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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목로주점』의 프랑스어 제목은 L’Assommoir이다. Assommoir은 ‘도살용 몽둥이’ 또는 ‘저질 증류주를 파는 술집’이라는 뜻이기에 원어에 가까운 의미는 ‘술로 사람 죽이는 술집’ 정도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목로주점』에서 우리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술에 절어 오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밀 졸라는 술이 사람을 먹어가는 모습을 집요하고 비참하게 그린다.
주인공 제르베즈는 세탁부였다. 애인 랑티에와 함께 고향을 떠나 파리로 왔지만 랑티에는 수중의 돈을 유흥비로 모두 탕진하고 제르베즈의 낡은 옷가지마저 전당포에 맡긴 후 자기 짐만 챙겨 다른 여자와 달아나고 말았다. 다행히 그녀는 ‘건강한 신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어 부지런히 일했다. 그녀의 근면함에 반한 함석장이 쿠포가 간절하게 청혼하는 바람에 다시는 결혼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뒤로하고 다시 결혼하게 된다. 한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쿠포는 때리지 않았고, 급료를 꼬박꼬박 가져와 저축도 했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만들었고, 마음에 드는 집에서 살았다. 제르베즈가 처음으로 맛 본 봄날 같은 삶이었다. 이 행복한 찰나에 그만 쿠포가 지붕 위에서 떨어진다. 이 사고를 변곡점으로 제르베즈의 일생도 하락하기 시작한다.
『목로주점』을 읽으면 규칙적으로 일하고, 먹고, 자고,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일상에 작은 틈이라도 생겼을 때 다시 잘 메울 수 있는가? 이것이 삶을 결정한다. 부지런하고 사람 좋던 쿠포가 사고 이후에는 게으름뱅이가 되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제르베즈는 남편이 죽을까봐 집에서 간호하며 정성을 다해 살려놓았는데 되살아난 남편은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었음에도 일하기를 싫어했고 게을러졌다. 그의 일상에 생긴 틈으로 스며든 것은 술이었다. 예전의 쿠포는 술 마시면 사고 난다며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그러나 술이 그를 물들이자 그들은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한다.
남편이 전과 다르고, 돈을 빌려 시작한 세탁소가 안정을 찾아가자 제르베즈는 식탐에 물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술로 돈을 다 탕진하기 전에 내가 맛있는 거라도 먹어두자!” 이것이 제르베즈가 자신의 식탐을 합리화한 이유였다. 식도락에 빠진 제르베즈는 신용을 잃었다. 돈은 먹어치우는 데 다 쓰고, 빌린 돈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외상값은 가게마다 늘어가고, 세탁소 일도 대충해서 단골들은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깔끔한 일솜씨로 칭송 받았던 제르베즈는 사라지고 뚱뚱하고 게으른 여자가 남았다. 절제 없는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파괴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고 자존심을 세워주던 세탁소를 말 그대로 “말아먹고” 만다. 쿠포는 정신병원에서, 제르베즈는 자기가 살던 아파트 지붕 아래 계단에서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된다. 자기 침대에서 죽고 싶다던 꿈은 연기처럼 사라진 후였다.
에밀 졸라는 그 당시 민중의 삶을 “그 오물, 자포자기의 삶, 상스러운 언어 등과 함께 정확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정말 너무나 정확하게 묘사된 『목로주점』은 계속 읽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고 비참한 장면들이 많다. 쿠포 부부가 서로를 향해 퍼붓는 사무치는 욕설과 비난,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이웃들, 제르베즈를 알거지로 만들고 떠났던 전 남편 랑티에가 다시 돌아와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제르베즈를 뽑아먹는 걸 보면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세상 모든 악질과 천박함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엉망진창이 된 지옥. 도대체 이 오물 덩어리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제르베즈가 더러운 빨래를 깨끗하게 빨고, 반듯하게 다리는 일을 성실하게 해낼 때는 그녀도 정직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기 일을 팽개치자 자기 집에 몰려드는 더러운 빨래처럼 오물이 되어갔다. 노동은 몸을 자기 자산으로 삼는 가난한 민중이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삶을 가꾸는 유일한 수단이다. 산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체면도 없고, 약속도 없고, 되는대로 먹어 치우는 삶이 되고 만다. 자포자기의 삶은 옛날의 그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제르베즈를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제르베즈는 가로등 아래에서 뚱뚱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자기 그림자를 보고 놀란다. 도저히 자기라고 믿을 수 없는 기괴한 그림자. 너무나 끔찍하고 안타까워 책으로 손을 넣어 그 삶을 구원하고 싶을 정도였다. 에밀 졸라는 그런 타락을 잔인하고 오랫동안 그린다. 마치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자, 이렇게 되리라!” 라고 말하는 듯이.
에밀 졸라는 자포자기하고 타락한 민중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지만 오직 노동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당시 사회 구조도 놓치지 않는다. 아무리 일해도 낡아빠진 아파트의 집세 내기도 버겁고, 공장은 자꾸 기계화 되어 할 일은 줄어든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자 해도 여력도 없고 돈도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꾸 술을 마시고 폭력적이 되어 아내와 아이들을 패기 시작한다. 서로 드잡이를 하고 욕하는 가운데 무슨 자긍심이 생기겠는가?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타인에게 친절한 법이다.
에밀 졸라는 끔찍한 인간 타락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최소한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의지와 그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은 작은 충격에도 금새 깨질 것이다. 제르베즈의 시대가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