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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조선과 유럽의 운명적 만남, 난선제주도난파기 그리고 책 읽어드립니다
헨드릭 하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하멜표류기는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잠깐 한두줄 정도로 언급되고 서구권의 사람이 최초로 기록한 우리 나라의 모습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아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얼마 전,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과 외부에서 특히 우리와 문화적으로 정반대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서구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우리 역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그보다도 훨씬 전인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흔히 조선왕조실록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시선이 아닌 당시 세계사적 흐름이 앞서나가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기에 읽기 전 기대가 컸고, 실제로 다 읽은 후에도 기존에 알고 있던 17세기 조선의 모습과 비교하며 당시 세계사 흐름에 뒤처지기 시작한 우리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하멜 일행이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하멜일행은 폭풍우를 만나 모든 걸 잃어버리고 간신히 육지에 도착했는데 처음 도착하는 미지의 장소였고, 곧 많은 수의 무장한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체포되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을 장면을 생각하면 웃음이 잠깐 나오다가도 막상 입장을 바꿔 한 개인으로 하멜 입장에서 그 상황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붉은 수염과 파란눈을 한 조선 관리를 만나게 되는데, 하멜 이전에 조선에 도착해 최초로 귀화한 얀 얀스 벨테브레 한국이름으로는 박연이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곧 떠날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차다가 탈출할 생각은 하지말고 여생을 마칠때까지 이 나라에서 살아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낙담했을지 끔찍하다. 만약에 내가 해외에 갔는데,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갇혀 살게 된다면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심지어 젊은 시절을 다 잃고 13년이나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우리 나라가 물론 화포제작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목적은 이해가 되지만 관습적으로 외국인을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라고 말한 점 등은 페쇄적인 조선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아쉽다. 보수적이고 타 문화에 배타적인 유교중심의 조선이었지만, 외부와 적극적으로 교역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은 너무나 현재 중심의 세계관일까.
아무래도 동인도회사에 그동안 밀린 임금을 지불해달라는 보고서 격의 성향이 짙은 작품이라 문학적으로 뛰어난 수사나 표현은 없지만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머물렀던 전라도의 세세한 지명까지 기록해놓을 정도로 촘촘하게 기록한 내용이 인상적이었고, 외부에서 바라본 우리의 당시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신선했다. 조선형벌에서 기록되지 않은 정도의 심각한 형벌이나 서구권의 시선에서 바라보았기에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모습을 보고 과장하듯 쓴 것으로 추측되는 내용도 물론 있겠지만, 17세기 우리 조선의 생활상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 서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조선과 일본의 외부 세력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가 있어 또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