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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 콜럼버스 이후 정복과 저항의 아메리카 원주민 500년사
로널드 라이트 지음, 안병국 옮김 / 이론과실천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아이러니다. 바라보는 시각이나 입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으니까. 세계 곳곳에 그런 평가로 얼룩진 곳이 있다. 승자의 논리로, 패자의 역사는 그저 휴지조각처럼 사라지거나 진흙 속으로 내팽개쳐진다. 아마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과거 수 만년 동안 그 땅을 지키고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는 송두리째 사라지고 유럽에서 건너간 백인들의 역사만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동화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귀중히 여기는 사회체제를 이룩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는 서구의 이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받고 말살 당하기에 이른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인류의 찬란한 문화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파괴되어 사라져야 한다는 현실이 말이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되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서는 승자의 입장에서 유럽인의 눈으로 바라본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다뤘는데, 여기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눈으로 침략자인 유럽인들을 기술했다는 것이 신선하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찾아온 후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오랫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으며,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읽고 있으면 유럽인들의 덜 떨어진 사고방식과 탐욕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인간적인 아니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황금에 눈이 멀어 아메리카 대륙을 도륙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침략자인 유럽 본국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해간다.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역사의 부당함은 아직까지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행되고 있다.
나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일깨워준 이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상이나 의식수준 등을 단편적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원주민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경제, 정치시스템은 그 시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발전했다. 이 책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로 표현을 했는데.. 20세기에 나타난 공산주의보다 더 진보하고 현실적으로 병폐가 적은 이상적인 사회구조를 이뤘다. 그들도 부자와 가난한 자가 존재했으며 그들의 체제에서는 부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재산을 나눠줄 수 있었다. 그들의 관념에서는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하는 자야말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 역시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면면히 살펴야만 했다. 그들을 보살피고 먹여 살려야지만 왕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물론 이 책의 새로운 시도는 흥미롭다. 아쉬운 점은 책 속에 소개되는 내용들을 그저 글로만 설명했다는 것이다. 약간의 사진이나 그림들이 간간히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일군 문화나 자연환경 등을 설명할 때 관련 사진이나 자료를 추가했다면 내용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뭐 글로만 읽다 보니까 나름대로 혼자 상상은 많이 하게 되는 장점은 있지만 말이다. 아직도 아메리카에는 민족적 분열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지금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골이 파였기에 쉽지만은 않다. 그들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이 책으로 아메리카 역사에 관해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