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 오십에 발레를 시작하다
정희 지음 / 꿈꾸는인생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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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나와 열 살 정도 차이 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자기는 직장과 집 밖에 몰라서 사회에 나가면 바보가 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취미를 가지거나 모임에 나가보지 그래요?” 갱년기가 시작되며 잠도 잘 못 자고 에너지가 없단다. <오십에 발레를 시작하다>라는 부제를 보자 마자 그 선생님이 생각났다. 아직 사십 대 초반인 나는 오십을 알지 못하지만 오십이라는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다는 것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희 작가의 <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를 사실 소설일 거라 근거 없이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책 소개를 살펴보니 에세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음에도 건성으로 보았던 탓이리다. 이 책은 작가가 발레를 시작하여 2년 가까이 발레를 배우면서 있었던 경험을 생각과 연결하여 풀어내고 있는데, 책을 읽을수록 드라마 나빌레라와 얼마 전에 읽었던 안희연 작가의 단어의 집이 떠올랐다. 책은 에세이지만 발레를 배우는 과정의 묘사가 상세하여 드라마에서 덕출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는 장면과 오버랩 되어 자꾸만 그림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작가의 기술 방식이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해 떠오른 과거의 다른 사연의 소환 또는 반성으로 이어지는 성찰이어서 비슷한 기술 방식의 단어의 집이 떠오른 것 같다.

 

사실 단어의 집은 앉은 자리에 다 읽었지만 익숙치 않은 단어와 억지스런 연결 같은 느낌이 들어 썩 괜찮게 읽지는 않았다.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은 작가의 경험과 성찰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에피소드들이 1인칭 시점의 소설로 시작하는 일기 같아서 재미와 공감, 그리고 반성과 감동이 있어 좋았다.

 

며칠 전, 비슷한 크기와 쪽수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이 책도 금세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순식간의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다. 일단 필력이 너무 대단하다. 간단히 묘사하거나 직설적으로 말할 수도 있는데 정희 작가의 글은 따뜻하면서 위트가 있고 참신했다. 그래서 쉬이 넘기지 못하고 다시 읽고, 띠지를 붙여 표시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이 작가. 나랑 비슷한데?’하는 부분이 많아 나의 과거와 이어지는 회상이 계속해서 소환되어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되었다. 여전히 옹졸하고 편견이 심한 나여서 작가의 성찰에 반성하며 연륜이란 무시 못 하는 거구나. 그래서 책을 읽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포커페이스를 장착하고 그렇지 않은 척 음흉한 구석이 있는데 작가는 부끄럽지만~’을 붙이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왜 작가처럼 솔직하지 못할까?’ 계속 되묻게 된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나 자신도 잘 몰라서였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만큼 사색을 하고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았기 때문에 기술도 할 수 있고 솔직할 수도 있지 싶다. 나는 아직 나에게 그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서 그럴테고. 가끔 기분은 안 좋은데 그 이유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같은 이유로 이 책은 그런 나의 기분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좋았다.

 

<어떤 꿈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는 작가 개인의 경험담을 풀어낸 에세이지만 내게는 나의 이렇게 생겨 먹은 성격을 인정을 해 주고, 요즘 고민이 되고 있는데 인간 관계에 대한 화두에 답을 주고, 과거에 철없이 저질렀던 과오들을 반성하게 해 주는 심리 상담사 같은 책이었다.

 

사오십 대가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나이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기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같아 에세이를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런 나의 편견을 고쳐 먹게 만들었다.

 

p209. 부끄럽지만 그랬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바라면서도 차가운 가슴으로 냉정하게 그들을 재단했다.

 

내가 그러고 있다. 2024년을 코 앞에 둔 지금, 나도 일단 멈춤의 시간을 가지면서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나를 좀 내려놓고 주위를 찬찬히 살피는 내가 되어야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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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봄
이인애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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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전환교육, 사회적응훈련, 그룸홈, 사회적 개입 등에 대해 개론서보다 더 많은 물음을 던져주는 책.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라면 꼭 일어보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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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봄
이인애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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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봄은 산후우울증으로 사이비종교에 빠지게 되어 양육권까지 모두 빼앗기고 이혼을 하게 된 경력 단절의 중년여성 '선애가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해 20대 다운증후군 연아를 만나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특수학교에는 다운증후군 학생이 6~7명이 있는 학급에 한 명이 있을 정도로 많이 있다. 평소 사랑 표현도 많이 하고 장난도 잘 쳐서 귀여움도 많이 받는 반면, 사소한 일에도 잘 삐치고 관심받기 위해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학교나 시설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관련 업종에 있거나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는 그렇게 흔하게 만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선애는 연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다른 우주 속 외계 풍경만큼이나 낯설게 보였다. 유리벽 너머의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랬던 선애였는데 연아와 생활하며 자신의 아이들이 오버랩되고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연아를 보러 계속 찾아가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장애인들이 겪을만한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많이 담고 있다. 야식 심부름을 가서 끼니가 될 만한 음식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젤리를 잔뜩 사 오기도 하고, 사내 워크숍에서 안주로 사과를 깎아오라고 하니 사과 한 개를 엉망으로 겨우 깎아놓고 다 했다며 이불 속에서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선애에게 연락처를 받고는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기도 하며, 그룹홈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와 싸워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선애와 여행가서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어졌으나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마시기로 약속했다며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작가의 가족 중에 다운증후군이 있는 것일까? 가족이라도 집 밖에서의 일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을 건데, ’연아의 봄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는 그 밖의 사회생활 중 겪을만한 일들을 아주 상세히 다루고 있어 작가의 능력에 계속 감탄하면서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는 장애인의 생계급여, 주거 문제, 성 문제 등도 다루고 있어 내용은 안타까워하며 이런 문제들을 다루어 준 것에 고마워하며 글을 읽었다.


다만, 제목을 왜 연아의 봄이라고 지었을까. 이야기는 선애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선애가 연아에게 봄이 오기를 특별히 바라는 것 같지도 않는데... 살짝 의문이 남는다.


240쪽 정도 분량의 책이지만 작가의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선애와 연아 사이의 일어나는 일들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단숨에 읽어진다. 그리고 선애와 연아 모두 아픔이 있지만 3인칭 시점에서 담담하게 묘사하여 감정의 치우침 없이 사건 중심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울컥하는 부분이 몇 번 있었는데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선애와 연아가 홍콩으로 여행을 가서 관람차에 올라 시시덕대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마지막에 선애가 상담심리센터를 찾았는데 거기서 상담사가 왜 본인을 가해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연아와 선애가 그렇게 쭉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일까. 여튼 그 부분에서 울어버리고 말핬다.

 

연아의 봄은 사회복지나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있거나 종사하고 있다면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전환교육, 사회적응훈련, 그룸홈, 사회적 개입 등에 대해 개론서보다 더 많은 물음을 던져준다. p202. "봉사자님, 선생님이 책임질 거 아니면 괜한 희망 주지 마세요.“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18년동안 동료교사나 관리자로부터 비슷한 표현을 숱하게 들었다. 나는 아니지만 사회는 평생 책임져야 하며 그 과정에 나의 몫도 있는 것이리다.

 

졸업반 담임을 하면 아이들의 졸업 후의 삶이 밝혀 한동안 걱정의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새학기가 되면 또 새로운 아이들과의 정신없는 일상에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다. 졸업한 우리 아이들, 괜시리 잠 못 드는 밤, 카카오톡 프로필을 훔쳐보며 막연하게 잘살고 있을 거라 위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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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 나르시시스트를 떠나 행복한 나를 되찾는 10단계 치유 솔루션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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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한 마디 말에 멘탈이 무너져내린 일이 있었다. 무심코 던진 가벼운 말에 그렇게 상처받은 건 왜일까? 내가 문제다 결론을 내리고 덮어두고 지내고 있는데 불쑥 그 감정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1장에서는 유해한 관계와 유해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20가지 설명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게 있다면, 현재 유해한 관계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나는 네 개를 골랐고 이 중 특히 내가 못 견디겠는 건 14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p.28

3. 이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내가 하찮게 여겨진다.

4. 이 사람과 만나면서 계속 감정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빠진다.

7.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자책한다.

14. 이 사람은 내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비난했다고 전한다.

 

2장에서는 유해한 관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가능하면 연락을 끊자.’를 제안한다. 그리고 연락을 완전히 끊을 수 없을 때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처방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단칼에 끊을 수 없는 애매한 관계라.. 실천 방법을 알면서도 고민이 되기는 한다.

 

3장에서는 유해한 관계에서 벗어난 이후 회복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보내지 않을 편지 쓰기를 읽으며 말하지 않을 말들을 속으로 되뇌어 보면서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분노에 대처하자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누군가가 당신에게 한 짓을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말자. 당신은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에서 위로가 많이 되었다.

 

이후 4장부터는 나를 위한 치유의 방법들을 유목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 중 8인간관계를 회복하자편에서는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자고 제안한다. 때때로 아주 방어적으로 되는 나여서 이 제목이 너무 반가웠다. 두 세 번 다시 읽었지만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서 연습을 해 봐야겠다 다짐만 해 본다.

 

이 책은 토닥토닥하는 다정한 책은 아니며, 오히려 방법을 제시하는 설명서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전혀 잘못된 게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해 보자. ~할 수 있다. ~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는 서술 방식에 괜히 울컥하여 목이 멘 채 글을 읽어야 했다.

 

역으로,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누군가에게 나 또한 유해한 태도로 대했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과의 말을 어떻게 전하지?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며 같은 실수를 안 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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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주문하세요 상상 동시집 23
박경임 지음, 민지은 그림 / 상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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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에서 지나가다 시 '엄마를 주문하세요.'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동시집 "엄마를 주문하세요."도 읽어보게 되었다. 


기대를 가지고 첫 장을 넘겼는데 시인의 소개는 건조한데 그림 작가인 민지은의 소개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무더운 날 시원한 물 한잔 같은, 심심한 국물에 짭조름한 소금 같은, 깜깜한 밤 한 줄기 빛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그립니다.' 이런 소소한 시작부터가 좋았다. 


시를 읽으며 운 적은 많아도 시를 읽으며 내가 이렇게 상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빵빵 터져본 적이 있던가? 박경임 시인의 시는 "맞아!"를 연발하게 하고, 세상을 달리 보는 따스함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특히 '아직도'라는 시는 첫 행을 읽는데 너무 크게 빵 터져 곁에 있던 중학생 딸이 무슨 일이냐고 놀라 물을 정도였다. '형 방에 아직도라고 부르는 섬이 있어.'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바다 한 가운데 섬이 있고 섬에는 커다란 침대가 덩그러니 혼자 있다. 그 앞에 '아직도'라고 쓰여진 푯말이 크게 서 있는데 그림까지도 너무 재미있다. 시를 다 읽고 다시금 떠올리는 지금도 너무 재미있어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딱 한 줄로 나를 울려버린 시. '할머니는 내가 아픈지 어떻게 알아요?'를 읽는 데 울 엄마 생각이 나 울컥해버렸다. 시는 별것 없이 할머니의 무심한 듯한 말 한 마디가 다인데 나는 왜 울컥했을까. "응, 내가 100번 넘게 아파 봤거든." 시는 이게 다다. 100번 넘게 아팠을 할머니가 짠해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이유는 딱히 모르겠는데 계속 눈물이 나 잠시 한 호흡 멈췄다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유일하게 까만 배경에 적힌 시 '무서운 이름'을 읽으며 '나도 어릴 때 이런 생각 많이 했는데.'하며 뭔가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잔인하게 엄마손파이를 어떻게 먹냐?"며 친구를 놀리거나 "날개죽지 위에 사랑해요 라고 쓴다."는 '사랑일기'의 노래가 가사를 실제로 그렇게 한다 생각해보라며 깔깔거리며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이 위트 가득한 농담을 실없는 소리로 치부하며 공감해주는 이가 없었는데 그때 박경임 시인이 곁에 있었더라면 같이 주거니받거니 신나게 떠들었을 것 같다. 

이 동시집에 실린 시들은 하나같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귀여운 것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짓게 한다. 하나하나 다 소개하고 추천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기만 스포를 하면 감동이 줄어드니 여기까지만!! 


시가 짧고 재미있어 금세 다 읽었는데 그 여운은 입가의 미소로 남아 떠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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