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의 10년 간 더 느긋하고 깊어진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이 책을 읽느라 다시 이분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쉰이 되셨을 때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책을 내고 십년 후 이야기가 이 책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대단히 학술적인 업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에고치가 뽕잎을 먹고 내놓는 것이 비단이듯이 삶을 통해 겪은 일들을 참 성숙하게 혹은 재치있게 풀어내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내 기준에 그런 분들은 김선주 주간님(한겨레)과 조한혜정 교수님(연세대), 고 장영희 교수님(나 이분 이름이 생각 안나서 검색창에 '서강대 영문과 장'까지 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억이 나서 다행이지...), 박혜란님.

나도 나이를 먹는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면서 처음 십대가 이십대가 되고 그 앞에 3을 달면서 느끼는 소회가 자신에게는 남다르지만 그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그것이 제 일이 아니다. 그저 나이 먹은 사람의 넉두리일 뿐이다. 자기는 그 나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이다. 또 더 나이든 사람들도 '그래 기분 꿀꿀하겠지. 근데 나이 더 들어봐라, 그땐 차라리 젊었다는 걸 알게될 거다.'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누구나 겪지만 그렇기에 새로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쓴 책이라...

요즘 건방이 하늘을 찔러, 혹은 제 주제를 잘 파악해서, 신간서적보다는 아직 읽지못한 양서들을 읽자는 생각인지라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살짝 고민했으나 나이들어 간다는 것을 겪어가며 언뜻언뜻 스치듯 느껴온 생각들을 조곤조곤 모아놓은 이 책을 보면서 때로는 픽 웃기도 하고, 정말 그래 공감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숨가쁘게 살아간 여성 지식인의 여정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공감가는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귀퉁이를 하도 접어대서 책이 부풀어 올랐다.

책을, 내용만 읽지 일러스트 디자인 같은 것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 책 안에 들어있는 일러스트 아이콘들이 너무 귀여워서 표지를 샅샅이 뒤져 일러스트 디자이너의 이름을 찾았다. 대성하십시오~ 김진이씨!

 

 

 

 

 

 

 

 

 

 

 

 

 

 

 

 

 

 

처음엔 표지가 그닥 의미없이 보였는데 글을 읽고보니 저자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고교 동창생 쯤으로 보이는 여성들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그린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소녀처럼 모여앉아 서로의 가방과 새로운 옷에 대해 서로 걸쳐보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모습에서 '할머니, 아줌마'라는 말에 속박되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이 세대에 대한 경탄이 아마도 이 책을 내게 된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었다.

<발췌> 

겨우 10년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이 '그 연세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불과 10년 후에 다다를 나이를 마치 아득한 먼 훗날인 양 취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도단이다. 아마도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무심코 이런 말로 튀어나오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위의 사람을 아주 늙어 버린, 무능한 사람으로 밀어냄으로써 10년 아래의 자신은 젊은 사람 축에 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10년 아래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이라는 게 그렇다. 자신보다 10년 어린 사람과 자신은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반면, 자신보다 10년 위인 사람은 한 세대 위처럼 늙게 생각된다. '그 연세에'라는 말에 이처럼 거품을 물고 덤비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도 입 밖으로 토해 내지만 않았다 뿐이지, 나보다 열살은커녕 다섯 살만 많아도 마음 속으론 나하곤 다른 세대로 밀어낼 때가 많다. 물론 이미 오래 알고 지내 친숙해진 사람들은 제외하고. 반면 10년 이상 아래인 사람들과는 전혀 세대차를 못 느낄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착각이라니!

대학로에서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나왔는데 전철에 오르자마자 몇 명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섰을 때의 그 기분이라니! 몇 시간 동안 누렸던 젊음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릴 때의 그 낭패감을 젊은이들은 짐작도 못할 거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부모와 아이 모두의 현재를 잠식한다. 풍요롭게 자란 젊은 엄마들의 표정에서 나는 희망이 아니라 불안을 읽는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아무리 강조해 봤자 이미 시효가 지나 버린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누구한테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엄마들을 설득할 의욕을 접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줄기 미련은 남는다.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다보면 아이 키울 때처럼 행복한 시간은 또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시간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누리지 못한다니 정말 어리석은 짓 같다. 엄마가 행복해하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하게 자라는 법인데.
==> 이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뭐? 정신연령 60대?ㅋㅋ
 

비록 한때 실패했더라도 젊은이들에게는 마음만 다잡으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힘이 남아 있는 법이다. 막노동이나 풀빵 장사를 하면서도 끝내 아이들을 옆에서 떼어 놓지 않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주저 앉으려다가도 아이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악물고 재기를 다짐하는 게 부모의 자세다. 늙고 병든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떠맡기는 짓은 효, 불효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더 답답한 건 이런 할머니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형식에 얽매여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인색한 국가다....
부모를 잘 만났건 못 만났건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 치료를 받는 것은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 얼마나 못난 국가면 일흔, 여든 넘은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게 놔둔단 말인가. 직무 태만도 이쯤 되면 금메달감이다.

나도 모르는 새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던 어느 무렵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이 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인간은 왜 다른 동물들보다 이렇게 더디 자랄까 좀 답답했었는데 손주들을 보면서 생각이 영 달라진다. 바로 엊그제 낳은 것 같은 아이들이 금방 뒤집고 기어 다니더니 어느새 뛰어다니다. 백일인가 싶더니 이내 돌잔치를 하고, '엄마, 아빠' 밖에 못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제 의견을 마구 쏟아 낸다.
심지어는 할머니의 정체도 샅샅이 파악, 세 돌도 안 지난 아이가 어느 날 할머니 집 안을 둘러보면서 직격탄을 날린다.
"할머니, 할머니 집에는 왜 이렇게 지지가 많아요?"
와, 할머니가 되는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여기서 빵터짐. 

이래도 저래도 엇나가기 쉬운 고부 관계를 잘 끌어가기 위해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쪽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며느리도 물론 애써야겠지만 그보다 시어머니가 훨씬 더 애써야 한다. 며느리는 아직 시어머니가 되어 보지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신시어머니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아들한테 집사주고 그 집 열쇠 가지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분들 계시다며? 끄응...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 생긴대로 보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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