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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쩌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소재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인류의 오랜 단골 이야기 소재라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어릴 때부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워낙 즐겁게 읽어 신화 속 에피소드에 관한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기에 문학적 작품으로서 가치도 뛰어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서양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토리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정신을 떠받드는 거대한 두 기둥이다. 유일신 사상을 지닌 기독교의 영향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종교적 색채는 사라졌지만 그 서사만큼은 끊임없이 구전되고 후대의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고 수차례에 걸쳐 재창작되며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꼭 언젠가는 다시 체계적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 한켠에 존재했다. 다만 시중에 존재하는 관련 서적이 원체 많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이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쓰여진 그의 작품인 ’신화의 시대‘ 중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추린 것으로 대중들에게 신화가 지금처럼 친숙하고 재미있게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만든 시초가 되는 인물이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현대적 스토리의 오리지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현대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도 중요하겠으나 무엇보다 이를 집대성한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첫 장의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종교는 소멸되었다.‘, ’현대인 중에서 소위 올림포스의 신들을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신들은 지금은 신학의 부문에 속하지 않고 문학과 취미의 부문에 속한다. 이 부문에 있어서는 그들은 아직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쓰여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단호하고 명료하게 신화의 의미를 나타내며 현대인들의 시각과도 일맥상통해 놀라웠다. 책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부터 배경과 신화 속 등장인물인 여러 신들과 그 관계에 대해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화 속 에피소드들을 차례로 써내려간다. 이 책이 가진 장점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들을 소개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서양의 미술 작품들을 배치해 스토리 이해를 돕는 동시에 어떻게 이야기가 예술 작품으로 표현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다. 반가웠던 태양 마차를 이끌고 날아오르는 파에톤, 자신이 만든 작품과 사랑에 빠져버린 피그말리온, 마주치면 돌로 변하게 만드는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와 엄청난 능력을 지닌 헤라클레스 등의 이야기와 동시에 조금은 낯설었던 로마 신화 속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으며 신화 속 이야기로만 존재한 줄 알았으나 실제 역사이기도 했던 트로이아 전쟁까지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마다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신화를 잘 정리한 저자의 필력도 뛰어나 왜 신화를 입문할 때 ’불핀치‘인가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한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가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 여러 작품들에서 만났던 이름들 중 상당수가 이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성격 또한 유사하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 신화 속 스토리들을 이해하고 다시 바라본 작품들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여러 작품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보았던 독자들에게도 대중들에게 신화를 널리 알리게 된 시발점 역할을 해낸 토머스 불핀치의 오리지널 완역본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