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란 부제에서 엿보이듯, 이 책은 보건의학에 종사하는 의사이자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과 연구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어떻게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지, 여러가지 부조리하며 불편할 수도 사회적 문제와 그동안의 연구결과(자신 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전문석학들의 연구논문도 포함하여)를 예를 들어가며 공동체(나를 포함한 구성원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건강과 안녕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함께 그 답을 고민해보자는 책이다.
그렇다고 전문가나 알아들을 수 있는 현학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내용이 아니라 뉴스나 sns 등을 통해 익히 들어왔고 어는 정도는 알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하여 그 표면 아래 숨어 있는-어쩌면 보지 않으려고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것일 수도 있는-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하여 역학과 보건의학의 학자로서의 전문적 관점과 함께, 소외되고 배척되어 온 약자들의 곁에 선 인권운동가의 따뜻한 시선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는 온기가 느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소방공무원 근로환경, 세월호 참사,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결혼이주여성, 재소자, 가습기 살균 피해자, 낙태금지법 등 근래 한국사회의 사회적 이슈들을 열거하며 그것에 관계된 이들의 건강을 추적 연구한 과정과 결과를 얘기하면서,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일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다고 한다.

우리는 싫든 좋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기에 (실제로 사회적 관계망이 좋을 수록 유병률도 낮고 훨씬 더 건강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가 교리처럼 신봉되고 실천되는 사회를 완강히 거부하며,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계속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회,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이들이 살아가는,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이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를 함께 가꾸어가자고 조용하면서도 담담히 그러나 단호히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사는 이들의 모습과 목소리에 무관심하지 않고 나름 생각이란 걸 하며 가능한 한 내삶으로써 살아내려고 노력을 제대로 해 왔는지.
몇 푼 후원금으로 자기 만족이나 위안으로 삼고 있었던 건 아닌지.
관심은 연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헛된 메아리나 구호로만 끝나고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
때론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피하지 않고 맞아야 함을, 하등의 이해관계도 없더라도 어떤 이는 그들 편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엄혹한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너와 내가 결코 외롭지 않을 수 있음을, 살아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더불어, 의학분야에도 이런 학문과 소명이 있었다는 사실과 사회역학적인 관점에서 사회 문제들을 새로이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독서의 성과랄 수 있겠다.
좋은 책 추천을 통해 지평의 경계를 넓혀 준 페친 이정수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새로 출간되었다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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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역시나 탄탄한 내공과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느껴지는, 실망을 시키지 않는 유작가님의 멋진 작품.

저자의 청춘시절, 삶의 의미와 방향, 목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시대를 관통하는 고들을 소개하고 있다.
독서감상문 모음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세월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와 느낌을 아낌없이 선사하며 고전에 반열에 오른 뛰어난 작품들에 대한 재해석이자, 지금을 사는 우리를 향한 위대한 영혼들의 속삭임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까.

총 14의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소설이 5권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3권이 러시아 작가의 작품인 점은 흥미롭다. 《죄와 벌》, 《대위의 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그것이며, 작가의 말처럼 인류 세계사에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써 내려온 광활한 대륙의 울림이 다른 작품들(그래도 여기서는 한국 소설과 독일 소설을 각 1편씩 소개했는데 러시아의 작품들에 비해 그 울림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겠다)에 비하여 더 컸으며 더 많은 러시아 작가를 다루지 못했다는 고백은 앞으로 나의 소설 취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작가의 작품도 2편이나 있다. 지행합일의 위대한 이상을 몸소 실천하셨던 시대의 지성,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4.19. 혁명의 자유의 함성과 뜨거운 몸짓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와 국가라는 근대 탄생한 괴물에 대한 절망감이 스며있는 최인훈 작가의 《광장》은 식민치하와 동족 전쟁, 외세에 의한 강제 분단의 아픔과 상흔을 깊숙히 품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외에도 《공산당 선언》, 《인구론》,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사회과학분야의 저작과 명불허전인 정치와 역사의 동양고전 《맹자》와 《사기》가 소개되고 있다.
《종의 기원》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생물과학과 문학소설의 장르지만 실상 그 내용과 시사점은 정치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을 보면, 결국 저자의 생애에서 다시 톺아본 청춘의 독서 목록은 다분히 정치사회․역사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작가의 청춘 시절 독서 편력의 결과는 오늘의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어쩌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풍문이나 요약본, 다른 매체를 통해 이름이나 한 번 쯤 들어보고 그 무게감(내용과 외형 모두)에 버거워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오겠지, 하고 미뤄두었던 14권의 <유작가 청춘시대 독서목록>은 비록 꽤 늦은 감이 있지만(뭐, 백년 인생에서 이제 겨우 절반 앞이니 그런대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지만), 제2의 청춘을 준비하는 나에게도 훌륭한 참고 독서목록이 될 것 같다.
14권의 책 중,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당장에라도 읽고 싶은 주체하기 힘든 독서 욕구를 마구 자극하는 작품이다.

책이란 읽는 이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인 것만큼 느끼게 되고, 느낀 것만큼 살아내게 된다는 진실은 앞서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춰주고 있는 ‘위대한 정신들’의 삶을 잠시만 짚어봐도 알 수 있다.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기에,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책 읽는 모습을 내 아들이 보고 훗날 나를 추억할 때, 책 읽기에 빠져있던 아름답고 따스했던 아빠의 뒷모습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나도 아들도 그 기적의 단비에 흠뻑 젖어 달디 단 기쁨의 향연을 언제나 누렸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행복한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독서감상문은 이렇게 쓰야 제맛이 난다는 글쓰기의 훌륭한 표본을 보여주신 유작가님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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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자유롭게 하는 관계

자기계발과 조직경영학 부문에서 주목을 끈 책.
‘상처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평화에 이르는 길‘이란 부제가 붙은 자신과 타인, 조직(가정, 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의 갈등해결에 대하여 세계 석학들의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적용이 가능(실제로 이미 경험으로 입증되어 드러난)한 기술과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많은 갈등과 그로 인한 고통의 해결을 위한 대단히 실용적인 도구는 역시나 나 자신부터 변화하기이다.
문제의 현상과 사건에 대한 바로보기 단계인 <상자 밖으로 나가서 평화를 향한 마음 갖기>에서 출발하여 <영향을 주는 다른 이들과 관계맺기-관계형성-듣기와 배우기-가르치기와 대화하기>를 거쳐 마침내 궁극의 목표인 <바로잡기>에 이르기까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안내해주고 있다.
바로 보기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상자에 갇혀 있기 때문인데 <우월상자>, <자격상자>, <이미지상자>, <열등감상자>가 그것이다.
내가 더 나은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과 이에 반해 다른 이에 비해 오히려 내가 못하다는 패배감에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좌우되는 꾸미기에 해당하는 네 개의 상자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가두어 놓고 그릇된 인식과 판단을 초래하여 종래는 나는 물론 타인(조직)과의 관계를 전쟁으로 몰고 가 파국으로 망하게 만들고 만다는 사실이다.

여타의 자기계발이나 경영기법 리더십 분야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론이나 말들이 나오고 있겠지만 이 책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좀 더 설득력있게 다루고 있어 많은 부분에서 수긍이 가는 내용인 듯.
실제 내 가까운 이들의 대화 모습을 조금만 관찰해봐도 왜 상황을 더 꼬이게 하며 어렵게 만들어가는지 그 과정이 빤히 보이고 예측되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현실의 숨은 진짜 모습을 직시하고 파악하여 솔직히 적은 것이기에 그래서 더 유익하고 실용적인 괜찮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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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주는 기쁨

뭔 새로운 이야기라도 나왔나 기웃했더니 작가의 그동안의 작품을 선별하여 엮은 것.
펭귄출판사(펭귄 로고로 잘 알려졌다는데 난 모르겠고 ㅡ ㅡ::) 창립 70주년 기념출간의 70번째 마지막 작가의 작품이라고 상징적 의미로 한껏 추켜세웠는데, 역시나 우리의 작가님은 자신 이름을 부정해가며, ‘보통‘ 수준을 가벼얍게 뛰어넘고 있다.

최근 읽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한 부분을 가져온 <진정성>, 몇 년 전 사놓고 앞 몇 페이지에서 멈춘 채 여전히 책장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인 <일과 행복>을 비롯해 작가 자신이 손수 가려 뽑았다고 하는 저작물(정확히는 저작물의 한 부분들) 9개로 엮어진 문고판보다는 약간 큰 부담가지 않는 분량의 이야기이다.

그리움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는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부터 히드로 공항을 배경으로 하는 <공항에 가기>나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예감한 예의 <진정성>도 그렇고, 일을 통해 행복을 구하기란 애시당초 글렀기에 기대를 접는 것이 슬픔을 그나마 줄일 것이라는 <일과 행복>, 최고의 존재일 것 같은 사람의 여러 행위들도 기실 여타 동물들의 기본적 욕구의 다소 복잡한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동물원에 가기>, 그 외에도 <독신남>, <따분한 장소의 매력>, <글쓰기(와 송어)>, 그리고 <희곡>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우리 일상의 평범하고 보통의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 안에서(옮긴이도 말미에 그랬듯이 작가의 관심사와 꿈꾸는 이상향을 어는 정도 엿보게 만드는 소박하고 작은 이야기) 본인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새로운 것들을 끄집어내어 심드렁한 듯 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표현한 것처럼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끼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고 할까.

아직 저자의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박학한 지식에 깊이 있는 통찰력과 다소 엉뚱하지만 따스하고 새로운 시선과 표현은 내가 관심독자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작품이란 사실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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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섹스

제목에서부터 대략 난감해질 수도 있는,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누구나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훤한 마당으로 끌고 와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왠지 뒷통수가 따끔거리는 그런 주제.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라는 스탕달의 명제에서 ‘섹시함 역시 행복의 약속‘이기에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인간 존재 본연의 기저에 깔린 그 끌림과 욕구는 결코 무시해서도 이상하게 취급해서도 안됀다는 저자의 생각이나 섹스와 관련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는 병원의사가 아니라 고통을 조절하며 받아들이는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호스피스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나,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란 선언이나 섹스와 결혼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하다는 사실과, 인간인 이상 거의 예외없이 모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와 관련된 문제와 그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까지를 망라하고 있는 이 저작은 저자가 2008년 런던에서 ‘인생학교‘란 것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가장 주목받았던 여섯 가지의 강의를 ‘인생학교 시리즈‘로 출간하게 된 것 중의 제일 첫 번째 작품이다.

말미에 <더 찾아보면 좋은 자료들>을 수록해 놓았는데, 저자의 폭넓고 깊은 지적 관심과 연구를 어렵지않게 짐작하면서 동시에, 독자들로 하여금 탐구정신을 배양하고 고무시키며 금단이며 터부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예의 그곳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끔 만들고 있다.

나머지 인생학교 시리즈의 주제인 <돈, 일, 정신, 세상, 시간>을 저술한 작품 역시 탐독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곧장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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