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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지음 / 좋은여름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해, 더위가 시작될 때 쯤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전주에서 독립서적 페어가 열렸다. 무려 1회(!)인 전주책쾌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최근 5주년 기념, 양장본의 붉은 책이 몹시도 탐나지만 잘 참아내는 중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무사히 흘려보낸다면) 나 역시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런 나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한 제목의 책이었다. 어릴 때 내 꿈은 30까지 사는거였다. 그 때면 뭐라도 이룬 멋진 어른일 줄 알았으니까. 서른의 시작을 투병 아닌 투병으로 몇 해 보내고 나니 어느덧 중반이었다. 그래서 그 꿈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50까지 살겠다고 하고 다닌다. 그럼 내겐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다고 항상 생각했다. 이미 몇 가지 병이 있고, 평생 약을 먹을테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한 나이랄까.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어쩌면,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이뤄놓은 것도 없고, 베푼 것도 없는 나이만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하정님의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쥴리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책이다. 그 중 역시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아네뜨이다. 모두가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귀여운 할머니는 아네뜨니까. 직접 디자인한 악세사리들은 기가 막혔고, 책의 끝자락 쯤 플리마켓에서 점원이 정신없는 틈을 타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하고는 속닥이는 모습은 정말 귀여울 수 밖에 없었다.
소신있는 삶을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이 책을 읽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겠다 다짐해놓고 바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란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가본 적 없는 타국이 눈에 그려져서, 괜히 설레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버거워지는 요즘이었다. 그런 내게 행복한 며칠을 보내게 해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빨간색 양장으로 나온 책을 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