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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평점 :
마치 한 편의 옛날이야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책 한 권에 수록된 이야기는 각각의 화자를 통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한 몸 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물묘사에서부터 흥미진진하다.
18-19
처음 보는 남자였다. 갸름하게 잘 빠진 턱, 왼쪽 눈썹 끝에 은빛 이슬처럼 맺혀 있는 금속 피어싱, 왼쪽 귓불과 연골에 알알이 박힌 희고 푸른 옥들, 그믐달 같은 입매.
묘사만 가지고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한 외양과 함께 잘생긴 남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존재감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세상에 묻혀 살아간다고 표현할 수 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그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다.
수많은 사람의 사연 속에 나에게 와 닿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소제목은 ‘아침의 코와 세 개의 눈으로’이다. 유년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년이 있다. 그는 붉은 녀석의 힘으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열 명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에 아홉은 이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것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259-260
“넌 열매를 얻었어. 하지만 경솔한 선택을 했지. 그래서 거기 그렇게 누워 있게 된 거야. 다 잊어버려. 그리워해도 돌아오지 않는 먼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넌 사실 그 열매를 가지고 너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그 무덤 같은 방에서 나왔어야 했어. 너를 서서히 말려 죽이고 있던 그 가책을 극복하고 살아내야 했다고. 네가 네 남동생의 몫까지 엄마 곁에서 잘 살아내는 것이 열매가 원래 이뤄주고자 했던 소원이었어. 기다리면 넌 결국 네 엄마가 너로 인해 웃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었는데.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지?
“그 남자처럼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일그러진 주름으로 가득한, 비겁하고 우울하고 비밀이 가득한 눈을 가진 어른으로 늙고 싶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그 붉은 녀석이 길을 잃어도 다른 사람을 쫓아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거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사실이 아니야. 그건 네가 만든 허깨비지.”
다른 사람을 따라가서 만난 것은 허깨비에 불가하다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소년 탓이라고 한다. 소년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거기서 만난 남자가 마치 자기를 보는 것만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허깨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정보를 통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만약 도깨비가 진짜로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에게 무엇을 절실하게 바라게 될까. 그리고 그것의 대가는 무엇으로 치러야 할까. 이런 신비하고 수수께끼 가득한 내용이 좋다. 끝부분에서 이해가 안 가서 조금 찜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에서 객관적인 결말을 원한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다. 그래도 무척 마음에 든다! 읽으면 푹 빠져들 것이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