싶다.





[ 한 줄 긋기 ]


- 경쟁자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큰 격차를 벌리는 패러다임의 이동,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창의력의 모습이다. (12p)



-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내용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생각'이다.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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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주제탐구세미나
주경철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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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이지만 사실상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시대에 따라 사랑의 의미와 실천 양식은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따라서 '사랑이란 무엇이다'라고 거칠게 단정지어 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어떠한 학문으로 사랑이라는 개념에 접근하는지에 따라서도 사랑을 정의하는 방법은 크게 달라진다. 이렇듯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랑'의 개념을 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 교수가 모였다. 주경철, 정재승, 박지현 교수가 그들이다. 서양사학, 뇌과학,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교수 세 명이 모여 서로 다른 시선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접근한다. 이들의 치열하고도 유쾌한 논의를 엮어 정리한 책이 <사랑>이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사랑의 역사'로, 서양사학과의 주경철 교수가 집필했다. 2장은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으로, 뇌과학과의 정재승 교수가 집필했다. 3장은 '문학 속 사랑의 담론'으로, 중어중문학과의 박지현 교수가 집필했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를 펼치고 서로 어긋나는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보며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1장 '사랑의 역사'에서 주경철 교수는 유럽 역사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갔는지 추적한다. 중세에는 기독교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 남녀 간의 사랑, 특히 육체적인 쾌락이 극도로 억압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사도적 사랑'이라는 지극히 이상화된 사랑의 관념이 탄생하기도 했다. 근대 초기에는 억압적인 가부장제가 공동체의 질서를 엄격히 규제하여 개인의 사랑은 억눌려 있었다. 이 시기는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남녀 간의 관계가 불평등했으므로 사랑이 가정의 중심 개념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남녀 간 또는 가족 사이의 관계에서 점차 완고한 성격이 완화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18~19세기에 정점에 이르러 19세기 초반에 드디어 사랑이 해방된다. 낭만적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이룬다는 이상이 사람들에게 확고하게 정립된다. 그러나 사랑은 해방되자마자 곧 폭발하였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거대한 변화와 맞물려 남녀 간의 관계도 점차 복잡한 형태를 띠면서 20세기로 진입한다.



2장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에서 정재승 교수는 수많은 실험과 통계를 소개하며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먼저 첫눈에 반한 사랑은 실재하는 것일까? 사랑학 연구자들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해석한다. 누군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구체적인 답변을 대지 못하고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좋다'라는 답변을 한다면, 그 사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물학적 이끌림 때문이라는 고백과 다름없다. 또한 헬렌 피셔의 연구에 의하면 시선 교환이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는데, 이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 때문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면 인간은 접근과 후퇴 두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현대에 와서도 그러한 인간의 동물적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비슷하면 호감을 느끼고 유사한 성격의 사람과 함께 살 때 만족을 느낀다.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은 사람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처음 만나는 상대를 사로잡고 싶다면 상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며 상대와 유사한 말투를 쓰는 게 좋다.



3장 '문학 속 사랑의 담론'에서 박지현 교수는 중국 문학의 여러 텍스트를 통해 동양의 사랑은 서양 문명과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가치를 지니며 변화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초창기 사랑에 관한 중국의 문학 담론에서 '거리'는 사랑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였다. 사랑의 정당성과 숭고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리라는 문학적 장치가 사용되었고, 이를 통해 그리움이 사랑의 실체로 표현되었다. 이후 욕망이 문학 속에서 담론화되기 시작했다. 전국 시기 초 지역의 문학가들은 성을 신화적 환상성과 결합시켰다. 「고당부」 등의 작품에서 현실의 제왕들은 신녀를 만나 낭만적인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다. 이와 같이 로맨스에 환상적 요소가 포함된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미학의 경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욕망이 아닌 약속으로서의 사랑이 문학 담론에 등장한다. 「공작동남비」 등의 작품을 통해 약속으로서의 사랑이 모습을 나타냈다. 신의와 사랑이 결합하여 남녀 간의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동력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을 유지시키는 힘으로 '정'이 대두된다. 사랑의 신의는 단순히 약속이라는 형식과 그 형식에 대한 이성적 추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정이 사랑의 신의를 지켜주기도, 회복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정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차원으로 존재하며, 욕망으로서의 열정과 별개로 마음의 교감, 진심, 진정성을 통해 사랑을 지탱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로, 내가 당연히 여기던 사랑의 개념과 행동 양식이 사실 수많은 역사적 변화를 겪으며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18세기까지만 해도 가정에 있어서 사랑은 필수 요소가 아니었고, 가정은 아이의 출산과 경제 활동 두 가지의 의미에서 생산의 장소였을 뿐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연애를 꿈꾸고 원하는 상대와의 결혼을 그토록 바랐는데,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심지어 비혼까지 모든 것이 가능해진 현대에 과연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지금 갖지 못한 어떤 것을 강렬히 열망하고 추구하지만, 정작 그것을 손에 넣게 되면 그로 인한 기쁨은 잠깐이고 이후에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리며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 문제가 해결된 유토피아를 또 꿈꾸고,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지금과 같이 인간의 삶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어떤 면에서는 발전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항상 가진 것에는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고 갖지 못한 것에 불행해하는 우리의 본성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로, 과학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진화생물학과 철학의 대립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간하여 전 세계에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로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간의 본성, 심리, 사유, 행동 등이 진화의 결과라고 보고 그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진화생물학이 다루는 문제에는 사랑 등 철학, 문학 등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기존에 인문학에서 인간의 마음이나 심리에 대해 설명하던 부분들을 진화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에 진화생물학적 입장과 인문학적 입장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성적 욕망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발현된 것이라고 볼 것인지, 생물학적인 성적 끌림을 포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고 볼 것인지, 생물학적인 것과 별개로 영혼과 영혼 간의 진정한 소통, 진정성, 이타심 등이 핵심이라고 볼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사랑이라는 심적 상태의 근원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랑 그 자체에는 좀 더 복잡하고 정신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 욕구가 사랑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얻는 정신적 기쁨, 힘들 때 격려해주고 즐거울 때 행복을 나누는 우정, 서로를 믿는 신뢰감, 내가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도와주고 싶은 강렬한 이타심 등은 단순한 섹슈얼리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진화생물학과 인문학 양쪽을 모두 이해하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랑이라는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어 신선하고 유익했다. 보통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는 책들 중에는 내용의 깊이가 얕아 그닥 읽은 보람이 생기지 않는 책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도 깊이 있으면서 서로 다른 학문을 융합적으로 잘 엮어낸 양서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 한 줄 긋기 ]


- 그런데 에로스와 아가페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 사랑과는 분명 다르다. 단적으로 말해서 에로스나 아가페는 '개인적(personal)'이지 않다. ... 낭만적인 사랑은 두 영혼 간에 일어나는 유일무이한 관계이지 대체 가능한 관계가 아니다. 물론 청춘남녀 간의 사랑에는 대개 에로스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남녀가 꼭 육체적인 끌림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 남녀 간 불꽃 튀는 사랑에는 인간 보편을 향한 선한 태도(아가페)라든지 강렬한 육신의 욕망(에로스)이라는 두 요소와 일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그런 것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31~32p)



-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일까? 누구는 강력한 국가기구의 발전이라 할 것이고, 누구는 산업혁명 이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경제성장이라고도 할 것이다. '거시적'인 요소를 중시한다면 그런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남녀 간의 만남, 공동체와 가족 간의 관계, 부모와 아이 간의 친밀감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역사적으로 변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92~93p)



-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중 결혼 제도는 대게 경제적 혹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문의 결합을 목적으로 했다. 인적 관계를 확대하고 재산을 합치는 방식으로 삶의 틀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므로, 청춘남녀 간 애틋한 감정이라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기반 위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사랑하는 연인끼리 만나 삶을 함께 한다는 이상, 곧 낭만적 사랑에 의한 결혼은 오랜 기간의 변화를 거쳐 비교적 최근 시대에 와서야 자리잡았다. (94p)



- 때로는 지상천국의 환희를 안겨줄 듯하다가도 때로는 청춘남녀들을 너무나 애처롭고 힘들게 몰아가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존재이유일까, 젊은 날 한때의 가슴 아픈 성장통일까, 혹은 그 아무것도 아닌 허황된 신화에 불과할까? (95p)



- 우리를 평생 깨어 있게 하는 것, 남의 얘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내 얘기는 묻지 않아도 들려주고 싶은 것.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물어보지만, 사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제각기 다른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99p)



- 미국의 시인 존 키츠의 표현대로, 사랑이란 '온갖 자극과 감정이 뒤섞인 소란'인 것이다. (132p)



-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에 대한 매몰찬 분노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준비해준다. ... 연인들이여, 실연의 분노를 받아들이라. (152p)



-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수다'다. (157p)



- 이와가 생을 망가뜨린 사람이자 구원한 사람이란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아가씨> 생각난다!) (226p)



- 우리가 적어도 인생에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사랑의 열병, 그 '진정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기 복제를 위한 DNA의 욕망일까. 그 혹은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함께 있고 싶다로 느껴지는 그 감정의 실체, 때론 키스보다 감미로운 대화, 세상 다른 어떤 일도 생각할 수 없는 정신의 몰입, 나를 다 내어주고도 후회가 없는 강렬한 이타심, 그리고 집착, 이 모든 것이 생물학적 욕망의 고도로 발달된 자기기만과 포장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욕망은 변화의 주범이 아니다.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내 안에 변함이 없다. 욕망의 메커니즘은 언제나 일정하고 균일하다. 오히려 변화의 주범은 이 욕망을 어떻게 발현할까를 결정하는 내 안의 '마음'이다. (260~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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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로 - 이타 행동의 진화와 심리학
엘리엇 소버.데이비드 슬로안 윌슨 지음, 설선혜.김민우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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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생물학 분야의 책을 꼽는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고깃덩이일 뿐이라는 도킨스의 선언을 접하면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는 수많은 찬사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가장 격화된 논쟁은 이타주의에 대한 논쟁이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타주의는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의 이론이 과학계에서 큰 인정을 받은 이후로 이타주의를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자들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계의 주된 흐름에 반기를 드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엘리엇 소버와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이다. 엘리엇 소버는 과학철학과 생물철학 분야에서 독보적이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학자다. 특히 과학철학 분야에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도입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철학회와 과학철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은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하여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학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미국 빙햄튼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생물학과와 인류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타인에게로>는 이타주의에 대한 이들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들은 진화생물학, 사회심리학, 철학, 인류학, 네 가지의 학문 분야에 토대를 두고 진화적 이타주의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명확한 근거를 들어 전개해나간다.

 

책의 내용은 크게 진화적 이타주의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 대한 내용으로 나뉜다. 1부 진화적 이타주의에서는 생물학계에 존재하는 세 갈래의 지적 전통 개체 수준의 기능주의, 집단 수준의 기능주의, 반기능주의 를 소개한다. 이중 학계에서 가장 큰 핍박을 받은 집단 수준의 기능주의에 대한 논쟁을 살펴본다. 1960년대에 집단선택설이 학계에서 기각당한 이후로 약 30년간 개체주의적 패러다임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집단선택설에 대한 오해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며 진화적 이타주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2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서는 동기에 대한 세 가지 심리학 이론 쾌락주의, 에고이즘, 이타주의 에 대해 소개한다. 이어 에고이즘-이타주의 논쟁을 설명하고, 진화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쾌락주의가 타당하지 못한 이유를 제시한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기적 다원론이 이타주의 논쟁에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이 책은 집단선택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다수준 선택 이론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켰다. 고등학생 시절 도킨스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나에게 집단선택설이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한때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폐기된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집단선택설이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이론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전자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자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유전자가 발견된 이후로 지금까지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사실이다. 사실상 모든 생물학적 진화 모형들에서 유전자가 복제자라는 것은 불변의 상수다. 어떤 이론이 예측력을 가지려면 변수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진화 모형에서는 생물학적 위계의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적합도의 차이가 그 변수가 된다. 이것은 유전자가 될 수도 있고, 개체가 될 수도 있고,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자연에는 여러 단위들이 위계를 이루며 존재하고 자연 선택은 이러한 위계상에서 다차원적으로 작동한다(119p).’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의 이타주의자가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집단 내에서 자신의 상대적 적합도는 감소했지만, 같은 집단에 속한 개체들에게 이익을 주어 집단 자체의 상대적 적합도를 향상시킨다면 이타주의는 진화한다. 성비와 병원체 독성의 진화 사례를 통해 이러한 집단 선택이 증명된다. 자연 선택이 생물학적 위계의 모든 수준에 걸쳐서 발생함을 주장하는 이론을 다수준 선택 이론이라고 부른다. 다수준 선택 이론에 입각하여 진화를 연구한다면, 생물학적 위계상의 각 수준에서 일어나는 자연 선택의 상대적 강도를 파악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떤 식으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여야 한다. 이러한 다수준 선택 이론은 이기적 유전자론만을 유일한 진리로 믿어왔던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수준 선택 이론이 충분히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제 다수준 선택 이론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화를 좀 더 다원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이 책을 통해 이타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화생물학적으로 생각할 때 당연히 이기적인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므로 지금까지 잘 생존해온 종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집단 내에서 해당 개체의 상대적 적합도는 감소할지라도 집단 자체의 상대적 적합도가 증가한다면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매우 신선했다. 대수적 계산에 의해 이러한 논증이 뒷받침되니 신뢰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심리학적 에고이즘과 이타주의가 복잡한 신념과 욕구들과 관련이 되어 있고, 마음이 적응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근접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심리학적 에고이즘보다는 동기적 다원주의가 인간 진화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수긍이 됐다. 이전에 <행복의 기원(서은국)>이라는 책을 읽고 쾌락주의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쾌락주의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전부가 되지는 않음을 배웠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건 당연한 욕구이지만, 인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러한 욕구를 보완해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의식 상태를 원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대한 궁극적 욕구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쾌락과 고통이 인간 행위의 동기로서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지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들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하기만 한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4장 집단 선택과 인간 행동에서 저자들은 문화와 사회 규범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 사회는 집단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 집단 내의 과정을 억제하도록 사회 규범을 만들어 통제해왔으며, 그 결과 자연 선택이 작용해서 집단 수준에서 적응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집단 간 수준에서의 진화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화에도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는 뉘앙스의 주장은 완벽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킨스가 주장한 밈(meme)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면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 선택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또한 이타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타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자신이 이타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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