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폭력, 그리고 가해자의 심리에 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다.

2차대전 당시 학살과 폭력에 가담했던 대부분의 일본군 가해자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서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이는 그 명령 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천황이 면책됨으로써 전 국민이 책임을 회피하게 되었다고 본다. 반면에 저자는 그 개개인의 윤리적 불감증을 하나의 증상으로 간주하고 그 경험을, 기억을, 감정을 분석해나간다. 그리고 치료해나간다.

얼마 안 가 목숨이 끊어질 할아버지에 대해 집요하게 죄의식을 추궁하는 저자의 태도는 때로는 잔인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가해자의 폭력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폭력의 가해자가 폭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폭력을 추체험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죄의식은 스스로의 공격성을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공격하는 것에 의해 생긴다. 그러므로 지나친 죄의식은 우리들을 자살이나 정신장애로 몰아갈 위험성이 있다."(216쪽) 즉, 가해자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은 방어의식이다.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때, 피해자의 목을 베었을 때, 그의 눈빛을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 비단 일본만이 그런 감정과 능력을 억압해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아가, 비단 미국만이 그런 감정과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이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폭력에 대한 자기반성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무엇보다, 폭력, 그리고 가해자의 심리 일반에 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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