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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의 새 책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를 계기로 챙겨읽고 있는 이전 저작들 중 마지막.
물론 다른 책이 더 있지만 챙겨읽기는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책표지는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가 더 발랄하고 상큼한데 글의 내용은 [나이듦에 대하여]가 훨씬 생기있고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하고 막 그렇다.
50대 때 '아, 나이가 들었구나' 하면서 쓴 책과 60대 때 '아, 그땐 그나마 젊었구나' 하면서 쓴 책의 차이에서 그 10년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몸에서 빠져나간 체력, 그만큼 넓어진 시각이 함께 느껴진다.
아직도 나이 앞자리에 3자를 달고 있지만 아이엄마가 되고 그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든 나를 생각하는 일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순을 넘기고도 아직도 육아중인 우리 엄마, 아직도 시어머니와 가끔은 고부갈등을 느끼시는 모습, 아빠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니라 아직도 그 마음 속엔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가진 어떤 존재가 들어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게 될 때가 많아진 것도 내가 그런 엄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서 지금이 가장 늙은 나이이기에 항상 현재의 내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한달 전에 찍은 사진만 봐도 또 뭔가 젊고 싱싱한 것 같은, 지금은 빠져나가고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질 때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사진이 있어 나는 이렇게 내가 나이들어 가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것도 나이듦에 대해 남일처럼 느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어린시절의 추억 한자락. 아침방송에선 예나 지금이나 건강관련 내용이 많은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류의 아침방송을 보다가 35살을 넘으면 목운동을 할 때도 손으로 목을 잡아서 돌려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엄마에게 그렇게 하시라고 일러드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젠 내가 그 나이를 넘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를 나이든 나에게 하면서 손으로 목을 잡고 목운동을 한다.
회사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충격적인 내용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이 재기발랄하고 공감능력 좋은 젊은이들조차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공감하지 못했다. 고로, 주제를 던지고 그 이야기가 굴러가는 재미를 느끼는 일이 많았던 도시락 담화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에겐 그것이 먼 일인 것이다.
10대 때는 10대가 세상의 주인인 줄 알았고 20대 때는 20대가 이 나라의 기둥인 줄 알았고 30대가 되니 모든 정책, 서비스가 아이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40대, 50대가 되면 또 어떤 기분일까. 연애도 사랑도 출산도 육아도 입시전쟁도 내 일이 아닐 때는 그냥 심드렁하고 진부한 이야기 소재일 뿐이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면 그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얼마나 내 세상을 가득 채우는지 모른다.
다른 모든 주제는 사람에 따라 겪을 수도 있고 겪지 않을 수도 있고 호되게 치르더라도 지나가버릴 수 있지만, 나이듦, 이라는 주제는 지금도 나를 관통하고 있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관심해질 수 없는 주제이다. 누구도 평생 무관심할 수 없고, 무관심해서도 안되는 주제이기도 할 것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을 읽은 나의 나이듦은 자신이 나이들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발췌>
그 고요가 견디기 힘들어 서성거리는 자신이 우습다. 한창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에게 제발 한순간만이라도 조용해 줄 수 없냐고 사정사정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너희들 때문에 엄마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엄마가 가엾지 않냐고 푸념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나를 훼방 놓지 못하는 조용한 곳에서 글도 쓰고 사색도 하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이제 막내만 군대에 들어가면 그날부터 당장 무시무시한 생산성을 발휘해서 밀렸던 책을 몇 권씩이고 써제낄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정작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말을 바꾸다니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써야할 책은 없지만 아이있는 집 엄마들은 누구나 공감할 듯
결혼한지 30년이 넘어가니 부부라는 게 완전히 측은지심으로 사는 거 같지, 그 언젠가 아득한 시절 사랑이란 것에 빠졌을 적에 품었음 직했던 초발심은 간 데 없다. 게다가 이심전심이라고 아내라는 여자가 이럴진대 남편이라는 남자가 다르랴 싶은데, 무슨 조화인지 아님 무슨 작전인지 남편은 여전히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당신하고 결혼한 일'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 소리에 감동받기는커녕 저 사람이 저렇게 이익을 봤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정말 내가 큰 손해를 보긴 봤구나 하는 생각이 더 새로워지니 내가 언제부터 장삿속으로 살았다고 사람 치사해지는 거 이렇게 잠깐일 수가 없다.
ㅋㅋㅋ 긴 말은 생략하겠음.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만 걸으면 두 개의 큰 영화관이 있다. 집에서 저녁밥을 해결한 후 아무 거나 편한 대로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걸어가 두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여러 편의 영화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잡아 마지막 회를 본다. 집에 갈 걱정 없이 느긋하게 마지막 회를 보는 그 재미가 얼마나 근사한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짐작도 못할거다.
특히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내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래서 그 아릿한 느낌을 단 얼마 동안만이라도 조심스레 보듬고 싶은 영화를 본 날이면, 젊은 날 연애할 때처럼 막차를 놓칠세라 달음박질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아, 이거 뭔지 알 것 같으면서 막 하고 싶다.
넓기로야 중국도 만만치 않지만 중국의 땅에서는 왠지 척박한 기운이 느껴졌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한테 기를 몽땅 빨아먹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미국 동쪽, 바다를 따라 북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땅을 통해 수확을 거두지 않더라도 땅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풍요로운 기운을 뿜는가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도 미국도 안 가봤는데 막 알거 같은 이 기분, 이건 표현의 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