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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 ㅣ YA! 26
배예람 지음 / 이지북 / 2024년 9월
평점 :
“증오와 집착 속에서 드러나는 왜곡된 우정의 민낯”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배예람 작가가 그려낸 묵직한 성장 서사이자, 관계의 역설을 짚어낸 비극적인 우화이다.
이 작품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을 던전으로 변모시키며, 독자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초대한다.
주인공 나희와 이경이 치러야 할 ‘제0교시 살의 영역’시험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심리전이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각 층의 괴물들은 그저 길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두 인물이 품고 있는 고통과 약함이 실체화된 존재다.
예로 눈이 없는 ‘목이 긴 여자’는 나희의 강박과 두려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좇다가 정작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데 실패한 나희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이경의 앞을 가로막는 괴물들 또한 겉모습에 집착하며 자신을 파괴해 온 그의 비참함과 두려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괴물들을 통해 두 인물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를 하나씩 꺼내 보이며, 독자에게 그 아픔을 직접 마주하게 한다.
나희와 이경의 관계를 날카롭고 불안정한 줄다리기와도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역설 속에서, 둘은 서로의 가시를 품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나희는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만큼 그 관계가 부서지기를 바랐고, 이경은 외면당할까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은근히 갈망했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는 결국 살의라는 이름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들의 우정은 집착과 증오가 교차하는 비틀린 연대였다.
청소년기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대담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관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상처지만, 그것을 ‘괴물’이라는 존재로 표현해 마치 동화 속의 어둠을 마주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그 어둠의 끝에는 비로소 나희와 이경이 억눌렀던 진실이 서서리 드러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겨누는 칼날 끝에서야 자신을 직시하고, 그동안 가려져 있던 진심을 바라보게 된다.
살인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단순히 잔혹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춘의 그늘을 직시하며 그 안에 숨져진 슬픔과 갈망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소설로 폭력과 상처를 넘어 성장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도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내면의 괴물을 마주할 용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