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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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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엘리아의 제야』는 『제망매』의 속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마찬가지로,『엘리아의 제야』는 그의 산문들을 소설적으로 해설한 것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소설도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런 소설이 너무 없는 건 아닐까. 소설을 소설 이외의 것을 통해 짐작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요컨대,
고종석의 소설에서 '누이'의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들은 대개 불구다. 따라서 누이는 안쓰럽고 애틋하다. 따라서 사랑스럽다. 소설에서 이 '사랑'은 거의 에로스적인 것, 근친상간에 가까운 것으로까지 묘사되는데, 여기에 고종석의 핵심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틋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이 어떻게 같으냐, 또는 불구인 누이를 어떻게 죄의식 없이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고종석의 윤리에 의하면 그것이 옳다. 그가 누이를 사랑하는 것, 그가 전라도를 사랑하는 것, 그가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 그가 모국을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한 윤리적 요청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전라도에 대해서도, 모국어에 대해서도, 국적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가 합리적인 자유주의자인 만큼 그렇다. 고종석이 아닌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태생 때문에 누이와 전라도와 모국어와 모국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그는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나'는 누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오랫동안 모국에 등을 돌리고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쓰고 살면서도 국적과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 있지는 않을까. 태생이 아니라 사랑, 내가 누이에게 입맞춤한 것이 태생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어서?
말하자면, 일견 편안한 듯한 그의 소설에서 강한 긴장감이 느껴지는것은 그런 의문 탓이다. 그가 체득하고 있는 문장과 윤리의 보편타당함이 이땅의 보통의 인간들과 끊임없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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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시마 유코 소설집
쓰시마 유코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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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보다 서사가 우선이다. 구비문학이 사소설보다 우선이다. 그랬을 것이다.

아이누의 자장가가 화자의 서사와 섞이는 장면은 분명 일본의 단일민족주의에 대한 유효하고 아름다운 반론이다. 목 없는 새가 바다 저편에서 건너오는 장면, 달에 갇힌 아이를 생각하는 장면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기억에 남을 대목이다.

여러 서사가 '나'를 관통하고 결국 여러 '나'가 나를 관통하면서 소설은 일본의 단일한 자의식의 중핵에 있을 '나'가 사실은 다중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런 무수한 사인칭의 '나'들은 무사히 '나' 안으로 안착한다. 자꾸 그런 느낌이 든다. 저자의 소설 작법이 너무 안정되어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소설이라는 형식에 대한 사소설이다. 결국 사소설이다.

요컨대, 저자는 대단히 일본적이지 않은 것들을 대단히 일본적인 방식으로 길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서사가 화자에게, 구비문학이 사소설에 흡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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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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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리고 가해자의 심리에 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다.

2차대전 당시 학살과 폭력에 가담했던 대부분의 일본군 가해자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서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이는 그 명령 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천황이 면책됨으로써 전 국민이 책임을 회피하게 되었다고 본다. 반면에 저자는 그 개개인의 윤리적 불감증을 하나의 증상으로 간주하고 그 경험을, 기억을, 감정을 분석해나간다. 그리고 치료해나간다.

얼마 안 가 목숨이 끊어질 할아버지에 대해 집요하게 죄의식을 추궁하는 저자의 태도는 때로는 잔인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가해자의 폭력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폭력의 가해자가 폭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폭력을 추체험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죄의식은 스스로의 공격성을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공격하는 것에 의해 생긴다. 그러므로 지나친 죄의식은 우리들을 자살이나 정신장애로 몰아갈 위험성이 있다."(216쪽) 즉, 가해자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방어의식이다.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때, 피해자의 목을 베었을 때, 그의 눈빛을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 비단 일본만이 그런 감정과 능력을 억압해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아가, 비단 미국만이 그런 감정과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이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폭력에 대한 자기반성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무엇보다, 폭력, 그리고 가해자의 심리 일반에 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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