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 춘추전국시대부터 팍스 아메리카나까지
자오타오.류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세계사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한 책은 언제나 흥미롭다. ‘총,균,쇠’가 그러했고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도 긴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해 각 주제별로 연결된 하나의 갈래들을 만들어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경제사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접근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국가 간의 무역 갈등을 중심으로 기존의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꽤나 신선했다. 더군다나 주류의 영미권 석학의 시점이 아니라 중국의 학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점도 새로웠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개별적 사건의 배경에 무역갈등이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들도 발견하고 상대 국가를 경제적으로 공격하는 방식에 있어서 흔히 알고 있는 관세보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역을 봉쇄하고 풀어내는 등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도 알 수 있어 좋았다.
200여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안에 다양한 무역전쟁의 사례들을 싣다보니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각 무역전쟁의 공통점을 살필 수 있고 이를 통해 무역전쟁의 원인과 양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사건이 세계사의 판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어 세계사를 이해하는 주요 갈래가 될 수 있다. 다만, 아무래도 이 책은 저자가 중국의 시각이 투영되어 현대의 무역전쟁에 이르러서는 미국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는 시각으로 쓰이고 중국의 무역전쟁 및 보복사례는 실리지 않아 중립성에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무역전쟁의 심화는 모두에게 손해라는 의견도 피력하고 있어 최근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비판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세 및 근대의 중국에서 발생한 무역전쟁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고 무역전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그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원인과 결과를 제시하고 있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무역 또한 국가 간 전세계 패권 다툼의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에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가 일찌감치 서문에서 밝히듯 ‘순수한 자유무역은 현실에서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무역전쟁은 사실상 무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상적 현상이고, 따라서 무역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론상에서 이상적으로 밝힌 순수한 자유무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교적 먼저 발전한 나라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덤핑을 무기 삼을 수 있고, 발전이 느린 나라는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무역전쟁의 근본적 원인이다. 나라마다 경제발전의 수준과 사회제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무역으로 얻는 실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외에도 정치경제적 이유로 ‘국가 간의 적대적 관계’, ‘패권의 교체’, ‘이익집단의 입김’ 등이 있는데, 무역전쟁은 지난 역사의 사건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유효하고 피해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나폴레옹의 유럽 정벌 시 대륙봉쇄령과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의 해상봉쇄를 다룬 2번째 챕터였다. 두 사건 모두 역사적으로 익히 유명한 사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봉쇄’가 이루어졌고 왜 전의 시도는 실패했고 후의 시도는 성공했는지 다시 한번 무역에서 해상을 제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고, 결국 이 무역전쟁으로 세계사의 판도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한 고대 시대임에도 무역을 이용해 춘추시대를 제패한 제나라의 이야기와 남송과 북방 이민족의 전쟁에서 무력으로는 졌으나 경제적으로는 늘 우위에 있었던 모습, 규모도 작고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를 연 국가도 아니었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바닷길을 장악해 무역전쟁의 패권을 지녔는지, 일본의 중국 침략 시 어떤 경제적 침략이 이루어졌고 부족하나마 이에 대응했던 근대 중국의 모습 등등 각 에피소드별로 시선을 끄는 이야기들이 많아 즐거웠다. 또한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에 빠지게 만든 버블이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인 플라자 합의와 미국의 통상법 301조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관여되었던 철강 문제까지.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고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으며 무역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책이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례들을 다룬 책을 읽으며 확장된 사고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