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
커스티 애플바움 지음, 김아림 옮김 / 리듬문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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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둘째의 말은 믿지 않아" , 흔히 둘째는 듬직한 첫째와 귀여운 막내 사이에서 중간에 끼어 힘들다는 생각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효한 걸까. 물론 이 소설에서는 ‘첫째가 아니다’라는 게 포인트이긴 하지만. 주인공 매기는 둘째로 태어나 스스로가 가장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모두 첫째만을 주목하고 첫째만을 칭찬한다. 모든 집안일로부터 해방되며 모든 일에서 우선으로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매기는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에 방학 동안 학교에서 내준 일기 숙제를 정성을 다해 준비해가지만, 선생님은 매기의 이름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실 소설에서 첫째들이 마을에서 이렇게 특권을 받는 건 수십 년째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모든 집안의 첫째들은 열네 살이 되면 ‘조용한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조용한 전쟁’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지금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해 매일 밤 창문에 암막을 치고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조회마다 평화를 위한 구호를 외친다. 첫째를 내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마을을 도망쳐 마을 경계 밖에 살고 위험한 존재로 ‘방랑자’로 불리며 마을 사람들은 경계를 넘어선 절대로 안 된다. 이 행위는 마을 전체를 위험해 빠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매기는 자신이 노력해도 스스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를 내면서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 용감한 첫째처럼 자신도 우연히 알게 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방랑자를 잡기 위해 방랑자 우나와 만나게 되는 데, 그녀는 자신이 마을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더럽고 위험하며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인 방랑자임에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친구로 생각하는 우나를 잡아 마을 전체를 관리하고 마을의 첫째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촌장에게 넘기며 학교에서도 용감한 사람으로 그토록 바라던 박수와 인정을 받게 되지만 마음이 좋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는 특별하다. 나는 영웅이다. 난생 처음 만든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경계 너머 우나의 아버지에게서 사실은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으며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거짓이었던 것. 그 이후로 촌장과 맞서는 매기는 더 이상 둘째 콤플렉스로 힘들어하는 아이가 아닌 거짓에 호도된 마을 공동체를 살리고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성장하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안락함을 느꼈던 마을의 광장은 더 이상 반듯해보이지 않았으며 ‘더럽고, 위험하며, 속임수를 잘 쓰는 존재’ 그 대상은 과연 진실로 누구인가. 청소년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의미는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이 소설은 우선 표지에 담긴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글씨가 굉장히 깔끔하고 감각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커스피 애플바움이라는 영국 작가의 데뷔 소설이라고 하는데, 문체가 독특하진 않지만 아이의 내면을 적절한 상징물과 행동으로 잘 표현하고 작중 배경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를 정하는 데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청소년 작품답게 아이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해나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서사의 구성이 디스토피아 장르적 성격을 띠며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 권위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주제 의식을 확장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경계’를 설정해 가상의 적을 산정해 공동체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진실을 마주할 수 없도록 하는 권력은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제목이기도 한 ‘경계를 넘어’는 누구에게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유년기를 겪고 있을 아이가 우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성장 소설임에 동시에 진실을 덮고 공동의 적을 만들어 프레임으로 집단을 통제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 진실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정말로 뭔가를 믿고자 하면, 그 믿음을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역사 속에서도 전체주의, 독재가 이루어졌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어떤 집단, 국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경계를 넘어’는 이를 압축해 이야기로 훌륭하게 풀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맞서는 건 역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함께라는 것.

 

 

용감한 사람들도 두려움을 느낀단다.

 

진정한 용감함이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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