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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인류사를 관통하는 여러 키워드를 중심으로 빅히스토리를 다룬 책을 읽는 건 언제나 흥미로웠다. 무엇이든 태초의 인간에서부터 시작해 농업혁명과 대항해시대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혁명을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주제로 하느냐에 따라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었지만 언제나 주인공은 우리 인간이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눈부신 문명을 발전시켜나갔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물론 있었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발 디딛고 있는 지구에 대해선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배경으로만 다루어지기 쉬웠으나 우리 행동을 제약하거나 지정학적 위치에서의 유불리를 결정하는 정도로만 다루는 책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게 말한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어왔고,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여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 능력을 넘어선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 또한 지구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얻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지구가 어떻게 태초의 인류를 만들어왔고 이동하게 만들었으며 진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는지 과학적으로 깊이 있으면서도 위트 있는 언어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또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실제 예시를 풍부하게 제시해 세계 지도에서 지역을 찾아가며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주로 지질학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어 과학과 지리에 배경지식이 있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직관적인 비유와 문장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가령 석탄과 증기관이 우리를 지표면의 자원과 근육에 의존하던 작업 방식을 벗어나게 해주었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형태로 우리를 기다린 이 에너지 자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로 석탄이 만들어진 지질학적 배경을 깊이 있게 설명해나가는 방식이다. 작가의 말처럼 세계의 근본적인 본질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역사를 탐구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자연이 변하고 생명이 발달한 과정을, 지난 ’500만‘년 동안 우리의 유인원 조상으로붙 인간이 진화한 과정을,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간의 능력이 발전하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해간 과정을, 지난 ’1만‘년 동안 문명이 발전한 과정을, 지난 ’천‘ 년 동안 일어난 상업화, 산업화, 세계화 추세를, 마지막으로 지난 ’100‘년 동안 이 경이로운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훨씬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맞서 진화는 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 종의 신체나 생리를 적응시키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다. 반면에 지능은 자연 선택이 신체를 적응시키는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수많은 지역 중에서 왜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구의 기후 변동으로 설명하는데 ‘지구의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에 따른 우주적 변화로 인해 이 지역에서 살아간 모든 생물에게 강한 진화 압력을 가했다.‘ 하늘의 시계 장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지구의 궤도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와 그 흔들림은 모두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를 밀란코비치 주기라고 부른다. 이는 일년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지표면에 쏟아지는 햇빛의 전체 양에는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태양열이 남반구와 북반구에 분포되는 양상에 변화를 가져오며, 따라서 계절의 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빙기를 촉발하는 핵심 요인은 극지방의 겨울철 기온 하강이 아니라 여름철 기온 하강이다.‘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는 기간은 지구 전체 역사에서 바라볼 때 기후가 안정되어 있는 간빙기의 잠깐 머무르고 있는 짧은 시간일 뿐이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300m나 더 높아 전세계 대륙 중 절반이 물에 잠겨 있을 때도 있었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대륙이 북극에서 남극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연결되기도 했다. 놀라운 건 이러한 대륙과 해양의 위치 변화에 따라 지구 전체의 기후가 변하고 반대로 지구의 움직임의 변화로 인해 지각이 변화해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지구에 익숙한 나에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구 차원에서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과거 수없이 사라져간 생물처럼 쉽사리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되면서도 우리가 일으킨 지표면의 변화로 지구 전체의 기후가 변화해 다시 우리에게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가축으로 인한 부산물 혁명, 속씨식물로 이뤄진 생식 혁명을 다루고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대륙 생김새에 따라 문명들의 발전 속도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으며 티베트 고원의 급수탑으로서 지정학적 중요성과 지중해의 북쪽 가장자리와 남쪽 가장자리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수많은 지리적 차이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문명의 수와 발전 속도가 다른 점도 그 배경엔 우리 지구 차원에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각 지리적 위치에 따라 어떤 자원이 왜 그곳에 많이 위치하고 언제 생성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으며 왜 유목 민족의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의 긴 스텝지역에서 세를 떨칠 수 있었는 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8장, 해류와 바람으로 인해 인류의 대탐험 시대를 열었던 역사적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포르투갈의 신항로 개척이나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다룬 과정이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원리에 대해선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존 해안가를 따라 연안으로만 항해를 하던 시대에서 위도에 따른 바람과 해류를 따라 항해하는 방법을 차츰 익혀나가 볼타 두 마르를 활용하게 되는 과정이 소개되어있는데, 유럽과 아프리카 해안가에서 얼마간 떨어진 대서양에 위치한 4개의 작은 제도를 활용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이 지구의 대양과 대기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순환을 이해하고 해류와 바람의 패턴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알아가면서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발견을 통해 이뤄나가는 것인지 과정을 함께 따라갈 수 있어 즐거웠다. 나아가 이를 확장해 스페인의 필리핀, 멕시코를 이은 마닐라 갤리언선 무역로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을 이은 대서양 삼각 무역로가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건지 알 수 있어 당시 역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보다 인류사를 새로운 각도로 살펴보고 지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지만 매 챕터마다 인식의 새로운 창이 열리는 것처럼 읽는 즐거움을 주며 역사에 대해 몰입감을 선사해준다. 또한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지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왔고 우리의 역사는 보다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올해 최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