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들의 봉우리

 

 

   ‘에베레스트’, 지구 상에서 인간이 두 발로 닿을 수 있는 최고의 높이의 지점. 히말라야 산맥은 가히 책의 제목처럼 신들의 봉우리로 불릴 법한 8000m급 봉우리들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8,848m 높이의 에베레스트는 네팔어로 사가르마타, 티베트어로 초모랑마라고 불리우는데, 산악인은 물론이거니와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에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꿈의 장소가 아닐까. 지금이야 기술이 발전해 줄지어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정도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산이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80~90년대만 하더라도 에베레스트를 등반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생을 걸어야 가능한 것이리라. 이런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을 읽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산을 오르고 싶었다. 산악 소설은 이전에 읽어보지 못했었는데, 전문적인 산악 용어가 많아 처음에는 낯선 단어를 여럿 찾아봐야했지만, 이해하는 만큼 그 긴박함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책 띠지에는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사람은 누구인가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에베레스트라는 꿈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한 인물과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 속 꺼져 있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에 가깝다. 그 과정이 에베레스트 등반이기에 더욱 더 극적이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열정이 타오르게 만든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은 쉽사리 한숨에 다 읽어내기 힘들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긴 호흡에서 달려가며 특히 후반부의 하부와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장면에서부터는 읽기를 멈출 수 없을 만큼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구상에서부터 이 글을 쓰기까지 작가는 20년에 걸쳐 여러 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수차례 다녀왔을 만큼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네팔의 카트만두와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부터 정상에 오르는 6캠프 이후까지 이어지는 실제 등정루트와 지명들을 실증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작가 스스로 토해내듯 온힘을 다해 쏟아낸 문장 덕분에 독자는 눈에 그려지듯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보이듯 읽을 기회를 갖게 된다. 산소가 지상의 1/3밖에 없다는 8000m급 이상에서 인간이 견딜 수 없을 한계에 도달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정말 극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인물에 빠져 읽게 되고, 산을 오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이 생에 대해 평생을 통해 갖게 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사람은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였던 텐징 노르가이이다. 다만, 그 이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탐험대를 조직해 마지막으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정복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 중 1924년 영국 등반가 중 조지 맬러리와 어빈이 최초로 정상에 등정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정상을 등반하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죽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카메라와 필름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우연히 카트만두에서 이를 발견한 후카마치와 카메라를 발견한 하부라는 인물의 삶을 뒤쫓아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찾아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점차 후카마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부라는 인물을 통해 깨달으며 성장해나간다. 단순히 정상을 정복해나가는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로 인해 포기하고 잊혀졌던 자신의 열망을, 무모할 만큼 자신의 인생을 걸어 도전해나가는 다른 인물의 삶을 통해 발견하고, 그 자신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 기어코 꿈을 이루고 해내고야 마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산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않더라도 자신의 내면 속 묻어두었던 열정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분명 좋아하지 않을까.

인간이란, 갖가지 사정을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사정을 하나씩 결말짓지 못한다면 그다음 일을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인간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인간은 다들 다양한 사정을 마냥 질질 끌어 과거의 일을 정리하지 못한 채 다음 일로 나가곤 한다. 그러면서 풍화 될 것은 풍화된다. 풍화되지 않고 화석처럼 마음 속에 한없이 방치되는 것도 있다. 그런 것 하나 갖고 있지 않고서야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해 그것이 거기에 있으니까.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 산이 지고한 존재가 되는 건, 그걸 응시하는 인간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이 신성하기에 인간이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동경하기에 그곳이 신성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아아. 어쩌면 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고 싶은 게 아닐까. 정말 어느 한때 그 정상을, 자신의 발로 밟고 싶다는 생각을, 꿈일지라도 안해본 산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이 버린 것, 버리려 하는 것의 크기를 헤아려보면 당신이 손에 넣으려는 것의 크기를 알 수 있지

에베레스트 정상보드 위로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부터 위는 그저 하늘이 존재할 뿐이다. 대기권이라 불리는 세계의 최상층부. 지구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곳, 그 위는 우주다.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은, 생각해보면 왜 사느냐는 질문과 똑같잖아. 산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푸모리. 눕체. 로체. 그리고 에베레스트 초모룽마. 이름이 없는 무수한 봉우리들. 그 안에서 혼자만 살아 있다. 혼자만, 자신만 호흡하고 있다. 아아, 감당할 수가 없다. 이 거대한 공간. 압도적 거리감. 냉기와 함께 자신의 내면에 우주가 스며드는 듯했다.

내가,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 하나. 쉬지 않는다. 다리가 안 움직이면 손으로 걸어. 손이 안 움직이면 손가락으로 걸어. 손가락이 안 움직이면 이빨로 눈을 씹으며 걸어. 이빨도 안되면 눈으로 걸어. 눈도 안 되고 이것도 저것도 다 안되면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정말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상상해. 온 마음을 다해서 상상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