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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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런 역사적 인물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내게는 종이 인형같이 납작했던 한 인물을 3D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면 되잖아!(맞나?)'했다는 왕 싸가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한 여인이 어떤 날실과 씨실 사이에서 그 길로 나아갔던가를 따라가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죽음에 이를 잘못은 아니었던 그녀의 성품은, 왕비라는 자리가 제공해주는, 밑빠진 독을 계속 채워주는 눈먼 돈과 결합되자 시너지를 일으켜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룻강아지 범 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강아지를 어미개가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 먹는 서열, 피해야 할 상대, 기를 죽여야 할 상대, 무조건 복종해야할 상대를 끼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걸 못한 하룻강아지는 범이 어떤 상대인지 파악을 못하는 거지. 한 석달은 어미개가 새끼를 끼고 키워야, 개다운 개념을 장착하게 되는데 그걸 못하고 그냥 데려다 놓으면 지가 사람인지 개인지 천지 분간을 못하게 된다는 썰도 있고. 

14살 쯤 된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혜로운 여제인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바로 그 개념을 전수받지 못하고 놀기 좋아하는 철부지 상태에서 한 나라의 왕비로 바로 옮겨심어진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딸을 보냈어도 모정은 넘치는 노여제는 편지와 후견인을 통해 딸을 바로잡아 주려하지만... 고리타분해 보이는 후견인의 눈을 속이고 그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리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 간단한 일. 오히려 멀리서 그 충고에 따라 진중하게 사는 것이 십대인 그녀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벌거숭이 갓난쟁이로 나온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에 있든 간에 고만고만한 깜냥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팝의 황제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군중들의 애정없고 무서운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가. 하지만 내 일이 아닌 한 그러한 섭리에 대해서 군중은 또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가. 

요즘 방영중인 '마이 프린세스'라는 드라마에서, 갑자기 공주가 된 평범한 여대생에게 말 한마디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말라 하는 가정교사 P군과의 대화를 보며 문득 마리 앙투아네트가 떠올랐다. '질문에 함부로 대답하지 마라. 네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너에게 반감을 가질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이가 없었거나 그런 말을 들을 귀가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기가 고려해야 할 파장의 영역은 아랑곳하지 않고 '순진'하게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을 가까이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겁도 없이 홀대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불만이 어디까지 쌓이는 줄도 모르고 재미만을 찾아 이리저리 떠다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을 위해 헌신할 제대로 된 세력 하나 키우지 못한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인다.

 또 한명의 배우 루이 16세는 자신의 결혼식 날에도 '아무 일도 없었음'이라고 간단히 기록하는 무신경과 중요한 순간에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품으로 왕권을 박탈당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주인공인 동시에 희생양으로 장식한다.

왕비가 사치와 향락을 일삼을 때는 그것을 제지하지 못하고 무조건 뒤를 봐주더니 혁명 세력들이 왕궁을 덥치기 위해 행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채 꼼짝없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지를 않나, 왕권을 빼앗겠다는 국민의회의 회의가 열리고 있는 와중에 보호라는 미명아래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도 배가 고프다며 은식기에 가득 밥을 받아 먹지를 않나. 일반인이었다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이 소심한 인사는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가의 장손으로 태어났다는, 소위 삼신할미의 랜덤 때문에 못난 군주로 낙인찍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왕이라는 존재가 오히려 생소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깟 힘없는 상징, 살려나 두지 왜 그렇게 죽여야만 했나 생각하지만 그 상징이 가지는 명분 때문에 언제라도 혁명세력을 뒤엎을 구심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죽을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하나의 상징으로 죽어야 했다.

유럽 최고의 고귀한 가문 합스부르그 태생으로 누리고 싶은 온갖 것을, 아니 누리고 싶은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저 당연히 받아들여왔던 특권이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누렸을 때 그녀를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를 혁명의 기록과 함께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소시민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유명세와 특권이라는 것의 명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고, 인권에 관한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솔하고 사치밖에 몰라서 왕실을 파탄으로 몰고 간 요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담담한 역사의 기록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읽어보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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