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전작인 <위저드 베이커리>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 베이커리의 점장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가게에서 사간 물건이 과한 결과를 낳아서 한 학생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따지러 온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구매 이후의 일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점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어려움이 생겨도 스스로 헤쳐 나가려 하지 않고 마법의 힘을 빌릴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그것은 숨겨진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과>는 ‘마법’과 같은 동심이 소재가 아니다. 오히려 늙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방역업자인 노부인이 주인공이다. 방역이라고 해서 홀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전문업자인 것이다. 소위 말하는 킬러라고 하면 거창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이 업계의 대모인 ‘조각’은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
그녀는 일을 한 대가를 받는 동시에 고독과도 싸운다.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연히 주운 늙은 개만이 그녀의 곁을 지킨다. 문에 쪽문을 하나 만들어주면서 그녀는 개에게 당부한다.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는 거다.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처럼 타는 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로 구분되기 전에.”(137) 라는 이 말은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면 직면하게 될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조각’ 외에 주목할 만한 인물은 두 명이 있다. 하나는 장 박사 대신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녀를 구해주고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강 박사이다. 조각이 직접 그의 가족과 딸을 찾아가게 만든 사람이다. 진지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작은 웃음을 선사한 부분이 바로 조각과 강 박사의 대화이다.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처방 나가는 현탁액하고 진통제는 귀찮다고 동시 복용 하시면 안 됩니다.”(207)라는 다소 엉뚱하고 현실적인 답을 한다. 이건 사람이 좋은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말로는 알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투우’이다. 과거의 인연에 얽힌 채로 자주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이다. ‘조각’과 ‘투우’ 두 사람의 관계는 읽으면서 직접 보시길 바란다.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라는 문장과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라는 문장이 책을 덮은 후에도 남는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또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