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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평점 :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작 가 어슐러 르 귄
출판사 황금가지
내 인생에서 사춘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얌전히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가끔 버스 앞자리에 앉아 ‘지금 여기 앉아있는 나는 정말 ’나‘일까? 나(내면)는 왜 그 친구(단짝친구)가 아닌 걸까?’하는 생각만 가득한 아이였다.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을까?
자연스레 SF와 판타지의 소설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SF 소설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판타지 소설은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장편에 약한 나. <토지> 완독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의 숙제가 되었다.
그런 나인데, 10대의 나는 장편에 속하는 두 작가의 책을 다 읽었다. 그때의 나, 40대의 내가 칭찬해 마지않는다. ^^
<은하영웅전설>에서 교과서에서 접한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가에 대해,
<어스시의 마법사>에서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슬프지만 10대에서 40대 초반으로 훌쩍 타임 워프한 기분이다)
작가의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인간적인 삶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만나게 되었다.
좋아하는 색 : 초록
좋아하는 : 고양이 (고양이의 세계로 날 입문하게 해 준 친구의 고양이가 연상된다)
좋아하는 두가지가 담긴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어슐러 르 귄도 고양이 집사님이었구나.
지금은 고양이를 기르지 않지만, 고양이도 고양이 집사님도 좋아하는 나여서 반가웠다.
작가 사노 요코가 암에 걸린 자신의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 구절이 생각났다. (책 <요코 씨의 말> 중에서)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뮤즈, 고양이.
어슐러 르 귄에게 그녀의 애묘 파드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보다 궁금했다.
판타지 작가, SF 작가가 아닌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았던 한 사람인 어슐러 르 귄.
소설이 아닌 에세이의 전반은 여든이라는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고독, 초월(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사유하는 생애 전반의 ‘살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수업과정에서의 영혼이 있거나 없는 어린이의 팬레터를 받는 작가. 하루하루 삐걱대는 몸을 가진 노인, 정치에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생각을 멋지게 펼치는 사회 구성원, 페미니즘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비건을 넘어 오건을 꿈꾸는 지구인 등 다양한 얼굴의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 또는 특정 작가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선물 같은 메시지도 있었다..
그림이든 소설이든 항상 그런 것이 아니지만 “당신이 읽고 싶은 바, 당신이 찾고픈 방향대로 읽어도 좋아요” 하고 작가의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내게 의미를 물으려는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그러지 말길 바란다.
다른 독자들, 비평가들, 블로거들 그리고 학자들의 서평도 읽어보시라.
모두들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다른 독자들에게 유용하면서도 정당하고,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글을 쓴다. 그것이 독자들의 몫이며 어떤 이들은 놀라우리만치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낸다.
그건 내가 서평단으로서 하는 일이며,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p69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삶에 대해, 삶 너머의 세계에 대해 미숙하지만 의문을 가졌던 10대,
그리고 세월에 흘러 어느덧 40대 초입에 진입한 궁금함 보다는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거나 체념했던 ‘나’.
세월의 흐름 속에 작가와 공유하고, 함께 알아가는 일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시선으로 나를 깨우치기도 했다.
특히 역사에 관해, 교육에 관해, 창의성에 관해, 어린이와 어른에 관한 구절이 그랬다.
『나는 아이들이 ‘엄청난 과제를 부여받은 미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완수해야할 과제가 잇다. 바로 가능성의 실현이다. 성장이다. 아이들 댑분은 이 과제를 이루고 싶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걸 완수하기 위해 누구나 어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도움을 우리는 ‘가르침’이라고 부른다.』 p198
『교사들은 흔히 학생들에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말하고 질문을 하라고 시킨다.
좋아하는 부분은 그렇다 치자. 아이들은 항상 뭔가 좋아하는 척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질문을 하라는 것은 학생이 정말로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의미 없는 일이다.』 p73
『교육은 인간으로서의 내 삶에 연속성이라는 감각을 부여했고 사유는 나의 존재가 ‘지금’(지난 몇 년간으로 치자면 ‘우리들’)과 ‘그 때’(역사적으로 보면 ‘그들’)로 분리되지 않도록 해준다.
인류학적 관점이라는 한 가닥의 빛 덕분에 나는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어떤 시대에도 결코 삶이 단순하지 않다는 믿음을 잊지 않고 있다.』p182
『마침내 환경이 다 망가지고 고기와 다른 호화로운 음식들이 비닥나게 되면 그런 음식 없이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다. 대통령이 부탁할 필요조차 없겠지.
하지만 만약 물처럼 호사스럽지 않은 것들이 바닥나게 되면 어떨까? 우리가 덜 쓰고, 없이 견디고, 배급하고, 나눠 쓸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p186
『워스워드는 성숙의 가치를 부인하거나 어린이가 되려고 함으로써 그 아이를 이끌어내라고 감성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자유로움과 지각력, 그리고 즐거움을 잃는다. 우리가 할 일은 성장이 어떤 단계에 마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모든 단계를 우리 안에 발현시켜 충실하게 인간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p196
무엇보다 짧지만 빛나는 파드 연대기.
고양이에게 간택 받은 집사 르 귄, 그리고 그녀의 고양이 파드.
인간 의존적인 고양이 파드,
독립적인 인간이길 희망하나 의존적인 나.
『그래서 간밤에 나도 녀석이 그리울 테고
녀석도 내가 그리울 거라 생각했다.』 p233
그 구절을 읽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한사람
나의 소중한 친구.
그 친구와 같이 읽고 싶었다.
분명 이 책이 맘에 들거나 안 들 수도 있다.
내가 느낀 부분에 대해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와 같이 읽고 싶어졌다.
나의 고양이 파드와 같은 친구. (내 마음 너도 알까?)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계속 가까이 두고 싶다.
그 안에서 내 안에 필요한 것, 내게 부족한 것, 내가 원하는 것, 때론 날 화나게 하는 것들을 느끼며 배우고 싶다.
미약하나마 나의 글로 책의 내용을 나 나름대로 소화해서,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내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다.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더 나아진 나, 나아진 노년의 길로 걷고 싶다.
그녀의 책은 그런 나의 희망을 구체화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