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학: 어디로 갈 것인가
요 리츤 지음, 윤희원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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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에서는 매년 세계대학의 순위를 발표한다. 매해 발표될 때마다 어느 정도 순위의 변동은 있지만, 항상 최상위 랭킹을 차지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MIT, 하버드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영미권 대학이 그것이다. 2020년 세계대학순위를 보면 TOP 20 랭킹에 미국 대학이 10곳, 영국 대학이 5곳, 싱가포르와 스위스가 각각 2곳, 중국 대학이 1곳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최상위권 대학은 미국과 영국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의 대학은 TOP20, 혹은 TOP50까지 살펴보아도 그 수가 적은 것일까.



사실 대학이라는 기관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설립되었는데,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또한 'university'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대학은 미국의 대학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판도가 크게 뒤바뀌었다. 미국은 고학력 노동력을 확대 공급하기 위해 신속하고 재정 기반이 확실한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상위권 대학의 수준은 유럽 대학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대학에 공공 재정과 민간 재정을 많이 투자하여 유능한 교직원과 학생을 세계 각지에서, 특히 유럽에서 많이 끌어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요 리츤은 세계적으로 순위가 높은 대학은 재정이 더 튼튼하고, 자율성이 더 많고, 최상급 교수들이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유럽의 경우 재정적으로 불충분하고, 자율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탓에 유럽이 갖는 사회, 경제적 경쟁력만큼 유럽의 대학이 충분히 높은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대학들은 유럽이 아닌 자국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해, 세계화된 노동 시장을 아직 교육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고등교육과 연구에서 예산을 삭감해 예산 손실을 줄이려는 전략은 대학의 경쟁력을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먼저 유럽의 대학 전체에 두루 적용되는 '유럽 학칙'을 만들어 유럽 내에서 학생들의 이동을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대학의 관리는 EU 사무국 아래에 독립기관으로 두어 자율적으로 운영되게 한다. 또한 공동 학위제를 신설해 한 나라에서 대학을 다녀도 다른 유럽 국가의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비유럽 학생들을 유럽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대학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물론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면 그 노력과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유럽에 와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대학은 아니더라도, 일부 대학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민간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다만 가난한 학생도 능력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 사업에 적극적으로 재원을 투입하여야 한다. 유럽은 지금까지 민간 재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 결과, 민간 재정이 증가한다고 해서 기회 균등의 정도가 그리 감소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는데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로 충분히 지원해주면 큰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등록금 인상이나 기부금과 같은 민간 재원의 확대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잘 몰랐던 유럽의 대학의 역사와 현 상황, 미래 전망까지 알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 진학 생각이 있는데, 석사는 자대 대학원에서 하고 박사는 해외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 가는 걸 추천하길래, '왜 유럽은 추천을 안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의 대학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잘 몰랐던 필자는 유럽에서도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다들 미국이나 영국만 추천하는지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유럽의 대학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유럽의 경우 등록금이 싸다는 게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저자의 분석을 접하니 등록금이 싸다는 것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등록금이 싼데, 등록금이 아닌 다른 재원으로 충분히 재정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재정이 충분치 않은 경우 등록금을 어느 정도 올려야 교육의 질이 상승하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1970~80년대부터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여러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재정이 부족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민간 재정을 확대해서라도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점은 유럽인들은 대학을 관료적이고, 세금을 갉아먹는 부정적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학을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정도가 유럽이 미국이나 동아시아에 비해 강하다고 한다. 또한 유럽은 반엘리트주의 태도가 뿌리 깊다고 한다. 그래서 은연 중에 다양성을 무시하고 최고의 인재를 폄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런 면이 있다고 해서 신기했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대학이라는 곳을 떠올리면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유럽은 그렇지는 않은 경우도 많은 듯하다.



또 교수님과 진로 상담을 했을 때 내가 유럽의 대학은 어떠한지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언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웃으며 대답하셨다. 유럽에서 공부하려면 정말 언어의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된다.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모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경우 해당 언어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영어도 유창하게 하기 어려운데 또다른 언어까지 배워야 한다면 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대로 모국어에서 영어로 언어를 전환하는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모국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영어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영어를 기본적인 언어로 사용하고 모국어도 사용 가능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학이 그럴 필요는 없고, 외국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일부 대학에서 영어로의 전환을 추진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확실히 비유럽권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서 유럽으로 가고자 하는 학생 수가 증가할 것이다.



한때 스위스 교환학생을 꿈꾸면서, 파란 하늘 아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느긋하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나에게 유럽의 이미지는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느긋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다. 높은 수준의 대학이 상당수 유럽에 있고, 영어만으로 온전히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필자는 당연히 유럽으로 유학을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럽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의 질, 언어 문제, 다양성과 혁신의 부재 등이 그것이다. 저자 요 리츤의 주장대로 유럽의 대학이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적으로 변화해나간다면 분명 다시 힘차게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은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고 구체적이다. 조금씩이라도 이러한 변화가 유럽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럽의 고등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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