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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아이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2월
평점 :

"참혹하면서도 엄숙한 비극을 읽다가 전율 속에서 밤을 새웠다" 구병모 소설가의 추천사를 읽고 대체 어떤 글일까 궁금했다.
"색채와 음향으로 가득한 산문",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회화적인 소설로 페이지마다 빛과 색채로 가득하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비 제르맹의 소설은 시각, 후각, 청각, 촉각까지 만족시키는 공감각적인 소설이었다.
최근 신유진 작가님의 나를 균열 내기를 보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실비 제르맹도 프랑스 문단에서 알려진 작가였다. 1954년생 출생이니 이미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다.
실비 제르맹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글의 사유의 깊이가 남다르고 아름다움이 뛰어났다.
철학을 전공했고 석,박사 논문의 주제가 심지어 기독교 신비주의에서의 고행, 인간의 얼굴 및 악과 고통에 대한 성찰이었다고 하니 이 부분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메두사 아이에서도 신비주의, 인간 본성, 악과 구원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작의와 작품에 평소 익숙지 않았던 이들이 만약 이 소설을 읽는다면, 2부가 시작하기 전부터 서서히 감지된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끝내 책을 덮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서 이 불행하고도 잔인하며 불길한 언어-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감행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친 회복의 서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스포가 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지만 구병모 소설가의 추천사를 올려본다.
참혹한 이야기를 그렸지만 결국은 회복으로 이어지는 서사시인 이 소설은 묘하게 환상적이며, 슬프다.
끔찍한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니 그 슬픔이 극대화되는 효과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달이 흐물흐물한 광환의 해 위를 굴러간다. 작열하는 기다란 깃털을 가득 곤두세운 해가 방패 같은 달 주위로 흰 문어의 구불구불한 팔을 뻗는다. 거대한 그림자가 땅을 덮쳐 집어삼킨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과 영원, 경이와 공포 사이의 아슬아슬한 접점이다. 모습을 드러낸 건 벌거벗은 세상의 심장이다 광휘에 둘러짜인 어두운 심장."-15P
"인간의 진짜 마음. 상이 덮지 거나 절망의 그림자가 맴돌거나 냉기가 사로잡은 사람들의 마음은 구멍이 파이고, 속이 뚫리고, 깊은 공허감으로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그 마음은 눈물로 부풀어 오르고, 청동의 색과 음향을 지니게 된다. 그 안에선 부재가 울려 나온다. _32P
"세 여자의 목소리가 가르릉 대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뒤섞이며 방 안 가득 흘러넘치는 햇빛 속에 녹아든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단어가 가벼운 깃털처럼 공중에서 팔랑거리거나 때론 뤼시의 목과 이마에 내려앉은 곤충처럼 찌르륵댄다. 그 이상한 곤충이 스치고 간 자리는 그 당장엔 아무렇지 않아도 결국 물린 자국을 남기고야 만다."_54P
"고통과 증오, 추악함과 아름다움이 결합된 이 마녀 아이의 커다란 눈에서 헤어날 순 없으리라는걸, 공포에 사로잡혀 감지한다. 메두사의 시선이다."_173P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문지방에 꼼짝 않고 서서 이 모두를 멀리서 바라본다. 시선이 이 가구에서 저 가구로, 이 물건에서 저 물건으로 옮겨가며 사방에 가 부딪힌다. 원하는 걸 찾지 못한 시선은 사물들의 냉혹함에 놀라고, 모든 걸 퇴색시키는 백악 같은 빛에 놀란다. 무엇보다 방 안에 군림하는 공허에 놀란다."_246P
"고통은 숙고할 줄 모른다. 생각의 가시덤불로 침입해, 의식의 표면으로 한순간 다시 떠오르려는 각각의 추억을 처량한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 버린다. 고통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다. 이성을 조롱하고, 그 어떤 위대한 지성도 짓밟아 버리는 폭군이다."_249P
"자신의 걸음에 달라붙은 과거의 그림자를 향해 화를 내며 불쑥 돌아서면 그 그림자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 뿐임을. 그 경우 그림자는 더 단단해지고 완강해지며, 한층 무겁고 적대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_333P
소재가 무겁지만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다시 빛으로 나아가는지 주인공 뤼시를 통해 보여준 소설이었다. 뤼시는 라틴어로 룩스 즉, 빛이라고 하는 것도 아마 저자가 의도한 바였을 것 같다.
일식에서 시작한 강렬한 이미지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소설이다.
특유의 문장력과 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언어의 마술사 같은 실비 제르맹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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