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본문 타이포그래피와 기능적인 본문용 폰트는 시간을 두고 읽어 봐야 그 진가를 안다. 수백 쪽에 달하는 긴 본문에 쓰이는 글자는 마라톤을 할 때 신는 러닝화와 같아서, 인체의 피로를 덜어 주어야 디자인이 잘된 것이다. 신고 오래 뛰어봐야 좋은 줄 알지, 겉만 대강 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있다. 그러면서 스타일도 좋고 정서적으로도 친화적이어야 좋은 본문용 폰트다.
미묘한 차이를 언어화하는 것은 전문가이지만, 어떤 글자체가 더 좋고 나쁜지는 누구나 어렴풋이 알아본다. 심지어 의식이 감지하지 못해도, 신체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전문가란 이렇게 사용자 본인도 모르던 피로를 살피고 치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전체 사회의 감각을 건강하게 회복시킨다.
유사 이래 유럽인에게 대서양은 무지의 공간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지는 공포를, 공포는 무지를 강화시켜왔다. 엔히크가 사그레스에서 한 첫 번째 작업은 이 무지를 깨트리는 것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역사의 숙명.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그 어떤 강력한 제국도, 그 어떤 부유한 왕국도, 그 어떤 활기찬 사회도, 그 어떤 위대한 영웅도 피할 수 없었다. 역사의 숙명을 뛰어넘는 우주의 법칙 아닐까?
"사람들은 가끔씩 이렇게 말해요. 음악계에서 성공하는 일은 고속도로 갓길에서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서서 누군가 차를 태워주길 마냥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요. 제가 직접 접해본 음악계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엄지손가락만 내밀고 가만히 서 있었던 적이 없어요. 걸어갔어요. 우리 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다들 얼마간은 걸었어요. 그러다 마침내 차를 얻어 탔지만 그런 도움을 받은 이유는 누군가 걷고 있는 우리를 보았고,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엄지손가락만 내밀고 우두커니 서서 태워주길 기다리는 자세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요." p.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