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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 집념과 포용의 정치로 실현한 애민과 훈민, 세종을 찾아서 ㅣ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4월
평점 :
세종대왕의 명성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세종대왕 집권기간에 수많은 발명품과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학, 법, 음악, 군사, 역사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런 세종대왕을 우리는 친근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의 인품이나 성격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곤란해진다. 겉으로 드러난 세종의 업적은 달달 외워 알지만 그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세종의 정치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일부 헤아려볼 수 있다.
세종대왕을 말할 때, 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빼놓을 수 없다. 외형적으로도 호방한 성격의 태종과 은근과 끊기의 세종은 정치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는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사뭇 처신과 방법은 달랐어도 태종과 세종 모두 왕권강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태종은 아들 세종이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는 밑바탕을 일구기 위해 그의 집권 기간을 피의 향연으로 물들였다. 이는 세종에게 정치적으로 방해가 될 만한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서 세종 시대의 문화, 정치적으로 활짝 피게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태종은 조선사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대변되고 있다.
세종은 그런 아버지 태종의 뜻을 거스르거나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의 치세 동안 아버지 태종에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장인 심온을 복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태종의 뜻을 받드는 세종의 결단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세종 집권 초기에는 상왕인 태종의 그늘에 가려 뚜렷한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태종이 모든 전권을 휘두르며 세종은 견습왕으로서 역할만 해야 했다. 이 시기에 세종은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에 매진하게 된다. 호학하는 성격의 세종은 현실정치에 학문적 이론을 가미하여 당대의 어떠한 관료나 학자보다도 출중한 학문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신하들과 파워게임에서 앞서나가게 된다.
세종의 외모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육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멀리해서 체형이 비만형으로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화를 발산하지 않고 참는 성격이라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세종의 몸이 더욱 쇠하게 된다. 여기에 대군이나 공주들이 일찍이 세상을 떠나 세종 말년에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임금이 불교에 심취하여 신하들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한 세종도 개인적인 고뇌와 자식에 대한 부성애를 느끼는 보통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 업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도움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태종이 정치적 여건을 마련해 주었고 아들 문종에게 정사를 돌보도록 함으로써 세종대왕의 대표적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많은 대군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여하게 하였다. 이는 이 책의 저자도 지적했듯이 훗날 불화의 싹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매력에 충분히 빠져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