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역시나 탄탄한 내공과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느껴지는, 실망을 시키지 않는 유작가님의 멋진 작품.
저자의 청춘시절, 삶의 의미와 방향, 목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시대를 관통하는 고들을 소개하고 있다.
독서감상문 모음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세월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와 느낌을 아낌없이 선사하며 고전에 반열에 오른 뛰어난 작품들에 대한 재해석이자, 지금을 사는 우리를 향한 위대한 영혼들의 속삭임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까.
총 14의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소설이 5권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3권이 러시아 작가의 작품인 점은 흥미롭다. 《죄와 벌》, 《대위의 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그것이며, 작가의 말처럼 인류 세계사에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써 내려온 광활한 대륙의 울림이 다른 작품들(그래도 여기서는 한국 소설과 독일 소설을 각 1편씩 소개했는데 러시아의 작품들에 비해 그 울림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겠다)에 비하여 더 컸으며 더 많은 러시아 작가를 다루지 못했다는 고백은 앞으로 나의 소설 취향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작가의 작품도 2편이나 있다. 지행합일의 위대한 이상을 몸소 실천하셨던 시대의 지성,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4.19. 혁명의 자유의 함성과 뜨거운 몸짓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와 국가라는 근대 탄생한 괴물에 대한 절망감이 스며있는 최인훈 작가의 《광장》은 식민치하와 동족 전쟁, 외세에 의한 강제 분단의 아픔과 상흔을 깊숙히 품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외에도 《공산당 선언》, 《인구론》,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사회과학분야의 저작과 명불허전인 정치와 역사의 동양고전 《맹자》와 《사기》가 소개되고 있다.
《종의 기원》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생물과학과 문학소설의 장르지만 실상 그 내용과 시사점은 정치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을 보면, 결국 저자의 생애에서 다시 톺아본 청춘의 독서 목록은 다분히 정치사회․역사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작가의 청춘 시절 독서 편력의 결과는 오늘의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어쩌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풍문이나 요약본, 다른 매체를 통해 이름이나 한 번 쯤 들어보고 그 무게감(내용과 외형 모두)에 버거워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오겠지, 하고 미뤄두었던 14권의 <유작가 청춘시대 독서목록>은 비록 꽤 늦은 감이 있지만(뭐, 백년 인생에서 이제 겨우 절반 앞이니 그런대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지만), 제2의 청춘을 준비하는 나에게도 훌륭한 참고 독서목록이 될 것 같다.
14권의 책 중,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당장에라도 읽고 싶은 주체하기 힘든 독서 욕구를 마구 자극하는 작품이다.
책이란 읽는 이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인 것만큼 느끼게 되고, 느낀 것만큼 살아내게 된다는 진실은 앞서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춰주고 있는 ‘위대한 정신들’의 삶을 잠시만 짚어봐도 알 수 있다.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기에,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책 읽는 모습을 내 아들이 보고 훗날 나를 추억할 때, 책 읽기에 빠져있던 아름답고 따스했던 아빠의 뒷모습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나도 아들도 그 기적의 단비에 흠뻑 젖어 달디 단 기쁨의 향연을 언제나 누렸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행복한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독서감상문은 이렇게 쓰야 제맛이 난다는 글쓰기의 훌륭한 표본을 보여주신 유작가님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