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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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나 매혹적인 시리~즈. 시공사 세계문학의 밤.

그 중에 최고인 것 같다. 이책의 표지. 흘끗 지나치다가도 다시 한번 눈길을 주게 되는...

1권2권 독일, 3권 영국, 4권 중국, 5권 일본 작품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얼핏 읽은 책 소개 혹은 서평에 신구세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라는 내용이 있었던 데다 표지 사진의 영향도 있고하여 주인공이 여성인줄 알았다.

핍박 받는 며느리 이야기가 원없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은 34세 젊은 남자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밀고 올라가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34세라는 나이의 체감연령대는 지금보다 높았겠지만.

주인공 왕원쉬안은 말 그대로 나약한 지식인이다. 머리에 먹물이 들어 이상은 높으나 그것을 세상에 펼칠 수 있는 배짱도 책모도 오지랖도 없다.

스스로도 자신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는 시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누군가는 그 혼란을 틈타 기존의 질서 속에서는 올라갈 수 없던 자리에 쉽게 올라가기도 하겠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혼란의 와중에 자신이 서 있던 발판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이다.

은행에 다니는 아내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생기있게 살아있는 존재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몇 살 연하의 직장상사가 연모하는 아름다움을 여전히 가진 여인. 그녀는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여자가 밖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냐, 왜 빨리 집에 들어와서 밥을 차리지 않냐, 너는 그냥 직장에서 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차려입고 화장하고 나가서 다른 남자들이나 만나겠지,가 시어머니된 자의 기본문구다. 자식이 사랑하고 제 자식의 아이를 낳고 14년이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너는 내 아들의 정부일 뿐이다.' 자기 자식의 어릴 적과 똑같다는 아들을 낳은 사람에게 '정부~ 저엉~부우우~' 그러면 그 손자는 뭐가 되는 거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정부로 만들어 놓고 당신은 본처라서 뿌듯하신가? 생각짧은 할망구.

이 답답하고 출구없는 삼인방의 그물망은 촘촘하게 서로를 얽어매어 들어간다. 병이 걸려 회사에서도 짤리게 생긴 '(심신이) 나약한' 남자.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아들의 사랑은 불행하게 만드는 어머니.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 어머니의 가시같은 말과 눈빛 때문에 살 수가 없는 아내. 누구 하나 이 사태에 책임을 질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만 완벽하게 악하지만도 않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암담한 이야기에 온전히 사로잡혀 이사람 저사람에게 나를 대입시켜본다.

마침내 아내는 전쟁이 오지 않는 지역의 은행 지사에 지사장으로 가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직장 상사의 제안에 응한다.

나쁜 년인가? 남편은 병들어 돈을 벌지 못한다. 집에 있으면 시어머니된 자가 목을 조여온다. 이대로 젊음과 생기를 잃고 그들과 함께 발을 묶여 밑바닥으로 침잠해야 하는가.

문학의 가치는 답을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기하는데 있는 것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은 문학적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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