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
우샤오러 지음, 정세경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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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38분 뒤. 백 년 역사의 명문 치화여고에서 한 학생이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담임 교사 우이광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학생이 우울증을 앓던 종량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범했던 쑤밍쉬안이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한 소녀의 죽음으로 문을 열지만, 단순히 명문고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진상을 쫓는 추리 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속에서 상처받은 채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모두를 향한 서늘하고도 슬픈 진혼곡에 가깝다.


우이광은 사건을 수습하고 해명해야 한다는 끔찍한 압박에 시달리던 중, 교무실 책상에서 섬뜩한 쪽지를 발견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쑤밍쉬안이 있었던 밴드부에 가서 물어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날카롭게 그녀를 찌르는 문장이 뒤따른다. "당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선생인지 알아?"


죽음의 원인과 맥락을 추적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 소설은 이내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고 싶은 우이광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독자를 이끈다. 겉으로 보기에 우이광의 삶은 흠잡을 데가 없다. 명문 여고에서 교사로 일하고 어머니가 골라준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정작 그녀 자신의 선택은 없었다.


성적으로만 딸을 평가하고 친구 관계마저 무너뜨리던 어머니와 그 곁에서 침묵하던 아버지. 열일곱 살의 우이광은 결국 유서를 썼지만 가까스로 그 결심을 접었다. 그렇게 봉인해 둔 과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다름 아닌 제자의 죽음이었다. 진실을 좇을수록 드러나는 것은 쑤밍쉬안의 비밀만이 아니라 우이광 자신의 오래된 상처다.


<그 소녀>에서 아이를 무너뜨리는 폭력은 언제나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기대, "너를 위해서"라는 부모의 말, 성적을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시선처럼 너무나 익숙해서 폭력으로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것들이 서서히 아이를 몰아붙인다. 특히 부모는 사랑과 보호라는 명분으로 자녀의 삶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 소설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통제가 정작 사랑받아야 할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끈질기게 보여준다.


우이광이 친구의 가족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 역시 씁쓸하다. 어떤 아이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부모의 포옹과 위로가 다른 아이에게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된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완벽한 미래가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환영받고 있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우이광은 진실을 파헤치는 정의로운 구원자도, 철저히 무능한 방관자도 아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열일곱 살에 머물러 있는 불완전한 인물이다. 어머니의 숨 막히는 통제와 성적 지상주의에 짓눌린 십 대를 보냈고, 열일곱 살에는 유서를 쓰며 삶을 끝내려 했던 상처받은 생존자이기도 하다.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른이 되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여전히 열일곱 살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남편의 외도와 제자의 죽음을 겪으며 우이광은 비로소 애써 외면해 온 과거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쑤밍쉬안의 모습과 자신의 열일곱 살이 겹쳐진 "그 소녀"를 발견한다.


이 소설의 제목 <그 소녀>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끝까지 통과해냈다고 믿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 어른이 되었어도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모두가 "그 소녀"일 수 있다. 우이광이 "나는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소녀>는 타이완의 교육 현실을 다루지만 한국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성적과 입시, 부모의 기대,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교육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지만, 결국 이 소설이 바라보는 방향은 죽음보다 삶에 가깝다.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일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 소녀>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멈춰 있던 한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을 향해 걸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살아남았다는 것과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버텨냈다는 이유로 이미 그 시간을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몸은 그 시간을 빠져나왔어도 마음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소녀>가 읽고 난 뒤 오래 남기는 것은 비극 자체보다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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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
우샤오러 지음, 정세경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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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출판사 인스타에서 출간 소식 보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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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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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을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읽는 내내 오래전 지나온 계절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때는 너무도 선명해서 절대 잊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과 장소,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희미해진다. 한때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기억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순간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서른일곱 살이 된 와타나베가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래가 흐르는 순간, 그는 스무 살 무렵의 기억과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와타나베에게는 기즈키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고등학교 시절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와타나베와 기즈키, 그리고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는 늘 함께 어울렸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던 어느 날, 기즈키는 아무런 예고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와타나베는 고향을 떠나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지만 기즈키의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도쿄에서 우연히 나오코와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지만, 그 관계는 평범한 사랑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날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고, 이후 나오코는 갑자기 와타나베의 곁을 떠난다.




몇 달 뒤 도착한 편지를 통해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교토의 산속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나오코를 찾아간다. 아름답고 고요한 자연 속에서 나오코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만, 기즈키의 죽음과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와타나베는 그런 나오코를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던 중 와타나베는 대학에서 나오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도리를 만난다. 봄날의 들판을 뒹구는 새끼 곰처럼 생동감 넘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도리는 와타나베의 고독한 일상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나오코가 상실과 죽음의 세계에 가까이 서 있다면, 미도리는 지금 살아 있는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삶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점차 미도리에게 끌리기 시작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며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이 뒤엉킨 스무 살의 시간을 통과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미도리를 향해 커지는 감정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그러는 동안 나오코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결국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기즈키에 이어 나오코마저 잃은 와타나베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듯 홀로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를 걷고 낯선 곳을 떠돌며 나오코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뒤 와타나베가 깨닫는 것은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연이어 잃으며 그는 이 묵직한 진실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배워나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죽음을 조금씩 품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어떤 진리나 강인함만으로 온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결국 그 슬픔을 끝까지 겪어내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며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소설의 시선은 놀랄 만큼 담담하다. 상실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슬픔과 짙은 여운이 남는다.




<노르웨이의 숲>은 청춘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기억과 죽음, 고독과 성장에 관한 소설이다. 이제 막 뜨거운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미 그 시절을 멀리 보내고 가끔 뒤돌아보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래전 잊고 지냈던 누군가와 그 시절의 나 자신이 문득 떠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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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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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는 평균 연령이 일흔여덟 살인 산골 수평마을에 서울에서 온 성진과 혜진이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이름 끝의 "진"을 따서 마을 사람들에게 "찌니들"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그저 도시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었지만,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호기심 어린 시선은 경계와 수군거림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성진과 혜진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정체성으로 먼저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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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찌니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들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급기야 마을에서 내쫓으려 한다. 세상의 날 선 시선을 피해 이곳까지 흘러온 두 사람은 결국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그들의 등장은 보수적인 농촌 공동체에 하나의 경보처럼 울려 퍼지고, 그렇게 평온하던 마을에 "찌니주의보"가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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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갈등을 단순한 대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찌니들을 쫓아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고 수군거리면서도, 정작 두 사람의 대문 문고리에는 시래깃국과 가지나물을 슬며시 걸어둔다. 낯 뜨거운 질문으로 사람을 질리게 하다가도 돌아서서는 갓 부친 호박전을 손에 쥐여주는 할매들의 모습은 모순적이면서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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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베트남에서 시집와 20년 동안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주 여성 "쑤언"의 존재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갸들이 사램을 죽였어, 도둑질을 혔어?"라며 거침없이 찌니들의 편에 서는 쑤언은 누구보다 낯선 존재로 살아가는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촌로들의 편견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그녀의 말은 더욱 통쾌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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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먹고, 일을 돕고, 다투고, 다시 얼굴을 마주한다. 그렇게 일상을 거듭하는 동안 "낯선 사람"은 "아는 사람"이 되고, 어느새 "우리 동네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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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부모와 자식도, 이웃과 동료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수평마을 사람들 역시 찌니들의 성적 지향을 온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웃"이기에 위기의 순간 손을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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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찌니"라는 이름은 두 사람을 낯선 존재로 구분하고 밀어내는 말이었지만 밥을 나누고 부대끼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 이름은 점차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관계의 이름으로 변해간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이 달라도, 밥 한 끼를 나누고 위기의 순간 손을 내밀 수 있다. 그것이 작가가 그려낸 공동체의 모습이자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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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없다. 모두 조금씩 이상하고 이기적이며,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를 품고 살아간다. 그렇게 싸우고 흉보고 밥을 나눠 먹는 동안 어느새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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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밥 한 끼를 건네고, 곤경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함께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찌니주의보>는 결국 이해보다 먼저 다가오는 마음과,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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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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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풀어라." "소통이 부족하다." 일상에서 흔히 듣고 내뱉는 말이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 진이 빠져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충분히 설명하면 언젠가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대화에 실패하면 먼저 자신의 말하는 방식을 되돌아본다. 내가 표현을 잘못했나,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했나,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나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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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이 지긋지긋한 자책의 굴레를 끊어낸다. 저자가 내놓은 답은 명쾌하다. "우리는 애초에 대화할 수 없다."





책은 소통의 불가능성이 개인의 무능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라고 진단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82억 개의 고유한 몸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젠더, 계급, 나이 등에 따라 각자가 놓인 사회적 위치가 다르고, 그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위계가 작동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서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완벽하게 공감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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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간절히 소통을 원하는가." 누구나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고통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쪽은 대개 약자다. 가부장제 사회의 기득권 남성이나 인종차별 사회의 백인은 소통을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사회의 규칙과 주류 언어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약자는 권력자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번역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이처럼 소통의 부담이 한쪽에 치우친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소통은 선(善)"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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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이 팍팍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책이 제안하는 것은 더 뛰어난 대화 기술이 아니다. 침묵하거나 대답하지 않을 권리, 완벽한 합의 대신 가능한 중간 지점을 찾는 태도, 상대를 끝까지 설득하지 않을 선택, 필요하다면 대화를 끝낼 권리다. 모두와 반드시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누구와 얼마나 이야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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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생각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표현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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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처럼 완벽한 이해와 공감이 가능하다는 현대 사회의 오랜 환상을 과감하게 깨뜨린다. 소통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오히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설득하느라 자신을 소진하는 대신, 자신과 자신의 언어를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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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견디는 일이다. 대화의 목적 역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무조건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데 있지 않다. 서로 엇갈리는 대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벼려 "나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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