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가고 싶어요 - 사다리부터 로켓까지 달에 가는 36가지 방법 한림 지식그림책 1
마쓰오카 도오루 글.그림, 김경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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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가 쓰고 그린 책이라 최근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우리 가족에겐 깨알 같이 즐길 거리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책장의 울트라맨 인형도 그렇고, 책상에 걸린 란도셀 가방도 그렇고.

얜 참 달나라에 관심이 많구나, 로켓까지 만들었어,하면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해도 혼자 읽는 것보다는 엄마 무릎에 앉아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이.

 


재미있었는지 또 읽쟤.


책의 부제 '사다리부터 로켓까지 달에 가는 36가지 방법'처럼 달에 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들과, 그 방법으로 달에 간다면 걸릴 세월(시간이 아니다)도 함께 있어서 종알종알 주고 받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책.

책 접히는 부분에 가마타고 있는 아가씨는 바로바로

 

작년에 아이들과 봤던 카구야공주 이야기 얘기야.

얼마나 감명 깊었던지 안방문에 붙여놓은 포스터(라기 보다는 안 줬으면 못 붙였겠지만...)



아이들 책을 같이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애들 책에 내가 모르는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이 책에도 우주선에 탄 우주인들의 일상 같은 상상해보지 않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와 나도 흥미롭게 읽었다


지구에서 달에 가기 위해 중요한 조건 3가지.

그 세 가지만 충족하면 꼭 로켓이 아니라도 달에 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로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방법이 로켓이었던거지,라는 것.


3.우주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에서 저 로켓탄 그림을 보면서는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마지막 부분, 베이맥스가 주먹으로 히로를 밀어주던 이야기를 하면서 화기애애.


그래서 넌 어떤 방법으로 달에 가고 싶니?라는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정보를 주고 끝내는 닫힌 결말이 아니라 아이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라서.
 

부록으로 로켓의 상세그림이 들어있던데, 엄청 길어.

발사체가 40~50미터 된다면 15층 아파트 높이에 육박한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또 한번 이야기 꽃을...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가 진짜 독서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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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 대한민국에서 이것만은 꼭 해보기
김혜영 글.사진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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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발간된 대한민국 제철여행지의 작가 토토로님이 쓴 새 책.

엄청 두껍다.

요즘 목과 어깨가 안 좋은 나에게 지하철 독서시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의 무게.ㅋㅋ

굳이 들고다니면서 읽기보다는 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 보는 책.



이 분 풍경 사진이 진짜 죽이는데 이렇게 두 페이지에 가득차는 사진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PUR이라는 고급제본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이건 이전 책의 가운데를 펼쳤을 때.


이건 이번 책의 가운데를 펼쳤을 때.

책등이 유연하게 구부러져서 페이지를 큰 힘 들이지 않고 활짝 열어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제철여행지 책을 쓴 작가의 후속작인만큼 언제 가면 가장 좋을지에 따른 분류는 덤!

 

 

지난 주말에 엄마랑 독립기념관 뒤 단풍나무숲길이 좋다고 해서 엄마는 ktx 타고 부산에서 아산으로 오시고, 나는 서울에서 아산으로 내려갔는데 이왕 나들이 하는 김에 한군데 더 들러보자고 해서 책에서 찾아낸 곳이 '외암민속마을.

 

각종 민속놀이 체험도 하고, 초가삼간, 중류층의 한옥, 상류층의 한옥을 둘러보면서 엄마의 어린 시절 큰집의 추억을 듣기도 하고...

은행잎이 잔뜩 깔린 마을의 돌담길 산책도 좋아서, 동행들에게 여길 어떻게 찾아냈냐며, 칭찬도 듣고.ㅎㅎ

 

 

외암민속마을에서의 버킷리스트는 '대보름날 달집 태우며 소원빌기'였는데 매 꼭지의 마지막에는 여기를 가면서 1박2일 일정으로 추천할만한 코스와 맛집, 숙박 등이 함께 정리되어 있어, 요 코너 하나 찍어서 엄청 든든하게 갔다.

근처 가서 찾아볼만한 키워드가 함께 제시되니까.

 

책을 쭉 읽어 보면서 나는 어쩜 이렇게 모르는 곳이 많았을까 싶은데 그중에서도 갑은 여기.

경주에 주상절리가 있대! 난 주상절리는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숴~

 

 

나 익스트림 스포츠 은근 좋아하는데 집라인코스 9개나 몰려있다는 곳도 꼭 가보고 싶어서 메모해 놨어~!

사람들 많이 모를 때 슬쩍 갔다오고 싶은 곳도 많고... 그래서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자제하기로 한다.

 

이 책을 읽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그냥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진 게 아니라 딱 거기 가서 하고 싶은 특정한 미션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여행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무럭무럭 차오른다.

 

내가 모르는 곳을 알려줘서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을까' 싶은 것도 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익히 가본 곳에 대한 꼭지를 읽을 때다.

부산 출신인 내가 엄마랑 자주 산책하는 해안 절벽 코스를 안내할 때도,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한산도에 대한 내용을 볼 때도, 미륵산 케이블카를 즐기는 법을 안내해 둔 부분을 볼 때도 내가 단편적으로 그 여행지를 다녀왔다면 좀 더 객관적인 정보와 다채로운 코스를 다각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래서 여행작가구나' 싶고, 내가 아는 곳이 많이 나와서 손해다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곳도 사실 내가 모르는 게 많았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된다고나...

 

한동안은 이 책을 보면서 주말에 1박2일 여행도 알차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안에서 이렇게 가볼 곳, 해볼 것이 많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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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옷장 - 명품 패턴으로 만드는 유럽풍 아이옷
배효숙 지음 / 동아일보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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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 낳고 한동안 새언니가 물려주는 남자 조카들의 옷을 잘 입혔는데 어느날 삼청동에 놀러갔다가 그냥 다이마루로 된 티에 스커트만 좀 붙인 원피스를 3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샀다. 깔별로 사주고 싶었는데 그 간단한 옷이 너무 비싸서 도무지 사줄 수 가 없었던 것.

해서 째려보다보니 이거 뭔가 너무 쉬울 것 같은 거지.

 

그 후로 암튼 뭔가 너무너무 옷을 만들고 싶은데 직장은 다니지, 어디 가서 배울 데는 없지, 막막하던 차에 책방의 실용서적을 뒤적이다 책을 한 권 샀다.

 

배효숙의 누가 만들어도 참 쉬운 옷 소품 diy라는 책이었다.


돌아보면 이 선택이 내 재봉틀 인생 입문부터 신의 한 수를 둔 셈.
이 책의 패턴을 다 만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만들어 입어도 하나 어색하지 않은 린넨 팬츠, 래글런 후드티, 쁘띠 블라우스 등등 기본 패턴에 성인 남성 재킷, 바지, 트렌치까지 중요한 봉재법이 다 들어있다.

그 뒤로 배효숙님이 낸 책은 다 사고 있다.
이 책도 옷이면 옷, 소품이면 소품, 홈패션이면 홈패션, 주옥같은 노하우가 깨알같이 실려있다.

이 두 책들이 봉제법에 대해서 어마무시하게 친절하고 응용하기 좋은 기본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책 내 아이의 옷장은 아이들 옷 패턴 완결자 정도 된다.
joy of making이라는 배효숙님의 스튜디오에서 인기리에 판매했던, 카페 회원들의 수많은 검증을 거친 주옥같은 패턴들이 실려있다.

난 이미 이 책에 있는 배기 원피스라든가 루즈피코트 같은 패턴을 하나당 책값에 육박하는 값에 사서 가지고 있지만 책에 실린 다른 패턴들이 탐나서, 그리고 고급스런 원단 선택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라서 어떤 패턴을 어떤 원단으로 매치하여 만들었는지 보고싶어서 책이 발간되는 걸 알고 예약주문까지 했다.

모든 사진출처: www.jom.pe.kr/blog



겨울에 단정하게 입힐 모직 코트로는 이 루즈피코트.
배기룩 원피스 머스터드가 이렇게 예쁠 줄이야~
반팔로 딸램이 찜한 원단으로 재단해 뒀으니 얼른 만들어 보세~

올 여름에 결혼하는 내 친구 결혼식에 입혀갈 따님 옷은 네이비 린넨으로 이 클래식 원피스로 결정!

수록패턴 목록을 보면 어지간한 기본 아이템 다 만들 수 있다.
더 많은 상세 정보는 여기
One piece dress & Skirt
화이트 로웨이스트 원피스
배기 룩 원피스
잔꽃무늬 하이웨이스트 원피스
클래식 원피스
발레리나 샤 스커트

Shirt & pants
포켓 장식 티셔츠 + 멜빵팬츠
후드 티셔츠 + 배기 트레이닝팬츠 
화이트 쇼트팬츠
체크무늬 셔링 롱셔츠
퍼프소매 티셔츠 + 아일릿 7부 팬츠
로브 

Jumper & Coat
로라 스프링코트
사파리 점퍼
프렌치소매 점퍼슈트
A라인 더블코트a

아들만 있더라도 티셔츠, 팬츠, 숏팬츠, 셔츠, 로브, 사파리점퍼, 더블코트까지~
딸이 있다면 주옥같은 원피스 패턴까지!
키기준 90부터 130까지 실물패턴이 있으니까 초등 저학년까지는 커버가 될 듯.
우리 아이들이 이제 120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난 진짜 열심히 만들어 바치겠어요.
한사이즈 늘리는 것쯤이야 할 수 있으니 140까진 입혀드리겠어요.

가을에 성인옷 패턴북도 나온다고 하니 꼬옥 득템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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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전은주(꽃님에미)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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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 학원 순례 대신 제주도에서 아이와 한달 살기라닛! 머리를 뭔가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땐 아이들이 3세 5세로 어리다보니 당장 달려가서 책을 사진 않았다.

 

블로그에서 관련 포스팅을 읽다보니 나랑 결이 맞는 분이라는 촉이 온다. 이웃추가를 하고 이때까지 나혼자 들여다보면서 혼자 친하게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 책이 북하우스에서 재출간되면서 책드림 이벤트를 하시길래 맹구같이 달려가서 저요저요해서 읽게된 책.

  

이미 전작인 놀이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이 분의 책엔 기본적으로 믿고 가는 부분이 있다.

내가 미술을 아주아주아주아주*100 못하고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사람인지라 그걸 읽고 아이들에게 미술놀이 따위 시켜준 적이 없지만(http://swordni.blog.me/10117485314  이런 걸 했었군 ㅋㅋ) 굳이 그 놀이책을 보고 그대로 아이에게 해주지 않더라도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동안 아이에게 반응하고 즐겁게 교감하는 엄마만의 방법이 있다면, 굳이 이걸 다 따라해야 좋은게 아니라 몸에 간지럼 태우는 장난만으로도 아이를 즐겁게 키우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그런 면이 좋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잘하고 있는지 어쩐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아이한테 잘 못해줘서 얘가 잘 못되는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초보엄마들에게 니네 이런 거 모르지 내가 이런 거 해봤다? 이거 너네도 꼭 해봐, 이런이런이런 점이 좋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이랑 놀아주고 싶을 때 이런 거 해주면 재미있어 하드라. 그러니 참고해. 근데 그거 알지? 이런 거 안 해줘도 아이한테 집중하고 교감하면 그것만으로도 애는 좋아한다?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집에선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는 거의 지하철에서만 이루어진다.

근데 가끔 책이 너무 재미있으면 집에서도 읽는다. 빨리 다음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이 그랬다.

이 책을 다 끝낼 때까지는 자꾸 집에 와서 밥해먹이고 난 여유시간에(설겆이는 아침까지 미뤄둬야 맛이다ㅠㅠ) 책을 잡게 됐다. 평소엔 그런 여유시간엔 옷을 재단하든가 패턴을 베껴그리는 난데 말이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디갈까~ 느긋하게 정해서 도서관으로, 바다로, 숲으로 향하며 지낸 시간의 기록들을 읽으니 자연히 내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 떠오른다. 광안리 바닷가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으므로 여름 방학엔 산수문제집 한권 들고 수영복 입은 채로 수건하나 걸치고 매일 햇빛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쫄래쫄래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수건에 문제집 꽂아놓고 파도를 타면서 질릴 때까지 놀다가 산수문제집은 한장 풀고 올까말까. 그 시절엔 그게 특별한 추억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한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지금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궁리에 빠져있다.

 

이제 아이들이 5세, 7세.

아직 첫째가 학교 입학도 안했지만 슬슬 방과후와 방학에 대해 생각이 많다.

방과후는 도서관 근처에서 책읽다 운동장에서 놀다 하면서 퇴근해 오는 엄마를 기다리면 좋겠고, 방학 땐 덩어리로 여행다니면 좋겠다.

그래봤자 첫째의 초등학생 시절 6번의 여름방학에만 할 수 있는 일일테니 6군데만 물색하면 된다.(슈 5, 6학년 땐 누나가 중학생인 관계로 너도 공부해야 할 듯?ㅋ) 친정에서도 한 3주, 경남 고성 이모댁에서도 한 3주, 제주도에서도 한 3주, 지리산에서도 한 3주, 울릉도에서도 한 3주, 경주에서도 한 3주, 이거면 땡이네.. 겨울엔 그냥 짧게 다니고~ㅋㅋ(김칫국 한단지 원샷)

물론 이 3주의 체류기간엔 아빠가 메인이 되고 엄마는 2주만 같이 있다가 1주일 전에 회사로 복귀하는 걸로.ㅋㅋㅋㅋㅋ

신랑 콜??(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당신에게 바친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푸근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나도 그런 세상에 한발짝 담그고 있다는 게 덩달아 행복해지는 힐링효과는 덤.

 

맞아, 이 마음 나도 알아 싶은 문장들과, 애 둘 있는 집의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 진솔한 표현, 제주도의 다양한 스팟들에 대한 담백한 정보까지 빠지는 것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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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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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화기 즈음의 지식인들 중에 유난히 자살한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등등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서 못 살겠다고 죽고 야단이야? '세상이 너를 이해 못해? 그래 나도 너 이해 안해!'하는 삐딱한 마음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는 순간 일단 자살 사건은 이미 잊혔졌고 '대단하심, 나 지금까지 누구보고 밉상이라고 한거임?'이라며 투떰즈업 상태.



물론 새로이 번역을 한 덕이기는 하겠지만 8~9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쳐지거나 낡은 느낌이 나지 않는데다 표현력이 장난이 아니다.

번역된 글로도 이렇게 재미있으면 원문은 어떨까... 이건 일어로 읽어야해!

길고 구비구비 유려하게 수사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것을 얘기하려고 했는지 참신하게 확 와닿는 수사. <칼의 노래> 김훈님의 글에서 느꼈던 것 같은, 간결하고 뻔하지 않되, 그것으로 충분한 문장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자기 자신과 실제 속마음 간의 괴리로 괴로워하고, 자칫 자신의 실체가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캐릭터는 이 단편 모음집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자전적 소설이라는 <인간 실격>에서 아마도 작가를 평생 괴롭히던 이 감정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고 이 소설을 쓰겠다고 공언했던 다자이 오사무는 총 세 번에 걸쳐 연재되었던 이 작품의 연재 중에(두 번째 연재를 일주일쯤 앞두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 전에도 자살 미수 경력이 있던 다자이 오사무는 어느 순간 자신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런 괴로움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 기록가로서 살자고 결심하고 작품활동을 하던 끝에 그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삶을 스스로 마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거기서 자칫 존경받을 처지가 된 것입니다 존경받는다는 관념 또한 나를 몹시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을 속이고,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의 전지전능한 자가 그 사기 짓을 간파하는 통에 그만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나고 죽는 것보다 더한 창피를 당한다, 그것이 ‘존경받는다’는 것에 대해 내가 내린 정의였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존경을 받아봤자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윽고 그의 말을 듣고 속은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내게 들이닥칠 분노와 복수는 아아, 과연 어떤 것일까. 상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습니다.23<인간 실격>



그가 말하는 ‘세상’이란 게 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형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을까요. 아무튼 막강하고 살벌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래도 호리키의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그 세상이라는 건 바로 너지?’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오려고 했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 는 게 싫어서 내뱉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세상이 허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허용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져

‘세상사람들이 아니야. 너겠지

당장 세상에서 매장당할거야’

‘세상이 아니야. 나를 매장하는 건 바로 너겠지’

‘너야말로 너 자신의 끔찍함, 괴기함 악랄함 늙은 너구리 같은 성품, 요괴 할망구 같은 성정을깨달으란 말이야!’<인간 실격>94



또 <로마네스크> 같은 단편에서는 성석제 작가처럼 자기는 전혀 웃음기 없이 실실거리며 남을 웃기는 느낌도 있고.




그는 자신의 선술을 이용하여 잘생긴 남자가 되어라, 되어라, 하고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열흘째 되는 날에 그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다로는 낙담했다. 선술 서적이 너무 옛날 것이었다.

중략

휘적휘적 걸으면서 다로는 미남이라는 것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잘 생긴 남자로 통하던 얼굴이 왜 이제는 얼간이로 보이는가.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얼굴은 이 얼굴 나름대로 괜찮은 것 아닌가.

중략

참고로 다로의 선술 비법은 건들건들 팔짱을 끼고 기둥이나 벽에 멍하니 기대 선 채로 재미었다, 재미없다, 재미없다, 재미없다, 재미없다는 주문을 몇 십번이고 몇 백번이고 낮은 소리로 외워서 마침내 무아지경에 들어가는데 있었다고 한다. 165, <로마네스크>



싸움의 달인, 지로베

이봐, 그건 말이 안 되지. 농담하지 말라고. 당신 그 콧등이 벌겋게 부은 게 아주 웃기는군. 그거 나으려면 석달 열흘은 걸리겠어. 당신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이 말을 언제라도 술술 입 밖에 낼 수 있게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서 서른 번씩 나지막하게 외웠다. 이 말을 하는 동안 입을 삐뚜름하게 틀거나 필요 이상으로 눈으로 번뜩이지 않고 오히려 피식 웃는 걸로 해주고 싶어서 그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170, <로마네스크>



거짓말의 달인, 사부로

나중에는 아버지의 장서가 못보다 열 배나 큰돈이 된다는 말을 고물상에서 듣고 한 권 두 권 들고 나가다가 여섯 권째에 아버지에게 들켰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도벽이 있는 자식을 엄하게 꾸짖었다. 주먹으로 연달아 세 번쯤 사부로의 얼굴을 때려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상의 꾸짖음은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쓸데없이 배만 고파지는 일이다. 그러니 꾸짖는 것은 이 정도만 하겠다. 거기 앉아라. 사부로는 울며 불며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훔치지 않겠다고 억지 맹세를 해야 했다. 이것이 사부로의 거짓말의 시작이었다.178, <로마네스크>



나는 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물릴 것이라는 자신이다. 나는 틀림없이 개에게 물릴 것이다. 자신있다. 용케도 오늘까지 물리지 않고 무사히 지내왔구나, 하고 신기한 마음까지 든다. 여러분, 개는 맹수다. 말을 쓰러뜨리고 드물게는 사자와도 싸워 이긴다지 않는가. 정말 그렇기도 할 거라고 나는 혼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205, <개 이야기>



이 작품에 대해 한마디로 평한 여러 멘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미시마 유키오의 그것이다. 정치적으로 정반대 노선에 서 있었고 마찬가지로 전후 일본의 유망 작가중 한 사람이었으며 역시 자살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자이 오사무란 인간은 너무 싫지만 그의 소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세계 문학의 숲 시리즈를 1권부터 차근차근 따라가며 읽고 있는데 앞으로 나올 예정인 책들도 헨리 제임스(나사의 회전, 미국), 카렐 차펙(도롱뇽 전쟁, 체코,어쩜 좋아 이때까지 홍차 브랜드로만 알았어. 그 브랜드가 이 작가의 이름을 따왔다는군...), 아서왕 궁전의 어쩌구저쩌구(마크 트웨인, 미국),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등등 고루고루 세계 문학의 숲을 거닐면서 가끔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한동안 그 주위에서 머물기도 하면서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이때까지 나온 표지 중에서 <차가운 밤>의 표지가 최고였어, 했는데 나 역시 일본 취향인가봐, 지금은 인간 실격의 표지가 더 맘에 드네...



건진 책 제목

도스토옙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다자이 오사무 <만년>, <쓰가루>, <오토기소지>

그리고 일본 개화기 문인들의 작품, 일본 근대 지식인들의 삶에 대한 책들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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