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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정지인 옮김 / 낭기열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터무니없이 오래 두고 읽었지만 그 시간과 그 동안의 조바심이 아깝지 않다. 번역도 좋고 뭐 다 좋다.
-그러니까 하늘이 내리는 천생의 이야기꾼이란 아주 희소한 확률로, 랜덤하게 어떤 때 어떤 장소를 골라 태어나게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1978년의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라니, 이런 얄궂은 일이 또 있을까. 이런 보석 같은 문장과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닌 인간이 같은 시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우린 어떤 문장과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을까.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런 의문을 품게 한다. 전쟁과 이산 이후에 강이 더이상 서사(시)도 서정(시)도 될 수 없다면, 그러면 전쟁과 이산 이후에 강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더이상 강물로 흐르지 않고 포탄의 파편처럼 흩어지게 된 이후에는.
"할아버지라면 이렇게 말하셨겠죠. 좋은 이야기란 우리 드리나와 같은 이야기란다. 드리나는 결코 잔잔하게 졸졸 흐르는 강이 아니야. 드리나는 격렬하고, 광활하고, 지류들이 흘러들어 더욱 풍요로워지고, 강둑 위로 넘쳐흐르고 콸콸 솟아 흐르며 거친 물소리를 내고, 때때로 얕아지기도 하지만, 강은 곧 다시 급류가 되고 출렁거림이 없는 심연의 서막을 여는 것이란다. 할아버지, 그런데 한 가지, 드리나도 이야기도 둘 다 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그 둘에게는 되돌아감이 없죠. 물은 거꾸로 거슬러 흐르지 않고, 다른 강바닥을 선택하지 않아요. 지금 아무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러니까 이제, 흘러가고 흩어진 파편들을 흘러가고 흩어진 채로 애도하고 기리는 것 외에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그런 애도는 어쩌자고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
-그 아름다움은, 뜬금없지만 이런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포탄이 터지고, 놀라 웅크린 아이의 등에 유리창 파편들이 무수하게 박힌다. 아이는 놀랐기 때문에, 아이이기 때문에 등에서 흐르는 피를 알지 못한다. 등에 박힌 유리 파편만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답게, 그러니까 보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