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로 - 이타 행동의 진화와 심리학
엘리엇 소버.데이비드 슬로안 윌슨 지음, 설선혜.김민우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생물학 분야의 책을 꼽는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고깃덩이일 뿐이라는 도킨스의 선언을 접하면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는 수많은 찬사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가장 격화된 논쟁은 이타주의에 대한 논쟁이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타주의는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의 이론이 과학계에서 큰 인정을 받은 이후로 이타주의를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자들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계의 주된 흐름에 반기를 드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엘리엇 소버와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이다. 엘리엇 소버는 과학철학과 생물철학 분야에서 독보적이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학자다. 특히 과학철학 분야에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도입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철학회와 과학철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은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하여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학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미국 빙햄튼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생물학과와 인류학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타인에게로>는 이타주의에 대한 이들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들은 진화생물학, 사회심리학, 철학, 인류학, 네 가지의 학문 분야에 토대를 두고 진화적 이타주의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명확한 근거를 들어 전개해나간다.

 

책의 내용은 크게 진화적 이타주의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 대한 내용으로 나뉜다. 1부 진화적 이타주의에서는 생물학계에 존재하는 세 갈래의 지적 전통 개체 수준의 기능주의, 집단 수준의 기능주의, 반기능주의 를 소개한다. 이중 학계에서 가장 큰 핍박을 받은 집단 수준의 기능주의에 대한 논쟁을 살펴본다. 1960년대에 집단선택설이 학계에서 기각당한 이후로 약 30년간 개체주의적 패러다임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집단선택설에 대한 오해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며 진화적 이타주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2부 심리학적 이타주의에서는 동기에 대한 세 가지 심리학 이론 쾌락주의, 에고이즘, 이타주의 에 대해 소개한다. 이어 에고이즘-이타주의 논쟁을 설명하고, 진화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쾌락주의가 타당하지 못한 이유를 제시한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기적 다원론이 이타주의 논쟁에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이 책은 집단선택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다수준 선택 이론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켰다. 고등학생 시절 도킨스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나에게 집단선택설이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한때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폐기된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집단선택설이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이론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전자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자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유전자가 발견된 이후로 지금까지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사실이다. 사실상 모든 생물학적 진화 모형들에서 유전자가 복제자라는 것은 불변의 상수다. 어떤 이론이 예측력을 가지려면 변수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진화 모형에서는 생물학적 위계의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적합도의 차이가 그 변수가 된다. 이것은 유전자가 될 수도 있고, 개체가 될 수도 있고,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자연에는 여러 단위들이 위계를 이루며 존재하고 자연 선택은 이러한 위계상에서 다차원적으로 작동한다(119p).’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의 이타주의자가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집단 내에서 자신의 상대적 적합도는 감소했지만, 같은 집단에 속한 개체들에게 이익을 주어 집단 자체의 상대적 적합도를 향상시킨다면 이타주의는 진화한다. 성비와 병원체 독성의 진화 사례를 통해 이러한 집단 선택이 증명된다. 자연 선택이 생물학적 위계의 모든 수준에 걸쳐서 발생함을 주장하는 이론을 다수준 선택 이론이라고 부른다. 다수준 선택 이론에 입각하여 진화를 연구한다면, 생물학적 위계상의 각 수준에서 일어나는 자연 선택의 상대적 강도를 파악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떤 식으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여야 한다. 이러한 다수준 선택 이론은 이기적 유전자론만을 유일한 진리로 믿어왔던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수준 선택 이론이 충분히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제 다수준 선택 이론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화를 좀 더 다원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이 책을 통해 이타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화생물학적으로 생각할 때 당연히 이기적인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므로 지금까지 잘 생존해온 종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집단 내에서 해당 개체의 상대적 적합도는 감소할지라도 집단 자체의 상대적 적합도가 증가한다면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매우 신선했다. 대수적 계산에 의해 이러한 논증이 뒷받침되니 신뢰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심리학적 에고이즘과 이타주의가 복잡한 신념과 욕구들과 관련이 되어 있고, 마음이 적응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근접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심리학적 에고이즘보다는 동기적 다원주의가 인간 진화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수긍이 됐다. 이전에 <행복의 기원(서은국)>이라는 책을 읽고 쾌락주의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쾌락주의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전부가 되지는 않음을 배웠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건 당연한 욕구이지만, 인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러한 욕구를 보완해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의식 상태를 원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대한 궁극적 욕구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쾌락과 고통이 인간 행위의 동기로서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지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들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하기만 한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4장 집단 선택과 인간 행동에서 저자들은 문화와 사회 규범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 사회는 집단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 집단 내의 과정을 억제하도록 사회 규범을 만들어 통제해왔으며, 그 결과 자연 선택이 작용해서 집단 수준에서 적응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집단 간 수준에서의 진화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화에도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는 뉘앙스의 주장은 완벽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킨스가 주장한 밈(meme)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면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 선택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또한 이타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타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자신이 이타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