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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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빈자리에 샘솟은 귀엽고 짭조름한 용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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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서포터즈로 읽게 된 임선우 작가의 신작 소설 지상의 밤은 새로운 소설이었다. 

표제에서도 알 수 있듯 슬픔이란 게 어둡고 축축하고 가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실을 귀엽고 따스함으로 채우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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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우 작가는 2019년 문학사상 신인 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김유정 작가 상을 수상한 신진 작가로,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초록은 어디에나>, 단편소설 <0000>등을 출간했다. 집에 이미 유령의 마음으로를 구매해 두어서 이어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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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1. 프랑스식 냄비요리

  2. 사랑 접인 병원

  3. 지상의 밤

  4. 만두 가게 앞에는 싱크홀이 있다

  5. 동네 친구

  6. 한 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7. 유령 개 산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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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참신하고 흥미로운 주제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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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냄비요리

첫 번째 프랑스식 냄비요리에서는 헤어진 연인들이 해파리, 사물이나 식재료로 변한다. 

남자친구와 수영장에 수영하러 갔다가 그가 해파리로 변하고 일부를 텀블러에 담아오지만 결국 일부는 상해 가고 남친을 슈톨렌이라는 빵으로 만들어 열흘에 걸쳐 먹는다니... 

너무 기가 막힐 정도로 참신한 발상인데 이 소설이 전혀 가볍거나 유머스럽지 않다. 그냥 당연한 얘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그게 임선우 작가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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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야. 하고 노아는 말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이별 후에 무엇이든 남아 있기 마련이니까."_40p


"오로지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맛. 세상에는 그런 맛을 가진 음식도 존재했다."_40p


"이별한 사람이 포토푀를 다 먹고 나서도, 커다랗고 단단한 냄비는 처음과 마찬가지의 형태로 남아 있다는 것. 삶은 어떻게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고 계속된다는 것, 노아는 나에게 그 사실만 기억하면 두려움이 줄어들 거라고 말해주었다."_41p


사랑 접인 병원

바이오 메디컬적인 SF 상상이 들어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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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기억 현상 강화제와 면역 억제제 신약이 개발되면서 접인 수술이 생겨났고, 이를 통해 타인과의 정신적 결합이 가능해졌다. 5일이면 상대와 나의 주요 기억이 공유되고, 성격과 취향, 심지어는 입맛까지 일치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면 서로의 약지에 반지를 끼어주던 시절을 지나 서로의 약지를 자르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_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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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를 잘라 타인을 받아들인다니... 로맨틱하면서도 섬뜩하다. 

주인공인 은금과 '나'는 접인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로 '나 또한 접인을 경험한 사람이다. 

접인 후 헤어짐을 겪고 상실을 앓는 이, 접인 후 상대의 파렴치한 과거를 알게 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 죽어가는 아내에게 자심의 일부라도 전해주고 쾌유를 바라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지상의 밤

주인공 수는 어둠 속에 잠식된 인물이다. 직장내 괴롭힘에서 나아가 폭력을 견디다 못해 방구석으로 숨어든 그는 6년간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6년간 매일같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던 아버지가 간암 진단을 받으시고 2달 만에 세상을 뜨자 그는 더 사회와 거리를 두고 집안에서만 살아간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고 남아있던 3천 원을 가지고 편의점을 간 그는 초코바 하나를 집어 들고나온다. 이후 그는 오히려 도벽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이도 잠깐이다. 

결국 그는 쏘이면 모두 해파리로 바꾸는 변종 해파리를 이용해 본인도 해파리가 되기 위해 업자를 찾아 나선다... 과연 수는 진짜 해파리가 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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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없다는 것은 가벼워지는 일이구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둥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일. 어쩌면 인간은 해파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반쯤은 해파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쯤의 인간, 반쯤의 해파리."_109p


"해파리가 되려는 이유는 뭐예요? 바다로 가는 것보다 집 현관문을 여는 일이 무서워져서요."_119p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이 작품도 좋았다. 

15년 함께 동고동락한 반려견 묵을 잃은 희재는 싱글 노년으로 뒤늦게 해영을 입주 도우미로 들인다. 알고 보니 해영은 프로 누드모델이면서 누드 화가를 꿈꾸는 여성이었다. 

희재는 처음으로 해영을 만나면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설렘을 느끼고 본인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점차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희재. 마지막에 희재가 자유를 느끼는 감정선이 절실히 느껴져 갑자기 북받치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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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영 씨 그림이 정말 좋았어요. 누군가 저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걸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 걸 경험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거든요."_191p


"오랜 시간 몸은 저에게 부끄러움이었어요. 제 몸인데도 쳐다보기는커녕 가리기에만 급급했었고요. 해영 씨랑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몸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 거예요."_216p



유령개 산책하기 

주인공은 언니가 맡기고 갔던 유기견 하지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석 달 만에 심근증으로 죽고 말자 상심하는데 이런 그녀에게 하지는 유령으로 돌아온다. 

마음을 쓰는 이에게는 보이기도 하는 하지, 하지를 위해 그녀는 멈췄던 산책을 시작하며 세상과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로 인해 그녀의 삶은 과연 어떻게 바뀔까? 



임선우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죽음, 이별이라는 소재를 가볍게 치환시킴으로써 다시금 일어설 희망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마냥 미루지 않는다.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는 순간 스스로 받아들이는 주인공들을 통해 삶은 여전히 살만하고 걸어 들어갈만한 무대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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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이가 해파리로 바뀌거나 음식 재료로 바뀌는 설정을 너무 흥미로워했다. 함께 읽어봐도 좋을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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