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외교관 Social Shift Series 4
칸 로스 지음, 강혜정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즐겨보는 미국드라마 중 [The West Wing]이라는 백악관에서 일어나는 정치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의 에피소드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다. 백악관에 어느날 남발라의 외교사절단이 도착한다. 남발라는 땅이 아주 척박하고 자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인데 그 나라 국민들의 상당수가 AIDS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약값이 너무 비싸 가난한 그 나라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결국 약값 인하를 논의하기 위해 외교사절단이 파견된 것이다. 외교사절단은 단 두명, 남발라의 대통령과 통역관 한명이다. 별도의 외교사절단이 없어 대통령이 직접 와서 제약회사들의 대표들과 백악관 참모들과 앉아 국민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물론 이건 드라마 이야기이지만 현실도 드라마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미래를 논의하는 유엔회의에 '참관인' 자격으로 특별히 허락받아 참석한 코소보 총리에게는 통역은 커녕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코소보 총리가 처음으로 자국의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UN기자실을 쓰고 싶다고 요청한 것도 물론 거절되었고 면담요청도 모두 거절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참석이라도 한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
 
칸 로스는 15년간 일하던 영국 외무부를 사직하고 [인디펜던트 디플로맷]이라는 비영리 외교자문기관을 세운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 했던 외교적인 불균형에 대해 더이상 눈감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직 외교관 등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이 조직은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힘없는 나라들에게 외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코소보는 바로 첫 고객이었다.
 
가장 힘있는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의 외교관직을 과감히 내던지고 힘없는 나라들의 편에 선 저자의 선택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만 열어도 모두가 주목하고 경청해주던 영국 대표에서 테이블에 자리조차 없어 참관석에 끼어 앉아 듣기만 해야 하는 코소보 대리인의 간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가만히 있었다면 동료들처럼 넓은 대사관저에 살며 큼직한 자가용을 굴리는 영국대사로 어디에 가든지 대접받았겠지만 저자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 대신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을 선택했다. 가진 기득권이랄 것도 별로 없으면서 쉽게 놓지 못하고 어영부영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내 나약한 모습이 갑자기 더더욱 부끄러워진다.
 
사회적 기업가 시리즈로 나온 책이라 기존에 읽은 몇권의 책들처럼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저자가 영국 외교관 시절 경험했던 사실들과 현재 외교관행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허울좋은 외교의 실상을 시원스레 밝혀주어 흥미롭게 읽었지만 [인디펜던트 디플로맷]의 활동과 앞으로의 청사진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들려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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