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전쟁 - 박혜란의 블랙 콩트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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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듦에 대하여'를 비롯 박혜란님의 이전 저술들을 챙겨 읽고 있다.

소설이다. 수필일 줄 알았는데...

 

한동안, 아니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분을 사로잡고 있는 테마는 제대로 나이들기, 나이든 나와 함께 잘 살기인 듯하다.

이 책은 나이 들어 집으로 돌아온 남자들과 장성한 자녀, 나이든 여성인 나 자신이 잘 살아가기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새 어째 지내누?' 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들이 토로하는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행복의 얼굴은 한가지이되 불행의 얼굴은 제각각이라 했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노년에도 다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 고만고만하다.

적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삶이 팍팍해지고 남편과도 자식과도 사이가 삐그덕 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부족해서,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어떤 사람은 사회에서 떨어져나와서 자신을 쓸모없다 여기는 남편 때문에, 자기 체면만 생각하다 배우자를 옥죄어서, 자식을 너무 위하다가 노년의 삶이 퍽퍽해진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부부의 대화와 가장 비슷한 내용은 역시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소파전쟁'이다.

TV 좀 같이 볼라치면 어느 채널에도 만족을 못하고 계속 이채널 저채널 찾아다니는 신랑.

연예인 나오고 토크쇼나 가요 프로그램, 들어본 풍월이 있는 드라마가 나오면 쉽게 만족하며 보는 나.

'채널 그만 좀 돌려라', '그런 것 좀 보지 마라'로 이어지는 핑퐁이 어찌나 비슷하신지.

'이 옷 어때?' 하고 물어서 '괜찮은 것 같은데' 혹은 '그건 아니다'라고 대답해도 결국 자기 생각대로 하는 신랑(혹은 나)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는 나(혹은 신랑)

 

비슷한 투닥거림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지는 건 우리 부부가 아직 무탈하게 잘 맞춰가며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ㅎㅎ

그러니까 그 사람이 좋으니까 이런 저런 차이점이 있어도 다 넘어가지지 사람이 싫으면 그런 의견대립이 못견디게 싫지 않을까.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한다, 정도?ㅋㅋ

 

저자가 보너스로 알려주는 '사이좋게 해로하기' 팁

(데면데면한 부부가 이혼않고 살기위한 팁 같이 보이기도 한다, 다정다감 알콩달콩 모드인 내가 좋아보이는 건 볼드)

 

돈을 많이 모아라

피차 관심을 끊어라(데면데면 모드)

남자여, 집안일을 배워라

손주를 키우면 저절로 화합한다(안그래도 화합 잘 하는 중)

늙으면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살자(데면데면 모드)

일부일처제의 영원한 숙제, 풀려고 하지 말자(남편(아내가)이 몹쓸놈(ㄴ)인 케이스

서로 손님으로 대접하라

측은지심으로 살자(작은 아버지왈, 부부가 서로 어이구, 저거 내가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살겠나 싶어야 오래 해로한다나...)

손잡고 자원봉사 나가자(것도 좋겠네)

부부는 따로 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은 피하지 말고 풀어나가라(원캉 잘하고 있음)

존재만으로 감사하라(이건 잘 안됨, 도움이 돼야지 도움이 ㅋㅋ)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서로 존중하라

모성만이 구원이다(남편마저 모성으로 돌보고 싶진 않음, 우리 그냥 사랑하면 안되겠니... 각자 자기 앞가림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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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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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7권째]과학 콘서트 책 이야기

2011/02/18 11:57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swordni/10103400252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진심의 탐닉에서 이 책의 저자 정재승님을 알게 되어서 읽어보기로.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을 알아듣기 좋게 설명한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 기준에 이런 저자들로는 박경철님(먼 의사샘이 세계 경제에 역사에 그렇게 해박하신지...), 최재천님(몰랐던 동물과 곤충의 습성을 통해 인간사를 짚어주는 칼럼을 읽으면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좁고 얕은지 절실히 느껴진다.) 등이 있다.

재기발랄한 젊은 과학자의 눈으로 풀어주는 세상 이야기는 듣고보면 너무 당연한데 이때까지는 달리 생각할 염조차 내보지 않은 일들이 많다.
내가 워낙 헛똑똑 캐릭터다 보니 그럴 지도 모른다만...

자자, 두 가지만 짚어보자. 여기에 의문 없이 그러려니 하셨다면 당신도 내 과인 거임.

1.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 유일하게 달에서 보이는 것이 만리장성이다.
2. 인간의 뇌는 너무나 능력이 무궁무진하여 아인슈타인 조차도 자기 능력의 10%를 쓸까 말까였다.

답은 요약하면 이렇다. 물론 책에는 더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공.
1. 달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의 구조물은 없다. 그것이 대산맥이라 할지라도 식별할 수 없다.
2. 이 말이 사실이 되려면 누군가 아인슈타인의 뇌를 100% 발휘했을 때 이룰 수 있는 성과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능력을 힘껏 발휘하고 갔다.

이 두 가지를 읽고보니 그동안 육아서나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말 쓰신 분들이 막 떠오르면서 화가 나려고 그러는 거임.
확인도 안해보고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라고 마구 갖다 쓰고 있어... 책을 내려거든 좀 책임감 있게 글을 쓰고 취재를 하시라는...
한 사람이 그렇게 얘기한 걸 다른 누군가가 또 검증없이 갖다 쓰면서 사실처럼 자리 잡은 '소위' 상식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검증없이 사실인양 통용되고 있는 단상, 사고방식에 대해 논리적으로 헛점을 짚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의심해 들어가면 결국 생각하고 있는 자신만이 남는다는 칸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제야 도착한 칼과나님. 

"의미없는 소음, 랜덤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간단한 비선형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카오스 현상이 아닌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은 많은 것에 대한 답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은 왜 내 차선만 안 움직이는 것 같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냥 기분상 그런거야"가 아니라 이런 저런 가정을 통해 '니가 다른 줄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온 구간에 대해서는 짧게 느껴지지만 니 줄이 더 느린 구간에서는 더 오래 머무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야' 라고 답하는 식이다.

물리학자가 제안하는 교통체증을 줄이는 운전방법은 최선을 다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경에서 나비가 펄럭이면 뉴욕에서 폭풍이 일어난다는 것처럼 아이들이랑 장난치면서 운전하느라 속도를 줄였다 밟았다하면 이 영향은 뒤에 오는 차들이 차간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가속 엑셀을 밟는 식으로 영향을 주는데 위에서 보면 그것이 물결처럼 뒤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파동효과라 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이상 쌓이면 극심한 정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물론! 1천만명 이상 모여사는 서울에서는 이러니 저러니해도 체증을 피하기 어렵다!는 건 인정하시는 센스. 

그 외에도 물리학자들은 뇌파를 연구하는 의학자들과 합동 연구를 하고, 결코 이성적,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주식 동향을 예측하기 위해서 증권가에 영입되고 교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한 연구에도 투입된다.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만에 지구를 돌기 위해서는 음속의 4000배 이상으로 돌아야한다는 계산을 하는 이 젊은 물리학자(나보다 나이가 많으시지만 이 책을 쓴 시점에는!)는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에 나온 저자의 남편을 떠올리게 한다. 물리학자인 그는 전기장판을 잠시 데운 후 끄고 자는 쪽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적은지 온수팩을 안고 잘 온수를 데우는데 드는 에너지가 적은지를 계산하는 그런 사람이다.   

책을 덮으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결국은 물리학자가 지구를 구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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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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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나 매혹적인 시리~즈. 시공사 세계문학의 밤.

그 중에 최고인 것 같다. 이책의 표지. 흘끗 지나치다가도 다시 한번 눈길을 주게 되는...

1권2권 독일, 3권 영국, 4권 중국, 5권 일본 작품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얼핏 읽은 책 소개 혹은 서평에 신구세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라는 내용이 있었던 데다 표지 사진의 영향도 있고하여 주인공이 여성인줄 알았다.

핍박 받는 며느리 이야기가 원없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은 34세 젊은 남자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밀고 올라가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34세라는 나이의 체감연령대는 지금보다 높았겠지만.

주인공 왕원쉬안은 말 그대로 나약한 지식인이다. 머리에 먹물이 들어 이상은 높으나 그것을 세상에 펼칠 수 있는 배짱도 책모도 오지랖도 없다.

스스로도 자신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는 시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누군가는 그 혼란을 틈타 기존의 질서 속에서는 올라갈 수 없던 자리에 쉽게 올라가기도 하겠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혼란의 와중에 자신이 서 있던 발판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이다.

은행에 다니는 아내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생기있게 살아있는 존재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몇 살 연하의 직장상사가 연모하는 아름다움을 여전히 가진 여인. 그녀는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여자가 밖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냐, 왜 빨리 집에 들어와서 밥을 차리지 않냐, 너는 그냥 직장에서 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차려입고 화장하고 나가서 다른 남자들이나 만나겠지,가 시어머니된 자의 기본문구다. 자식이 사랑하고 제 자식의 아이를 낳고 14년이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너는 내 아들의 정부일 뿐이다.' 자기 자식의 어릴 적과 똑같다는 아들을 낳은 사람에게 '정부~ 저엉~부우우~' 그러면 그 손자는 뭐가 되는 거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정부로 만들어 놓고 당신은 본처라서 뿌듯하신가? 생각짧은 할망구.

이 답답하고 출구없는 삼인방의 그물망은 촘촘하게 서로를 얽어매어 들어간다. 병이 걸려 회사에서도 짤리게 생긴 '(심신이) 나약한' 남자.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아들의 사랑은 불행하게 만드는 어머니.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 어머니의 가시같은 말과 눈빛 때문에 살 수가 없는 아내. 누구 하나 이 사태에 책임을 질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만 완벽하게 악하지만도 않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암담한 이야기에 온전히 사로잡혀 이사람 저사람에게 나를 대입시켜본다.

마침내 아내는 전쟁이 오지 않는 지역의 은행 지사에 지사장으로 가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직장 상사의 제안에 응한다.

나쁜 년인가? 남편은 병들어 돈을 벌지 못한다. 집에 있으면 시어머니된 자가 목을 조여온다. 이대로 젊음과 생기를 잃고 그들과 함께 발을 묶여 밑바닥으로 침잠해야 하는가.

문학의 가치는 답을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기하는데 있는 것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은 문학적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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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의 10년 간 더 느긋하고 깊어진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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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을 읽느라 다시 이분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쉰이 되셨을 때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책을 내고 십년 후 이야기가 이 책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대단히 학술적인 업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에고치가 뽕잎을 먹고 내놓는 것이 비단이듯이 삶을 통해 겪은 일들을 참 성숙하게 혹은 재치있게 풀어내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내 기준에 그런 분들은 김선주 주간님(한겨레)과 조한혜정 교수님(연세대), 고 장영희 교수님(나 이분 이름이 생각 안나서 검색창에 '서강대 영문과 장'까지 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억이 나서 다행이지...), 박혜란님.

나도 나이를 먹는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면서 처음 십대가 이십대가 되고 그 앞에 3을 달면서 느끼는 소회가 자신에게는 남다르지만 그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그것이 제 일이 아니다. 그저 나이 먹은 사람의 넉두리일 뿐이다. 자기는 그 나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이다. 또 더 나이든 사람들도 '그래 기분 꿀꿀하겠지. 근데 나이 더 들어봐라, 그땐 차라리 젊었다는 걸 알게될 거다.'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누구나 겪지만 그렇기에 새로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쓴 책이라...

요즘 건방이 하늘을 찔러, 혹은 제 주제를 잘 파악해서, 신간서적보다는 아직 읽지못한 양서들을 읽자는 생각인지라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살짝 고민했으나 나이들어 간다는 것을 겪어가며 언뜻언뜻 스치듯 느껴온 생각들을 조곤조곤 모아놓은 이 책을 보면서 때로는 픽 웃기도 하고, 정말 그래 공감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숨가쁘게 살아간 여성 지식인의 여정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공감가는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귀퉁이를 하도 접어대서 책이 부풀어 올랐다.

책을, 내용만 읽지 일러스트 디자인 같은 것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 책 안에 들어있는 일러스트 아이콘들이 너무 귀여워서 표지를 샅샅이 뒤져 일러스트 디자이너의 이름을 찾았다. 대성하십시오~ 김진이씨!

 

 

 

 

 

 

 

 

 

 

 

 

 

 

 

 

 

 

처음엔 표지가 그닥 의미없이 보였는데 글을 읽고보니 저자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고교 동창생 쯤으로 보이는 여성들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그린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소녀처럼 모여앉아 서로의 가방과 새로운 옷에 대해 서로 걸쳐보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모습에서 '할머니, 아줌마'라는 말에 속박되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이 세대에 대한 경탄이 아마도 이 책을 내게 된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었다.

<발췌> 

겨우 10년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이 '그 연세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불과 10년 후에 다다를 나이를 마치 아득한 먼 훗날인 양 취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도단이다. 아마도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무심코 이런 말로 튀어나오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위의 사람을 아주 늙어 버린, 무능한 사람으로 밀어냄으로써 10년 아래의 자신은 젊은 사람 축에 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10년 아래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이라는 게 그렇다. 자신보다 10년 어린 사람과 자신은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반면, 자신보다 10년 위인 사람은 한 세대 위처럼 늙게 생각된다. '그 연세에'라는 말에 이처럼 거품을 물고 덤비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도 입 밖으로 토해 내지만 않았다 뿐이지, 나보다 열살은커녕 다섯 살만 많아도 마음 속으론 나하곤 다른 세대로 밀어낼 때가 많다. 물론 이미 오래 알고 지내 친숙해진 사람들은 제외하고. 반면 10년 이상 아래인 사람들과는 전혀 세대차를 못 느낄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착각이라니!

대학로에서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나왔는데 전철에 오르자마자 몇 명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섰을 때의 그 기분이라니! 몇 시간 동안 누렸던 젊음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릴 때의 그 낭패감을 젊은이들은 짐작도 못할 거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부모와 아이 모두의 현재를 잠식한다. 풍요롭게 자란 젊은 엄마들의 표정에서 나는 희망이 아니라 불안을 읽는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아무리 강조해 봤자 이미 시효가 지나 버린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누구한테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엄마들을 설득할 의욕을 접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줄기 미련은 남는다.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다보면 아이 키울 때처럼 행복한 시간은 또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시간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누리지 못한다니 정말 어리석은 짓 같다. 엄마가 행복해하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하게 자라는 법인데.
==> 이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뭐? 정신연령 60대?ㅋㅋ
 

비록 한때 실패했더라도 젊은이들에게는 마음만 다잡으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힘이 남아 있는 법이다. 막노동이나 풀빵 장사를 하면서도 끝내 아이들을 옆에서 떼어 놓지 않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주저 앉으려다가도 아이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악물고 재기를 다짐하는 게 부모의 자세다. 늙고 병든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떠맡기는 짓은 효, 불효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더 답답한 건 이런 할머니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형식에 얽매여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인색한 국가다....
부모를 잘 만났건 못 만났건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 치료를 받는 것은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 얼마나 못난 국가면 일흔, 여든 넘은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게 놔둔단 말인가. 직무 태만도 이쯤 되면 금메달감이다.

나도 모르는 새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던 어느 무렵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이 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인간은 왜 다른 동물들보다 이렇게 더디 자랄까 좀 답답했었는데 손주들을 보면서 생각이 영 달라진다. 바로 엊그제 낳은 것 같은 아이들이 금방 뒤집고 기어 다니더니 어느새 뛰어다니다. 백일인가 싶더니 이내 돌잔치를 하고, '엄마, 아빠' 밖에 못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제 의견을 마구 쏟아 낸다.
심지어는 할머니의 정체도 샅샅이 파악, 세 돌도 안 지난 아이가 어느 날 할머니 집 안을 둘러보면서 직격탄을 날린다.
"할머니, 할머니 집에는 왜 이렇게 지지가 많아요?"
와, 할머니가 되는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여기서 빵터짐. 

이래도 저래도 엇나가기 쉬운 고부 관계를 잘 끌어가기 위해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쪽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며느리도 물론 애써야겠지만 그보다 시어머니가 훨씬 더 애써야 한다. 며느리는 아직 시어머니가 되어 보지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신시어머니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아들한테 집사주고 그 집 열쇠 가지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분들 계시다며? 끄응...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 생긴대로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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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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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런 역사적 인물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내게는 종이 인형같이 납작했던 한 인물을 3D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면 되잖아!(맞나?)'했다는 왕 싸가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한 여인이 어떤 날실과 씨실 사이에서 그 길로 나아갔던가를 따라가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죽음에 이를 잘못은 아니었던 그녀의 성품은, 왕비라는 자리가 제공해주는, 밑빠진 독을 계속 채워주는 눈먼 돈과 결합되자 시너지를 일으켜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룻강아지 범 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강아지를 어미개가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 먹는 서열, 피해야 할 상대, 기를 죽여야 할 상대, 무조건 복종해야할 상대를 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걸 못한 하룻강아지는 범이 어떤 상대인지 파악을 못하는 거지. 한 석달은 어미개가 새끼를 끼고 키워야, 개다운 개념을 장착하게 되는데 그걸 못하고 그냥 데려다 놓으면 지가 사람인지 개인지 천지 분간을 못하게 된다는 썰도 있고. 

14살 쯤 된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혜로운 여제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바로 그 개념을 전수받지 못하고 놀기 좋아하는 철부지 상태에서 한 나라의 왕비로 바로 옮겨심어진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딸을 보냈어도 모정은 넘치는 노여제는 편지와 후견인을 통해 딸을 바로잡아 주려하지만... 고리타분해 보이는 후견인의 눈을 속이고 그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리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 간단한 일. 오히려 멀리서 그 충고에 따라 진중하게 사는 것이 십대인 그녀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벌거숭이 갓난쟁이로 나온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에 있든 간에 고만고만한 깜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팝의 황제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군중들의 애정없고 무서운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가. 하지만 내 일이 아닌 한 그러한 섭리에 대해서 군중은 또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가. 

요즘 방영중인 '마이 프린세스'라는 드라마에서, 갑자기 공주가 된 평범한 여대생에게 말 한마디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말라 하는 가정교사 P군과의 대화를 보며 문득 마리 앙투아네트가 떠올랐다. '질문에 함부로 대답하지 마라. 네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너에게 반감을 가질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거나 그런 말을 들을 귀가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기가 고려해야 할 파장의 영역은 아랑곳하지 않고 '순진'하게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을 가까이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겁도 없이 홀대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불만이 어디까지 쌓이는 줄도 모르고 재미만을 찾아 이리저리 떠다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을 위해 헌신할 제대로 된 세력 하나 키우지 못한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인다.

 또 한명의 배우 루이 16세는 자신의 결혼식 날에도 '아무 일도 없었음'이라고 간단히 기록하는 무신경과 중요한 순간에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품으로 왕권을 박탈당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주인공인 동시에 희생양으로 장식한다.

왕비가 사치와 향락을 일삼을 때는 그것을 제지하지 못하고 무조건 뒤를 봐주더니 혁명 세력들이 왕궁을 덥치기 위해 행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채 꼼짝없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지를 않나, 왕권을 빼앗겠다는 국민의회의 회의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 보호라는 미명아래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도 배가 고프다며 은식기에 가득 밥을 받아 먹지를 않나. 일반인이었다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이 소심한 인사는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가의 장손으로 태어났다는, 소위 삼신할미의 랜덤 때문에 못난 군주로 낙인찍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왕이라는 존재가 오히려 생소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깟 힘없는 상징, 살려나 두지 왜 그렇게 죽여야만 했나 생각하지만 그 상징이 가지는 명분 때문에 언제라도 혁명세력을 뒤엎을 구심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죽을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하나의 상징으로 죽어야 했다.

유럽 최고의 고귀한 가문 합스부르그 태생으로 누리고 싶은 온갖 것을, 아니 누리고 싶은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저 당연히 받아들여왔던 특권이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누렸을 때 그녀를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를 혁명의 기록과 함께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소시민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유명세와 특권이라는 것의 명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고, 인권에 관한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솔하고 사치밖에 몰라서 왕실을 파탄으로 몰고 간 요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담담한 역사의 기록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읽어보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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