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뭐라고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아들 관찰기.
유치원 때부터 사춘기까지 아들 겐의 성장과정을 순전한 엄마의 눈과 마음으로 지켜보며 써왔던 18개의 에피소드를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유품을 정리하다 아들이 발견하고 발표한 유고집이란다.

어린이집 여자아이들에 둘러싸여 인기를 독차지하는 녀석,
놀이터 모래더미 속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녀석,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달라고 조르는 녀석,
처음으로 마음에 든 여자친구 앞에서 가슴 졸이는 녀석,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역시 좋아하는 친구들과 절친동맹을 맺고 지기가 되는 녀석,
절친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위로하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녀석
반려견의 고통에 함께 울어주는 녀석,
꾀병 부리는 엄마에게 이불을 깔아주며 얼음찜질을 해주는 녀석...
등등 작가의 아들을 향한 애정이 듬뿍 스미어 있는 잔잔한 이야기들을 듣는 내내 내 아들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젠 벌써 내 키와 몸무게만큼이나 자라난 녀석이지만 눈도 제대로 못뜨고 바나나같은 발가락을 꼬물거리던 갓난쟁이때부터 기다가 아장거리고 뒤뚱거리고, 매미와 사슴벌레를 좋아하고 붉은 단풍잎 하나에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하던 모습이며 때아닌 눈에 눈사람을 만들며 너무나 신나하는 모습과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폼 잡던 모습이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하던 기억, 여드름 하나에 고민하는 지금까지의 모습 등 수많은 그 순간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처럼 장면 하나 하나가 그대로 상영되고 있었다.

미소가 절로 피며 입꼬리가 한참이나 올라갔다.
참 행복했다.
너란 녀석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구나.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바람처럼 나 또한 아들녀석이 다른 이의 마음에 다가갈 줄 알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빈다.
나 역시 수많은 이땅의 아빠들처럼 ‘아들바보‘란 걸 진작부터 알았으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가 너란 걸 궂이 비밀로 남겨두진 않으리라.

아, 나도 육아일기가 아니라도 짧은 기록으로로도 남겨둘걸 그랬어. 지금이라도 옛 사진을 들추어가며 기억을 더듬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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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책.
미술작품을 소재로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생각과 가치관 관점에 따라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을 수 있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될 수 있기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 가타부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다만 그러한 문제의 현상을 살펴보고 과연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라고 오히려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섣부른 주장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생활의 여러 불편한 사실들과 그것으로부터 연유되는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들(누구나가 한 번쯤은 고민해 봤거나 아니면 고민해야봐야 할 것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온다.

여성, 가난, 장애, 이주민, 성폭력, 성소수자, 제노사이드,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고전적인 문제도 포함하여 새로운 시대에서 대두되는 기계화와 고령화 소외의 문제, 육식에 따른 동물권 등도 거론하며 시종일관 불편함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불편함이 큰 변화의 시작,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낯선 시선 주기랄까, 그것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봄으로써 타인에 대한 암묵적 잠재적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결국 고민과 실천을 통한 해결은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뭐 그런 결론에 다다르는 책.

인권에서의 여러 이슈들을 미술이라는 소재를 빌어와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작품의 단순한 면만이 아닌 그 시대 정신을 콘텍스트를 읽어내고 감상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거꾸로 작가 또한 시대적 고민과 상황을 담아내야하며 녹여낼 수 밖에 없는 사실도.

조금 더 편한 세상이 되어가기 위해선 불편한 미술감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걸 마냥 불편해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나의 편안함이 너의 불편과 희생을 전재로 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기에 조금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꿈꾸는 예술과 그것을 향유할 우리가 있는 한 희망은 언젠가는 우리 앞에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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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말의 품격>을 읽고 느낌이 좋아 작가읽기로 따라 읽은 책.
출판일을 보니 <언어의 온도>가 1년 먼저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뒤에 나온 <말의 품격>에 비해 좀 더 날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은 대게 거의 다 섬세하고 예민하다.
말과 글로 표현되는 우리의 언어는 그 섬세함과 예민함을 잘 살려줄 때 절망에 빠진 이에게 따스한 위로를, 두려움에 망설이는 이에게 용기를, 슬픔으로 망연자실한 이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살리는 말이 되고 이것이 기록되면 글로서 또다시 살아난다.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18쪽)
‘애초에 길이 없으므로 어디든 갈 수 있다‘(94쪽)
‘삶의 진보는 대게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98쪽)
‘글을 쓰는 작업은 실패할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과정,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행위‘(134쪽)
‘인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178쪽)
‘길을 잃어봐야 자신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188쪽)
‘내게 주어지는 하루를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로 생각하기‘(196쪽)
‘마지막 순간이 두 사람의 추억을 지배한다‘(208쪽)
‘지는 법을 알아야, 이기는 법도 알 수 있다‘(221쪽)
‘한 발 한 발 보조를 맞춰가며 뒤에서 따라가는 사랑이야말로 애틋하기 그지없다‘(230쪽)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292쪽)
‘사랑하는 사람과 시선을 나눌 수 있다는 것‘(297쪽)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리는 행복하다‘(306쪽)

수려하고 섬세한 아름다운 말들의 향기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돈다.
내가 내뱉은 수많은 말의 씨앗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났을까?
네 마음 깊은 곳에서 발아하여 작지만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열매로 태어났다면 36.5도의 체온처럼 그 따스한 값을 다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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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

‘명작 동화에 숨은 역사 찾기‘란 부제가 붙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가 흔히 어렸을 적 들어보거나 읽어봤거나 애니매이션으로라도 한 번 쯤은 본 적 있는 세계의 유명한 동화나 명작을 소재로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결말이 판이하게 달라 동심을 갈가리 찟어내는 잔혹동화와는 그 차원과 맥락이 완전 다르다.)

저자가 그랬듯 나 또한 <백설공주>나 <숲 속의 잠자는 미녀>를 읽었을 때, 왜 이리 맨날 왕자만 나타나고 모든 왕비는 계모고 마녀일까라고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작품이 저술된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야기가 왜 그렇게 구성되고 흘러갔을 지를 대단히 설득력있게 전해주고 있다.
단순히 숨어있는 이야기 들려주기를 넘어서 그것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과 소망은 어떠했는지, 작가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냈을 지를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며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장자가 아니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던 수많은 왕자들은 이웃나라의 공주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간절히 바라던 떠돌이 구혼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정략적 결혼으로 타국에 홀로 와 권력의 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왕의 총애가 절대절명의 무기였던 왕비는 거울이라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고향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은 어릴 적 묵혀두었던 오래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적쟎이 도움이 되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유대인 샤일록이 오히려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법의 잣대를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판사로 변장하여 속임수를 쓴 포오셔에 의해 전 재산 몰수에 개종까지 당하게 되는 심히 부당한 판결을 받게 된다. 물론 안토니오를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희생시킬려 했던 샤일록을 두둔할 순 없겠지만 기독교인들의 추악한 이중성과 뿌리깊은 유대인 혐오를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작가의 추리는 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이 외에도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피리 부는 사나이, 빨간 머리 앤, 로빈 후드의 모험, 로미오와 줄리엣, 노트르담의 꼽추, 오를레앙의 처녀, 드라큘라, 돈 키호테, 삼총사, 해리 포터, 빨간 구두, 왕자와 거지, 소공자, 소공녀, 레 미제라블, 쿠오레, 마지막 수업, 큰 바위 얼굴, 엄마 찾아 삼만 리, 플랜더스의 개, 안네의 일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상드리용 아센푸틀(신데렐라)의 이야기 속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미처 간과했던 역사적 사실들(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종교개혁,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미국 남북전쟁 등등)을 우리 앞에 불러내어 흥미를 더해 주기도 하며 때때로는 경악스런 사실로 망치로 한 대 치는 듯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역사 고증적인 방법의 책읽기가 어찌 보면 문학의 예술성과 작가의 창작성을 훼손하고 몰입도와 흥미를 떨어지게 하고 본래 집필 의도와 달라질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이런 시도는 작품 감상을 더 풍요롭게 하는 무척이나 유용한 도구로써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마저 주는 것 같다.
한 시대를 더불어 살며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과 그들의 희노애락과 간절한 희망을 노래했던 작가들도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를 넘어 행간과 그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이야기를 발견하고 들어주기를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쟝르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독서는 이 책의 작가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도움을 주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지식의 확장은 물론 감상의 깊이까지 더해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학창시절 시대마다 비슷한 관직과 제도의 변천사를 외우고 동양과 서양의 주요사건을 외우는 데 진력이 나곤 했던 하나도 재미없던 역사와 세계사가 어쩌면 무척이나 매력적인 반가운 친구로 다가오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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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ㅎㅎㅎ 제목처럼 어려운 미술이 아니라 심심풀이 땅콩처럼 방바닥에 배붙이고 주전부리 입에 물고 낄낄대며 읽어 나갈 수 있는 미술입덕 책.
뭐 그렇다고 가볍게 입맛만 다시거나 미술사나 읊어대며 대표 작가 작품이나 입질하는 패션쇼 같은 책은 아니고.
근현대 미술의 거장 중 지대한 영향을 미친 14인을 소개하긴 하는데 예의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직접 들어보진 않았지만 팟캐스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빨이 충분히 느껴지는) 재밌고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는 콕콕 짚어가면서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미술문외한이라도 무척 재밌게 그래서 금방 다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다.

어떤 미술작품 앞에서 철학적 사유라도 해야 되는 냥 심각한 고민의 얼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태도는 미술이(확대하자면 모든 예술이) 꼭 권위있는 전문가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우리 삶 일상의 모든 것이 미술의 소재가 될 수 있고, 그 안에서 느낀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표현하면 그것이 미술(예술, 음악도 마찬가지)이며, 그것의 감상과 향유 또한 일반 대중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하는 까칠한 선생이 아닌, 문화인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교양의 경험치 축적을 위한 지루하고 딱딱한 수업과목이 아닌, 기분좋게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편한 친구같은 미술로 소환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뭉크, 칼로, 드가, 고흐, 클림트, 실레, 고갱,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뒤샹 등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미술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그들의 에피소드와 실패와 성공, 연애담까지 곁들인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과 발전을 미술가 중심으로 이야기하여(어려운 서술이 서술이 아니라 말그대로 엄마나 할머니가 이야기하듯) 전혀 지루하지도 않으며 핵심은 놓치지 않는다. 각 장 마지막에 《더 알아보기》로 엑기스 뽑듯 친절한 편집까지 곁들여 어린 아이나 청소년도 무리없이 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에 소개된 거장들의 도판 목록 내용에 그 소장지가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뭐 쉽지는 않겠지만(어쩌면 영원히 요원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언젠가는 그 대작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이 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저자도 직접 보고싶어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돈 벌어가며 유럽 미술관 순례를 했으니 말이다.

아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빌려와서 내가 먼저 단숨에 다 읽어버린 건 안비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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