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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ㅣ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ou(없다), topa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흔히 이상적인 세계를 나타내는 말로써 사용되는 이 말은 토머스 모어가 1516년 발간한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생각한 이상향은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나"는 헨리8세의 명을 받아 플랑드르에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라파엘이라는 선장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은 여행을 아주 좋아하여 여러 나라들을 방문했는데 그 나라들의 제도와 관습에 대해 "나"에게 들려준다. [유토피아]는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라파엘과 "나"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을 전달해주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라파엘이 방문하여 5년여간 지냈던 유토피아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부터 살펴보자.
당시 영국에서는 모직 공업이 발달해 지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소작농을 내쫓고 땅에 울타리를 쳐서 목초지를 만드는 소위 <인클로저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쫓겨난 소작농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결국 도둑질을 하거나 유랑하며 구걸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랑민이 되면 게으르다는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도둑질을 하다 잡히면 교수형을 당했는데 달리 먹고 살 길이 없었던 사람들은 어쩔수없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교수형에 쳐해지는 사람은 점점 늘어만갔다.
토머스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빌어 단순절도에 대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공익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런 비참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귀족들의 방탕한 사치와 탐욕에 대한 해결이 우선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황폐화된 농장을 복구시키고 상품의 독점구매로 이익을 취하는 부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며 농업과 직물업을 복구하여 유랑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그 해결책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정의는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모어씨,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최악의 시민들 수중에 있는 한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수는 불안해하고 다수는 완전히 비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p55)
그럼, 라파엘씨가 칭찬해 마지 않는 유토피아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이 나라는 초승달 모양의 섬나라로 원래 아브락사라고 불렸는데 우토푸스가 이곳을 점령한 다음 자신의 이름을 따라 유토피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누구나 일정기간 농사일을 해야 한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도 20명씩 교대로 2년 동안 농사일을 한 다음 도시로 귀환한다. 농사일 이외에도 직물업, 석공, 목공등 각자 자신의 일을 하나씩 더 배워야 한다. 유토피아의 관리의 주 임무는 아무도 빈둥거리며 나태하게 지내지 않고 모두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짐승처럼 혹사당하는 일은 없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여섯 시간만 일에 할당합니다. 이들은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머지 세 시간 일을 하러 갑니다. 그 후에 식사를 하고 8시에 취침하여 여덟 시간을 잡니다" (p73)
도시에서의 식사는 모두가 회관에 모여 공동식사로 진행된다. 또한 각 가구에서 생산한 물품은 시장에 반입되어 보관되고 가장은 이곳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무상으로 필요한만큼 가져갈 수 있다. 이처럼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나라 안에서는 돈을 사용하는 법이 없고 단지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만 보관하기 때문에 금과 은에 대해서도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요강이나 노예들을 묶는 사슬따위에나 사용하는 식이다.
여자들은 18세가 되기 전에, 남자들은 22세가 되기 전에 결혼할 수 없으며 혼전 성교를 하다가 발각되는 경우에는 일생 동안 결혼을 하지 못하고 부모들도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나체로 선을 보는데 이 나라에서는 이혼이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여행을 할 때는 관리로부터 여행허가서를 받아 휴대하여야 하며 한 곳에서 하루 이상 머무는 경우 누구든 자기 직종에 속하는 가게로 찾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 허가없이 자기 구역을 벗어났다가 잡히는 경우 탈주자로 간주되어 엄한 처벌을 받고 두번째 같은 일을 벌인 사람은 노예로 만든다. 이렇게 빈둥거리거나 시간을 허비할 틈을 절대 허락하지 않음으로서 삶에 유용한 것들을 풍족하게 만들고 또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공유하여 결과적으로 누구도 가난에 빠지거나 구걸을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유토피아는 우리가 상상하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모어 자신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라파엘 씨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가 설명한 유토피아의 관습과 법 가운데 적지 않은 것들이 아주 부조리하게 보였다. 그들의 전쟁술, 종교의식, 사회관습 등이 그런 예들이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큰 반감을 가진 것은 전체 체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 생활과 화폐 없는 경제였다"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그려지는 이상형이란 게 과연 있을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가 살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산출된 것이니만큼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놀고 먹는 귀족들과 굶어 죽어가는 소작농들, 넘쳐나는 부랑자들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은 채 교수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만을 남발하는 법정, 이에 대한 반발로서 유토피아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2009년 현재, 모순투성이의 대한민국을 대신할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갑자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