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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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족의밭농사 #황승희 #에세이

남편이 또 하나의 화분을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다.
시작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지런히 진열된,
우리 집과 같은 종의 화분들.

“여보… 걔네 원래 이렇게 크는 건가 봐.”

그 말을 시작으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화분을 엎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작은 화분이라 아이들이 제대로 크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갔다… 저 세상으로. 그래도 다행히 뿌리는 살아 있고 줄기와 잎만 죽은 상태라며, 다시 분갈이를 해보겠다고 한다.

괜찮을까?

ㅡㅡㅡㅡㅡㅡㅡ

이 책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는
농사란 ‘농협’ 하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쉰을 바라보는 딸과 그런 딸을 곁에서 지켜보기 위해 함께 밭으로 나선 부모님의 이야기다.

평생 농삿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가 농사를 시작하니, 처음부터 어그러진다. 이미 폐업한 업체에 비료를 신청하고, 농협 ‘은행’에 가서 작물 신청을 하며 당당하게 외친다.

“배추 받으러 왔는데요.”

화자와 가족은 농사에 결코 ‘최적화된 몸’이 아니다.
나이는 둘째 치고, 엄마는 발목에 철심이 있고 네 번째 손가락이 없으며, 아빠는 오른손 세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이 없다. 거기에 가족 모두 디스크 수술 경력까지.

결국 사족보행이라는 요령을 터득하며 몸을 움직인다.
무거운 걸 들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농삿일 앞에서
“각자 알아서 아프지 말자”는 가훈을 새기지만,
농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 “엄청난 수확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올 한 해 무사히 아무 변고 없이 재미나게 먹고 일하고, 늙어가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으면 그저 바랄 게 없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알기에, 감자 한 알, 단호박 한 토막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화자는 솔직하고 정직한 땅이 좋다.
땀 흘린 만큼 먹거리를 내어주고,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일상이 곧 행복이다.

이 책은 단순한 농사 브이로그 같은 에세이가 아닌
사람 사는 이야기다. 어쩌면 인생의 교과서에 가깝다.

화자의 어린 시절이,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이,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전부 나 같고, 우리 같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밭농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삭막한 도시에서의 탈출이고, 가족 간 유대의 회복이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가족,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인 고양이까지 🐱

결국 이 책은 아주 잘 읽히는 ‘일상 에세이’다.

나도 이번 달에 ‘어르신들의 성지’라는 아쿠아로빅을 신청했다. 어르신들만 가득할까 걱정했지만, 그건 사치다.
나 역시 재활이 필요한 몸이니까.
그래서인지 더 와닿는 구절이 많았고, 참 재미있게 읽었다.

📗 “철들지 않는 어른이 나의 취향이다. 감탄사를 잘할 줄 아는 어른,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어른, 입꼬리 올라갈 장치를 주위에 둘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그때 못 찾은 보물 말이야. 걱정 마. 항상 네가 보물이었어. 너, 꽤 괜찮게 살았거든.”

책을 덮고 나니 알 것 같았다.
보물은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 그 자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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