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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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누구인가, 이야기의 진행은 어찌되는가를 묻는다면 그것이 중요한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옆자리 남자로 나타나는 이름이 없는 인물의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지인들의 이야기,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들의 독백 같은 서술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삶의 윤곽이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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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이쯤 되니-그녀는 마흔세 살이었다-머릿속에 자신의 기억이나 의무, , 지식, 그날그날 해야 할 잡다한 일들 외에, 다른 사람들의 그런 것들- 오랜 세월 듣고, 말하고, 공감하고, 걱정하며 쌓아온 것들-도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럼 수많은 종류의 정신적 부담을 나누는 경계나, 그것들 사이의 구분이 흐릿해져버려서 이제 어떤 것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고 어떤 것이 자신이 아는 다른 이들에게 있었던 일인지, 심지어 뭐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뭐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 문장이 이 소설을 이해하게 만든다.

쉽게 읽어지는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에 나와 내 지인의 이야기가 계속 삽입된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이의 삶을 보며 내 삶의 윤곽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48 당나귀 눈앞에 매달린 당근처럼 책을 펼쳐놓은 채 영원히 계단을 오르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였다. 그 계단을 오르는 일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P48

85 사람들은 원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할 때는 상대를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법이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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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희망은 자녀나 남편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거기서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지만, 사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지적했듯이, 그런 여성은 기생충에 불과해요. 남편에게 붙어사는 기생충, 자식에게 붙어사는 기생충." - P133

148 왜 아이들의 인생이 완벽해야 하죠? 그런 완벽함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갉아먹는 건데,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아마 우리 욕심에 있을 거예요. - P148

281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을 둘러싼 바깥의 세부적인 면들을 모두 채워졌는데, 정작 윤곽 자체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형태 덕분에. 비록 그 내용물은 알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보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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