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명작 동화에 숨은 역사 찾기‘란 부제가 붙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가 흔히 어렸을 적 들어보거나 읽어봤거나 애니매이션으로라도 한 번 쯤은 본 적 있는 세계의 유명한 동화나 명작을 소재로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결말이 판이하게 달라 동심을 갈가리 찟어내는 잔혹동화와는 그 차원과 맥락이 완전 다르다.)
저자가 그랬듯 나 또한 <백설공주>나 <숲 속의 잠자는 미녀>를 읽었을 때, 왜 이리 맨날 왕자만 나타나고 모든 왕비는 계모고 마녀일까라고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작품이 저술된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야기가 왜 그렇게 구성되고 흘러갔을 지를 대단히 설득력있게 전해주고 있다.
단순히 숨어있는 이야기 들려주기를 넘어서 그것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과 소망은 어떠했는지, 작가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냈을 지를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며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장자가 아니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던 수많은 왕자들은 이웃나라의 공주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간절히 바라던 떠돌이 구혼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정략적 결혼으로 타국에 홀로 와 권력의 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왕의 총애가 절대절명의 무기였던 왕비는 거울이라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고향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은 어릴 적 묵혀두었던 오래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적쟎이 도움이 되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유대인 샤일록이 오히려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법의 잣대를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판사로 변장하여 속임수를 쓴 포오셔에 의해 전 재산 몰수에 개종까지 당하게 되는 심히 부당한 판결을 받게 된다. 물론 안토니오를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희생시킬려 했던 샤일록을 두둔할 순 없겠지만 기독교인들의 추악한 이중성과 뿌리깊은 유대인 혐오를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작가의 추리는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이 외에도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피리 부는 사나이, 빨간 머리 앤, 로빈 후드의 모험,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의 꼽추, 오를레앙의 처녀, 드라큘라, 돈 키호테, 삼총사, 해리 포터, 빨간 구두, 왕자와 거지, 소공자, 소공녀, 레 미제라블, 쿠오레, 마지막 수업, 큰 바위 얼굴, 엄마 찾아 삼만 리, 플랜더스의 개, 안네의 일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상드리용 아센푸틀(신데렐라)의 이야기 속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미처 간과했던 역사적 사실들(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종교개혁,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미국 남북전쟁 등등)을 우리 앞에 불러내어 흥미를 더해 주기도 하며 때때로는 경악스런 사실로 망치로 한 대 치는 듯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역사 고증적인 방법의 책읽기가 어찌 보면 문학의 예술성과 작가의 창작성을 훼손하고 몰입도와 흥미를 떨어지게 하고 본래 집필 의도와 달라질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이런 시도는 작품 감상을 더 풍요롭게 하는 무척이나 유용한 도구로써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마저 주는 것 같다.
한 시대를 더불어 살며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과 그들의 희노애락과 간절한 희망을 노래했던 작가들도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를 넘어 행간과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이야기를 발견하고 들어주기를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쟝르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독서는 이 책의 작가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도움을 주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식의 확장은 물론 감상의 깊이까지 더해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학창시절 시대마다 비슷한 관직과 제도의 변천사를 외우고 동양과 서양의 주요사건을 외우는 데 진력이 나곤 했던 하나도 재미없던 역사와 세계사가 어쩌면 무척이나 매력적인 반가운 친구로 다가오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