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處作主(수처작주).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 되어라" 하는 불교 경전의 말씀이 있다. "주인공은 나야나" 이런 식으로 관심받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라는 게 아니라 세상의 기준, 허세적 역할 놀이 등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삶의 중심을 잘 잡고 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게 아니라"무아"의 원리에 충실한, 네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라는 말씀이 울림이었다. 이게 개념적 이해 였다면 실질적으로 그래서 어떻게 주인공이 될거냐 한다면 이 책〈사람, 장소, 환대〉가 답을 주었다. 내가 노력하고 발버둥쳐 주인공이 될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면 거기에 필요한게 상대방의 "환대"였다. 나도 누군가가 그가 있는 곳에서 주인공이 되도록 환대해야하고 나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환대받아야 한다. 혼자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환대로 가능하다. 이것이 사회를 이루는 기초이다. 수처작주에 대한 답으로 환대를 얻은 유익한 책이었다.(가정이 사회적 기초가 아니다. 가부장제 가정에서 여성의 자리 없음을 폭로 하는 것도 이 논리로 가능)어떤 만물이 그가 가진 정체성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통해 그의 '주인공'성을 얻는다면 우리는 말뿐인 동정과 기부 사랑 따위 좋은 말을 구별해 낼수 있을 것 같다. 말만 성찬인 곳에서 쓰러지고 끼이고 떨어지고 쫓겨나 주인공은 커녕 지푸라기처럼 사라지는 만물이 많은 요즘 시절엔 그런걸 가려 내야 한다. 회장님은 기부금 칭송받고 회장님의 자본이윤을 창출한 노동자들은 안전장치가 없어 죽음이라니. 그 기부를 칭송 할 때인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주인공이려면 남을 주인공 대접해라. 너도 누군가의 환대로 주인공이 되었으니! 누구나 환대받아야만 하는 것이니 내가받아 너에게 주는게 아니라 무조건적 환대다. 멋진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함락된 도시의 여자>를 추천한다.독소전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2차 세계 전쟁을 다른 각도로 보고 싶은 사람들은 <함락된 도시의 여자>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이 두 책을 꼭 봐야 한다. 독일군을 막아내기 위해 소련군에 자원한 여성들과 그 소련군들이 함락시킨 베를린에 남겨진 여자들. 침략자와 남겨진 자들의 입장이 뫼비우스의 띄처럼 맞물려 있다. 신념에 가득 찬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지, 그리고 그 전쟁에 가담한 사람들 자체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 알 수 있는 책. 여성의 언어로 말해진 전쟁 기록엔 그 어디에도 승리자가 없다. 공훈도 없고 명예도, 훈장도 없다. 그냥 파괴 뿐. 그토록 해로운 것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예방주사를 맞고 자란 세대라 전염병이라고는 "수족구"나 "수두" 말고는 아는 게 없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역병"이란 걸 제대로 체험한 것 같다. 코로나 이후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 한다. <페스트>의 이 문장이 그걸 말해주는 것 같다."차라리 지진이라면 한번 크게 무너지고 나면 더이상 이런저런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죽은 사람, 산 사람. 수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할일은 다 한 것이니 말입니다. 한데 몹쓸 전염병이라뇨!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마음 한구석에 그걸 달고 사는 겝니다."마음 한 구석에 자발적 가택 연금과도 같은 상태를 당했던 이 때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병 아닌가. 너무 돌아다니고 너무 먹어대고 너무 써대다가 결국 자기 집에 갇혀서 한발짝도 못나가게 돼버린 매우 역설적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아마도 그게 코로나가 남긴 숙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