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는 기쁨
뭔 새로운 이야기라도 나왔나 기웃했더니 작가의 그동안의 작품을 선별하여 엮은 것.
펭귄출판사(펭귄 로고로 잘 알려졌다는데 난 모르겠고 ㅡ ㅡ::) 창립 70주년 기념출간의 70번째 마지막 작가의 작품이라고 상징적 의미로 한껏 추켜세웠는데, 역시나 우리의 작가님은 자신 이름을 부정해가며, ‘보통‘ 수준을 가벼얍게 뛰어넘고 있다.
최근 읽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한 부분을 가져온 <진정성>, 몇 년 전 사놓고 앞 몇 페이지에서 멈춘 채 여전히 책장에 다소곳이 꽂혀 있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장인 <일과 행복>을 비롯해 작가 자신이 손수 가려 뽑았다고 하는 저작물(정확히는 저작물의 한 부분들) 9개로 엮어진 문고판보다는 약간 큰 부담가지 않는 분량의 이야기이다.
그리움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는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부터 히드로 공항을 배경으로 하는 <공항에 가기>나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예감한 예의 <진정성>도 그렇고, 일을 통해 행복을 구하기란 애시당초 글렀기에 기대를 접는 것이 슬픔을 그나마 줄일 것이라는 <일과 행복>, 최고의 존재일 것 같은 사람의 여러 행위들도 기실 여타 동물들의 기본적 욕구의 다소 복잡한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동물원에 가기>, 그 외에도 <독신남>, <따분한 장소의 매력>, <글쓰기(와 송어)>, 그리고 <희곡>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우리 일상의 평범하고 보통의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 안에서(옮긴이도 말미에 그랬듯이 작가의 관심사와 꿈꾸는 이상향을 어는 정도 엿보게 만드는 소박하고 작은 이야기) 본인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새로운 것들을 끄집어내어 심드렁한 듯 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표현한 것처럼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끼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고 할까.
아직 저자의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박학한 지식에 깊이 있는 통찰력과 다소 엉뚱하지만 따스하고 새로운 시선과 표현은 내가 관심독자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작품이란 사실은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